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11

 

사회복지법인 한국장로교복지재단

도봉장애인종합복지관 (이상록 관장)



 

도봉장애인종합복지관을 시작하게 된 동기나 등장배경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2003년 창동염광교회 장애인부서에 교역자로 왔다. 20~30명 정도의 발달장애인들이 모이는 발달장애인부서(사랑부)에서 활동을 했다.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활동을 하다 보니, 주중 혹은 주말에 발달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거리가 필요했다. 2003년부터 토요일 오후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주말 문화활동(아자 장애인문화센터)을 시작하였고, 2008년도부터는 중증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주간보호시설을 교회에서 만들어 운영하였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장애인복지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장애인들과 함께 문화활동, 복지사업, 밥상모임 등의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자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교회 안에서 2013피어라희망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발달장애인 부모님과 봉사자들이 중심이 된 피어라희망협동조합을 통해, 카페베이커리농장을 운영하면서 장애인 친구들의 고용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의 장애인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들도 의미가 있었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도봉에 장애인복지관이 설립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교회가 속한 교단의 한국장로교복지재단과 함께 준비하는 과정을 거쳐, 2016년 도봉장애인종합복지관 수탁운영자 선발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장애인복지관 수탁을 계기로 지역에 있는 장애인사업, 장애인과 관련된 과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전 해볼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했다. 교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역에 계신 분들을 섬기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또한 지역사회 내에서 좀 더 공신력 있게 사업을 해나가자는 차원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염광교회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요?

 

염광교회는 등록교인이 12천명 정도, 그리고 주일 출석하는 성인 5,500~6,000, 1,000~1,5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축하는 규모의 교회이다. 염광교회의 장애인부서에는 발달장애인들의 예배와 활동모임 5개의 사랑부에 약 250명의 발달장애인 성도들이 다니고 있다. 또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농아부에 30-40명 정도의 농아인(청각장애인) 성도들이 다니고 있다. 또한 따로 모여 예배나 활동하는 모임은 없지만 다수의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어떠한 계기로 장애인과 관련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91년 신학대학을 입학했을 때부터 장애인동아리 활동을 했다. 당시 만났던 분들이 장애인 목사님, 장애인 사역자, 장애인 운동을 하시는 선배 분들이다. 그분들과 같이 지내다가 93년 시각장애인 교회에서 1년 정도 잠시 사역을 했다. 군대를 갔다 와서 농아교회에서 3-4년 정도 사역을 했다. 그 후 염광교회에서 발달장애인 사역을 하게 되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사역과 활동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장애인복지를 전공했다. 염광교회에 오면서 목회를 넘어 장애인 분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이 생겼고 그 고민으로 지금까지 장애인 복지와 관련된 공부와 사역을 계속해 오고 있다. 

 

기존의 목회자와는 달리 협동조합, 사회적경제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아내가 목사이다. 아내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사역을 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예전에는 도시산업선교회라고 불렀던 곳)에서 실무 책임을 맡는 총무로 활동했다. 산업선교회 초기에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지원하는 일들을 많이 했지만,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환경이 바뀌면서 노숙인과 관련된 사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원하는 사업을 했다. 또한 노동자들과 지역의 주민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다양한 사업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와같은 사업을 지켜보면서, 장애인과 또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데 협동조합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교회에 있을 때 꿈이 장애인 분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분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협동조합이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협동조합이 출범하게 된 계기는 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운영한 텃밭이었다. 봉사자들과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재배하여 먹고 남는 먹거리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건강한 먹거리를 함께 나누고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밥상모임을 만들었다. 소박한밥상모임을 통해 먹거리를 사주는 30-40명의 사람들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었고 2013년도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그 후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업장에 장애인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베이커리, 카페, 공장에서 일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보니 사실 운영하고 경영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익이 좀 남아서 장애인분들을 많이 고용하다보니 인건비가 좀 부담스럽긴 했다. 매출액이 4-5억 정도 되는데 실무자와 장애인분들의 급여가 2-3억 이상이 지출된다. 그것이 제일 부담이긴 하지만 설립취지가 장애인분들에게 직장을 만들어주고 장애인분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기에 그 취지를 훼손할 순 없었다. 직간접적인 교회의 지원을 통해 수지를 유지하고 있다. 교회공동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회적 자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안에서 법인을 만든다고 했을 때 우려나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을 텐데 그와 관련하여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려를 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교회 안에서 계속해서 협의하고 안을 만들어서 제안을 해왔기 때문에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크게 반박이 없었던 것 같다. 우선 교회 안에서 최고의 리더십 이셨던 원로목사님, 그리고 현재의 담임목사님께서 장애인들을 섬기는 일이 우리 교회에서 꼭 해야 하는 사역이라고 인정하시며 집중해서 도와주셨다. 그 외의 교회의 리더들의 지원이 있었고, 또한 헌신된 봉사자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있었기에 다양한 장애인 관련 사업을 재미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

 

활동 중에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교회 안에서만 일하다가 지역의 자원과 어떻게 함께 할지가 어렵고 고민이 된다. 이일을 시작하는 것이 새로운 도전이자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배우려고 하고 있다.

 

앞으로의 활동방향이나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복지관의 미션이 바라는 대로 꿈꾸는 대로 함께 삶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장애인의 평생 어깨동무이다. 여기에는 크게 3가지 강조점이 있다. 첫째는 바꿈인데, 바라는 대로 꿈꾸는 대로를 줄이면 바꿈이 된다. 장애인들의 삶의 변화를 만들어 가자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도봉구 지역 장애인의 삶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다양한 활동들을 해보고 싶다. 두 번째는 평생인데, 장애인 분들의 삶이 어릴 때는 치료센터 그 다음은 특수학교, 복지사업, 직업재활사업, 평생서비스 등으로 분절적인 삶을 살고 있다. 서비스는 다양해지고 양적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분절되어있다. 이런 분절된 서비스를 생애주기에 따라 하나의 삶으로 연결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애주기를 아우르며 삶의 이야기를 만드는 다양한 사업들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다. “...는 네 가지 단어, 어울림깨달음동일함무한함의 앞글자를 따 만든 말이다. 어울림은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생공동체를 만들자는 의미이고, 깨달음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서로 배우는 배움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의미이다. 동일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르지 않고 서로 존중하자는 인권존중 공동체를 만들자는 의미이고, 무한함은 장애인분들의 능력을 끌어내고 변화시켜서 무한한 희망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자는 의미이다.

 

이런 미션과 비전을 가진 도봉장애인종합복지관은 7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2개 팀은 지원팀으로 경영지원팀, 관리지원팀이고 나머지 5개 팀은 사업팀이다. 사업팀에는 지역조직·권익옹호팀, 사례가족지원팀, 재활지원팀, 평생교육문화팀, 경제자립팀이 있다. 부설로는 활동지원사업과 바꿈카페가 있다.

일반적으로 장애인복지관은 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개설하여 복지관으로 오시는 이용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개해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장애인복지관의 사업은 지역 속에서 장애인과 함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지역사회중심지원서비스(CBSS, Community-Based Support Service)로 전환하는 계기를 맞고 있다. 앞으로 우리복지관은 한걸음 더 지역 속으로 나아가 다양한 장애인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지역사회 내에서 풀어내도록 하는데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하고자 한다.

 

30대에서 50대 장애인분들을 보기가 어려운데 이분들은 어떻게 관리를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최중증장애인 친구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을 가보면, 졸업식 때 어머님들이 많이 우신다. 왜냐하면 고등학교졸업 후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장애인주간보호시설을 만든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 만들었다. 현재로 장애인복지 서비스는 시설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최중증의 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에 없다. 시설에서는 보다 경증장애인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설에서도 나이제한이 있다 보니 30~40대 이상이 되면 갈 곳이 없다. 그런 경우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심각한 문제는 30~40대 이상의 중증장애인을 둔 가정의 부모님들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60~70대의 부모) 장애 자녀를 돌보고 지원해줄 수 있는 신체적, 경제적, 정신적 여력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성인중증장애인을 둔 부모님들은 부모의 사후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큰 양육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떤 분들은 이러한 현상을 “WIAG(When I Am Gone)증후군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부분들을 지역사회와 이웃들이 함께 고민하고 그 분들이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가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나의 시설로써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민협력플랫폼에 대한 당부나 기대에 대한 말씀해 주세요.


지역으로 나가야하는데 저희도 그 길을 가보지 않아 잘 모르는 것 같다. 안 해봤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앞으로 지역과 플랫폼에 도움을 구하고 더 자주 만나는 날들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우리복지관이 더욱더 든든하게 지역장애인 삶의 어깨동무로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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