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53

 

도깨비연방

(대표 최반장)

 

 

장마가 시작됐다.

비가 오락가락한 날들이 많아졌다.

오늘은 지역에서 보이지 않게 열심히 활동하시는

최 반장님을 만나는 날이다.

최 선생님의 도깨비연방 공유공작소가 도봉역사(驛舍) 아래

새롭게 마련된 커뮤니티공간으로 입주했다고 한다.

오늘은 그 곳을 방문해서 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도봉역 다리 아래로 들어서니 쭉 나열된 공간에 큰 번호로 호수가 표시돼있다.

11호를 찾아가니 ‘도깨비연방과 함께 하는 공유공작소’라고 적혀있다.

공간 안으로 들어서니 넓고 환한 공간이 펼쳐졌다.

맞은편에 계시던 최 선생님께서 인사를 건네며 걸어오신다.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를 하고 우리는 탁자 앞에 마주 앉았다.

❍ 지역 활동을 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2000년 초에 그동안 내가 잘못 살아왔다는 깨달음과 함께 사회적 책임과 국민으로서의 의무감(?)같은 것을 느꼈다.

사업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세금을 덜 낼까 궁리하며 살아왔다. 어느 순간 이모든 일을 접고 마을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도봉서원종합사회복지관, 도봉노인종합복지관,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이었다.

그 3곳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이왕에 봉사를 시작했으니 현장에서 현장 일을 배우면서 봉사를 하고 싶었다.

사회복지 담당자가 수급자를 방문할 때 함께 동행 했다.

이론으로 공부하지 않고 현장에서 배우고 고민했다.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 이분들과 어떻게 소통을 할지를 혼자 고민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그 후 서울시나 구청 그리고 동주민센터에서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가를 나름 고민했다.

 

2015년 ‘동네 119’ 복지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지역의 4개 종합사회복지관과 도봉구청 복지정책과

그리고 14개 동주민센터의 통합복지팀에 가서 동네 119 복지를 제안했지만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

사실 나는 예산도 필요 없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역할은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무상으로 해드리는 것이다.

가전제품과 가구무상지원, 무료이사, 도배장판, 싱크대 무료설치 등이다.

예산 없이 이를 실행하기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사람들이 있었다.

14개 동에 있는 모든 지인들을 총동원했다.

2000년대 초에 봉사하시던 분들은 나름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자유연맹, 적십자, 동 대표, 부녀회장, 자율방법대 등에서 활동하시던 분이다.

이 분들께 도움을 요청했다. 중산층의 주민들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모이신 분들을 찾아다니며 설명회를 시작했다. 2년간은 이렇게 설명회만 한 것 같다.

봉사단 구성원은 순수한 주민만 받았다.

공무원이나 기관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배제했다. 그렇게 순수 주민만 모인 것이 258명이다.

이분들이 내가 하는 일을 지원하고 있다.

내가 긴급 톡을 올리면 회원 분들이 “우리 집에 ~가 있으니 가져가라” 라는 답변을 주신다.

 

얼마 전 창 2동 가정집에서 화재가 났다.

화재로 인해 집을 리모델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창 2동 주민자치센터 통합복지 팀장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화재 피해자분을 꼭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구청에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한계가 있으니 꼭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회원 분들 중에 기술자 분들이 많다.

이분들과 의논해서 돕기로 하고 필요한 자재를 마련했다.

바로 시공해서 5일 만에 공사를 마쳤다.

비용은 540만원 들었다. 용역업체에서 시공하면 5000만 원 정도 들어간다.

우리는 거의 1/10 가격으로 공사를 마쳤다.

전기팀, 타일팀, 도배팀 등 모든 공사가 팀으로 분리돼서 작업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각각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런 막대한 비용을 구청에서 감당하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화재로 피해 입은 당사자는 도움 받을 곳도 없고 모든 것을 잃었기에 삶의 의지마저 잃어버린다.

이런 극한상황을 잘 알기에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미는 것이다.

이런 사건사고는 꽤 많다.

 

한 번은 쓰레기와 바퀴벌레로 가득한 집을 청소하게 됐다.

처음 그 집을 방문했을 때 화가 났다.

이런 환경 속에서 어린 학생이 방치됐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쓰레기부터 사용했던 가구 모두 다 버렸다.

그리고 가구와 식탁, 침대, 싱크대 등을 새롭게 장만했다.

학교로부터 연락이 왔다.

감사의 말과 함께 학교에서 쓸 수 있는 예산이 많지 않아 작은 액수지만 사용비용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내가 하는 활동에 일절 돈을 받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십시일반 모여지는 사례금이나 감사의 선물은 다음 봉사를 위해 모두 적립한다.

도움을 받고 있는 인테리어 가게나 자재를 가져다 쓰는 가게에 장부를 두고 다음 봉사를 위해 모두 적립한다.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했을 때 정말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이 싸움을 통해 뜻이 있는 주민을 만났고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 정말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엄청난 의지와 노동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어떤 것인가요?

2018년 12월 방학 2동에서 80톤의 쓰레기를 치웠다.

부도로 인해 사업실패를 하신 분이었다. 그 분의 사업장 안은 쓰레기가 천장까지 꽉 찬 상태였다.

월세는 밀리고 사업장 안은 쓰레기가 꽉 찬 상태라 집주인과 동네주민으로 부터 민원이 빗발쳤다.

11명의 인원이 투입돼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쓰레기를 치웠다.

사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이런 상황이 주변에 꽤 많다.

 

도움의 손길을 받고 변화되는 주민들을 많이 본다.

이웃과 소통하지 않던 사람이 떡을 돌리고 이웃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자신을 숨기고 살았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학생의 경우 처음 만났을 때 80대 노인의 얼굴로 무기력해 있었다.

쓰레기와 악취 그리고 거의 전기도 없는 공간에서 지내고 있었다.

이런 어둡고 답답한 공간을 모두 비우고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었다.

아이의 방에 책상을 마련해주었다.

아이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면서 나를 뒤에서 꼭 안아주었다.

나는 아이에게 이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아이는 내일 친구를 데려오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힘든 일을 왜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굉장히 행복하다.

여기에서 얻는 에너지가 한 달 넘게 간다.

내가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은 14개 동에 계신 나를 후원하고 지원해주시는 회원분들 덕분이다.

회원 분들 중에는 기술자가 20명, 보조 인력이 60명이다.

80명 모두 무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이렇게 어려운 일을 자발적으로 나서서 봉사하기란 쉽지 않을 텐데 어떤 비결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처음에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웃음)

함께 식사도 하고 노래방도 가고 친해지는 과정과 설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친해지면 한 달에 딱 한 번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회원가입도 권유하지 않는다.

단, 봉사를 투입하기 전에 봉사자의 환경을 파악한다.

부모님은 살아 계신지, 아이가 있는지 아이의 나이와 부모님의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등 가정환경을 파악해서 비슷한 환경을 가진 봉사지에 투입한다.

한 번 봉사에 참여한 봉사자는 자발적으로 나오겠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왜냐하면 봉사지에서 자기 자식 같은 아이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혹은 자기 부모님 같은 분이 울면서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고 감정이 북받쳤기 때문이다.

어떤 동기부여가 되면 절대 활동을 그만두지 않는다. 오히려 왜 자기를 부르지 않느냐고 묻는다.

 

나는 정부의 복지사업 방법에 반대한다.

뜻있는 주민들을 모아 주민활성화 협의체를 만들면 1억 원이 들어가야 하는 비용이 1백만 원으로도 절감될 수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서울시와 동관계자 분들과 이야기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정부의 복지정책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단 우리와 같은 회원 구조를 각 자치구에 만들어 놓으면 비용도 절감되고 주민들의 의미 있는 참여도 가능하다.

주민이 활동에 의미를 가진다면 자연스럽게 지역 일에 참여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주민참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활성화된다.

구청이나 행정은 예산이 소진되면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 예산이 떨어지면 끝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와 상관없이 일을 계속한다. 사실 우리가 하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도봉에서는 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어야하지만 행정은 예산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나 몰라라 한다.

 

❍ 행정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지역에 선생님과 같은 뜻을 가진 분들이 많이 늘어나야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찾아보면 많다. 현재 우리 회원만 해도 400명이 넘는다.

회비도 안 받고 운영되고 있다. 공간은 구청에서 마련해주었다.

활동은 회원들이 자발적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

그 외에 필요한 물품이나 자원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마련하거나 발품을 팔아 홍보해서 후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진실은 통하더라. 동대문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우리 활동취지를 얘기하고 물품후원을 받았다.

처음에는 소량으로 후원했다. 지금은 시즌에 팔 물량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 모두를 우리에게 후원한다.

지인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온라인 영업자들도 물품의 재고를 우리에게 후원하고 있다.

나는 예산을 받지 않고도 지역에서 복지사업을 하고 있다.

 

방학 2동 사공(사람과 공간)은 방학 2동에 커뮤니티공간을 갖고 있는 단체들의 모임이다.

이 모임의 취지는 부족한 부분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함께 협력하여 채우고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다.

갖고 있는 것은 나누고 부족한 것은 도움을 받는 의미이다.

이렇게 협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

공동체를 위해 각자도생하는 방식이 안타까워서 이 모임을 결성했다.

 

❍ 최근 동향을 보면 관의 사업이 아니면 선생님처럼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일상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자란 문화는 지금과 다르다.

학창시절 가방을 매고 길을 걸어가면 생판 모르는 동네 어른께서 학생이라는 이유로 나를 불러 새참을 먹이고 힘내라고 토닥여주셨다.

김장철에는 동네사람들이 모여 김장을 했다.

그때 동네의 소식을 나누며 안부를 묻다가 이웃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면 십시일반 돈을 마련해 급한 문제를 해결했다.

예전에는 병원입원비를 선납해야 입원이 가능했다. 돈이 없으면 입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돈을 십시일반 모아 병원비를 선납해줬다.

나는 이런 문화에서 자랐다. 정말 아름다운 문화였다.

이런 아름다운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현재 정치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을사업을 통해 찾아가는 작은 반상회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동 주민들이 10명 정도 모여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그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

그 모임을 매개로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 작은 반상회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뜻이 있다면 안 되는 것은 없다.

 

▲ 도깨비연방 공유공작소 외부(위) 내부공간(아래)

 

❍ 도깨비연방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2011년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이하 방아골)으로부터 공간운영에 대한 문의를 받았다.

방학동 도깨비시장 공영주차장에 2층 건물이 나왔는데 공간운영을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건물을 살펴보니 사용도가 꽤 많을 것 같았다.

처음 개소 당시에는 1층의 자그마한 카페와 2층의 목공소 이렇게 두 가지 용도로 운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규방, 꽃방, 천연방 등 모임이 늘어났고 사용자들도 많아졌다.

소모임이 늘어나면서 방도 늘어났고 공간명칭도 도깨비 방에서 도깨비연방으로 바뀌었다.

당시 공간운영의 주체는 방아골이었다. 방아골에서 2014년까지 맡아서 운영했고 나는 조력자역할을 했다.

 

활동 당시 공간운영을 지켜보니 회원 간의 불신과 끼리끼리 어울리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 보였다.

이 공간은 지역주민들도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임에도 회원만 사용가능하다는 말이 나오고 지역주민이 배제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지켜보면서 복지관에서 회원관리까지 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운영돼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총회 때 문제를 지적하고 화를 냈다.

그리고 기존 작가들과 기존 구성원을 다 내보내고 새롭게 구성원을 꾸렸다.

동시에 새로운 운영규칙을 만들었다.

첫째, 도깨비연방은 모든 주민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단 이용자는 구청행사나 기관행사 등에 참여해서 체험부스를 운영하고 봉사한다.

둘째, 공간사용 후에는 다음 이용자를 위해 공간을 깨끗이 정돈한다.

이 두 가지 규칙만 잘 지키면 도깨비연방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운영규칙을 바꾼 후로 자율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

 

❍ 선생님께서 지역사회에 책임의식을 갖고 열심히 활동하시는 것 같습니다. 공무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선생님께서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봉사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2000년까지 나의 삶은 친구, 선배, 후배가 전부였다.(웃음)

나의 삶은 대부분 밖에 있었다. 당시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1997년 어머님이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어머님께서 나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당부하신 말씀이 있다. ‘나중에 교회를 가더라도 목사, 장로, 권사 등 사람을 보지 말고 성경말씀이 진리이니

성경말씀대로만 살아라’ 라고 당부하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2년 뒤 교회에 갔다. 그리고 사도바울의 역할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저기 동네의 어려운 문제를 보면서 이 문제는 개인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지역의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형교회가 중심이 돼서 개척교회와 함께 힘을 합해 회원을 모집하고 어려운 지역주민을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를 다녀보니 잘못된 모습이 눈에 보이고 교회재정에 비해 지역사회에 환원되는 복지가 너무 약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다보니 나 한사람이라도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할이 바로 사도 바울의 역할이기도하다.

 

❍ 지역사회를 위해 선생님처럼 개인이 책임의식을 갖고 복지 일을 해내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일을 하시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운지 궁금합니다.

사실 내가 하는 복지는 개인이 상상하기 어렵다. 실제로 실천하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예산도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예산과 무관하게 활동한다.

나는 타협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지역에서 종종 나에 대한 말들이 들린다.

그럴 때 기운이 빠진다.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면 최소한 평가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열심히 봉사하는 회원들이 힘 빠지는 일이다.

 

현재 이 공간(도깨비연방 공유공작소)이 마련되기 전에는 물건들을 보관할 창고가 없어서 복지관에 임시적으로 맡기곤 했다.

복지관과 업무협약을 맺었어도 내 물건을 남의 건물에 맡기는 것은 사실 눈치 보인다.

다행히 자치마을과에서 이 공간을 마련해줘서 물건을 보관하고 잘 활용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지역복지는 선 행동 후 행정이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변수가 많다.

갑자기 짐을 옮겨야 하는데 트럭구하기가 어렵다. 이럴 때 행정이 운수업체와 미리 계약을 해놓으면 급할 때 우리가 트럭을 사용하면 좋겠다.

하지만 행정의 도움을 받으려면 절차가 너무 오래 걸린다. 그렇다보니 행정의 도움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우리가 하는 지역복지체계를 전국에 홍보하고 자료를 아카이빙할 수 있는 행정력을 갖춘 인력을 지원을 해주면 우리가 자체적으로 홍보를 해서 자원을 끌어면 좋을 것 같다.

▲ 사회봉사 부분 도봉구민 대상(왼쪽) 사무실 내 물류창고(오른쪽)

 

❍ 이런 어려움에도 지역을 위해 활동하게 되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내가 활동을 그만두게 되면 지금 모인 이 조직이 해체될 것이 아닌가?

나도 이제 나이도 들고 해서 활동을 그만두고 떠날 의중을 회원들에게 말하니 봉사자들이 모두 떠나겠다고 하더라.

어렵게 만든 조직이고 이들은 도봉구의 엄청난 자원이다. 이들이 해체된다는 것은 도봉구의 큰 손실이다.

현재 모인 분들 대부분이 구청이나 복지관, 동사무소 등에서 봉사했던 분들이다.

나름 의미를 갖고 봉사활동에 참여했지만 지금은 활동을 안 한다.

왜냐하면 의미를 갖고 지역봉사활동에 참여했지만 회의가 많고 각 사업성과에 기여했을 뿐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분들이 우리 회원으로 나오는 것은 이곳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 지역 활동경험을 토대로 활동가들이 변화돼야할 지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커뮤니티 공간이든 공유공간이든 관으로부터 공간을 (지원)받았으면 그 공간을 통해 주민과의 소통하는 장으로 발전해야한다. 그런데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정기적인 프로그램, 행사 등을 통해 소통의 장이 많이 열리면 좋겠다.

나의 경우 예산이 없어도 모임의 장을 마련한다.

내가 막걸리를 직접 담아서 마련하고 회원들이 부침개 등을 가져와서 막걸리 파티를 열었다. 이 행사에 350명이 참여했다.

음악밴드도 예산이 없다보니 사정을 이야기해서 섭외했다. 민요가수와 트로트 가수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사정과 취지를 알면 모두 흔쾌히 의미를 갖고 참여해주셨다.

 

❍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기대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많은 단체가 모여 있지 않은가?

그곳에 계신 분들이 우리와 같은 작은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정식으로 구의회나 구청에 전달하고

예산을 어려운 사람들 우선으로 의미 있게 쓸 수 있도록 마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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