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커피 한 잔.
12월 7일 목요일 오전10시반 까페자매에서 신은옥 대표님을 만났다.
■ 활동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나 동기가 무엇이었나요.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다. 자주민주통일이라는 큰 꿈을 가지고 청년의 열정을 쏟아 부었다.(웃음^^) 분단의 모순, 노동자의 처지 등 사회의 모순을 바꿔보려고 했다. 대학 나와서 지역에서 민주노동당 활동을 했다. 성지윤, 故 김승교변호사님 등과 소수정당 활동 활동을 했다. 정당 활동을 하면서 당 해산의 아픔까지 겪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서 육아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 잘 키워 보자라고 해서 2010년에 도담공동육아협동조합 만들고 5년 동안 대표직 했다. 한 곳에 오래 있으니까 정체된 느낌도 들고 아이들도 어린이집을 다 졸업해서 다른 활동 고민 있던 참에 참교육 학부모회 활동하게 되었고 대표까지 하게 되었다.
세상을 변화시켜보자는 가치가 삶에 녹아있는 것 같다. 어린이집도 참교육학부모회 활동도 그렇게 하고 있다.
■ 대학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얻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게 우리 교육의 문제인데, 대학 가기 전까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도 갖게 될 기회가 없다. 대학 들어가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나 고민했는데 때마침 운도우건 선배를 만났다. 자기 삶과 사회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사는 선배들의 모습이 매력적이게 다가왔다.
■ 학생운동 시절은 어떠셨나요.
386세대와 현세대 사이에 낀 세대다. 94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다. 1994년도는 김영삼 대통령 1년, 김일성 주석 서거 등의 시대적 상황이 있던 해였다. 학생운동하면서 연대항쟁도 겪었다. 연대항쟁 이후 한총련 활동이 불법화되고 대의원은 구속 수감되었다. 연대항쟁이 일어난 그 다음해 한총련 출범식에 갔다가 연행되고 구속 수감되어 6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했었다. 학생운동 뿐 아니라 사회운동 전반이 탄압받고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통일 분야에서 2000년 남북정상이 만나고 6.15공동선언이 발표되며 국면이 열렸다.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보려는 시기였다. 이때 386세대와 연대하는 구조도 생겨났다.
대학을 졸업하던 때에는 정당운동에 대한 고민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당시 민주노동당에서 권영길 대통령 후보를 내면서 소수 진보정당 운동이 꽃을 피웠다.
■ 학생운동 하던 때와 지금, 시대의 변화는 어떤가요.
예전에 운동했던 때와 촛불정국을 보면서 시대가 달라진 게 느껴진다.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나서는 모습잉 특히 그렇다. 변화된 시대에 대중을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고민이다.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정당운동, 마을활동, 교육공동체 영역으로 활동은 달라졌지만 우리의 운동이 변화된 시대에 맞게 어떻게 변화되어야하는지 고민이다.
■ 윗세대와 아랫세대가 소통하는데 혜안이 있나요.
없다.(웃음^^) 예전의 경험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시대와 담론이 변화했고 새로운 주체들이 등장했다. 답은 그 안에서 찾아야 한다. 과거의 경험을 비춰서 답을 찾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 활동에서 위기가 있었나요.
스타일이 위기에 빠지는 스타일이 아니다. 위기가 잘 풀리지 않아도 크게 상심하지 않는다.장단점이 있다.(웃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생각한다.
마음 속 답답함은 있다. 달라진 시대에 나라는 사람이 나의 가치를 어떻게 풀어내야할지 고민이다. 그래서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을 하게 되었다. 플랫폼 안에서 같이 고민을 풀고 싶다.
학생운동, 정당운동, 교육공동체 운동, 이 길을 걸어오면서 무엇을 남기면서 오고 있는가라는 고민이 된다.
■ 시민단체가 위기라고 하는데 참교육학부모회 상황은 어떤가요. 대안은 있으신가요.
참교육학부모회 회원으로 있던 것은 몇 년은 되었지만 실제 활동은 작년 말부터 했다. 참학의 현황이 지금 시민단체의 현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전교조 결성시기와 맞물려 교육문제 해결하기 위한 학부모회 결성했다. 386세대가 중심이 되어 운동단체로 결성이 되었다. 주로 교육정책에 대한 운동이었다. 전전대 지회장님이 회원을 엄청 조직했다고 들었다. 학부모 뿐 만 아니라 공무원 등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조직했다.
교육적 활동 측면에서 확 달라진 것은 혁신교육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학부모들이 교육활동에 전면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시작부터 교육의 주체들이 잘 참여해서 기반이 잘 잡혀서 시작한 사업이었다.
이전에는 공모사업을 너무 많이 했다. 근 2년 실무자들이 공모사업에 매몰되어 참학 본연의 목적을 놓쳤다. 이제 바로 잡으려고 한다. 예전에는 회원사업이 주였다면 지금은 대중과 접촉하는 열려진 사업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그런 사업은 단체 강화라는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민관협력사업이 몸 대주기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 안에서 이 사업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강화될 것인지 기준이 없었다고 본다. 지금 시민단체들안에서 민관협력사업을 통해 시민단체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부재한 것이 어려움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조직운영과 일꾼들이 튼튼하게 세워진 바탕에서 전략이 잘 세워져야 한다.
민민협혁플랫폼 안에서 구성원들이 이러한 전략을 잘 짜고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사업만 방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누가 대신 계획을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주체들이 직접 구상해야 한다.
■ 시민협력플랫폼에 대한 조언을 해주세요.
정해진 방향이 없다보니 끊임없이 관점과 방향을 찾는 논의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계속 고민을 나눌 수 있고 각인할 수 있는 자리를 가졌으면 한다. 우려되는 점은 끼리끼리의 네트워크, 그리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네트워크가 관과의 사업을 위탁하는 주체로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플랫폼은 끼리끼리의 사업이 아니고 공적인 사업이 될 수 있도록 사소한 부분도 점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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