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커피 한 잔

118일 수요일 오후430분에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관장실에서 한상진 선배님을 만났다.


 


 

복지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대학 다닐 때 학생운동하면서 송건, 임성규 등과 선후배로 만났었다. 대학 졸업 후 인천에서 활동했다. 1997년에 도봉의 청년회와 여성민우회 등의 몇몇 활동가분들이 복지와 시민운동을 결합한 법인을 만들자는 논의가 있었는데 이 논의부터 참여하게 되었다. 2회 인천에서 왔다갔다하며 논의과정에 참여했다. 그러던 중 방아골복지관을 오픈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위탁을 받으려고 알아보았다. 당시 사회복지법인 청십자 두레마을(김진홍 목사)로 복지관을 위탁받고 복지관 운영에 참여했다. 시민과 협력할 수 있는 법인이라고 생각했다. 방아골복지관은 다른 복지관과 시작부터가 다르다. 복지관 위탁 준비부터 계획, 개관까지 다 활동가들이 했다.

 

두레마을과 컨소시엄해서 방아골복지관을 위탁 받은 건가요.

 

두레마을에서 사무국장을 파견하고 시민사회에서도 사무국장을 파견하여 서로 소통하고 협의하는 구조였다.

 

방아골복지관에서 처음에 하신일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부장으로 활동했다. 두레마을이 내적으로 법인 지속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두레마을에서 임성규 목사님만 복지관 관장으로 오셔서 활동했다. 2011년부터 내가 관장을 맡았다. 시민사회와 네트워크, 협력하는 구조를 선배들이 꾸준히 만들어가는 와중에 도봉시민사랑방을 꾸리고 거기에 간사로도 활동했다. 지역사회에 뿌리박는 계기였다. 초안산 생태공원 조성 투쟁도 함께 했다.

 

지역에서 계속 활동하셨나요.

 

지역에서 계속 같이 활동했다. 시민사회가 재정적 어려움이 있었다. 복지관은 그에 비해 재정적으로 안정감과 인력, 그리고 기획력이 있었다. 그래서 시민사회와 함께 네트워크할 수 있는 프로젝트 사업을 받아서 활동했다. 활동가 역량강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공동모금회에서 지원받아 도시넷 사업을 했다. 복지관에서 도시넷 사업을 집행할 인력 3명 채용해서 팀을 꾸리고 2년간 시민협력에 많은 역할을 했다. 법인으로서의 역할, 즉 행정적으로 지원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이전에는 시민사회 활동가 역량강화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당사자(취약계층) 역량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시민력 강화와 네트워크 역할해왔는데 노하우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노하우 없다.(웃음^^) 네트워크를 제안하는 단위는 가장 낮은 자리여야 한다. 초반에 결과적으로 실패했던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복지관이 실적 쌓으려고 이 사업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들이다. 서로간의 신뢰가 생기기전 복지관에서 미리 계획을 내오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고 했던 사업들은 실패했다. 그래서 이후에는 기획 과정부터 협력의 구조로 바꿨다.

도봉구에 처음 생기게 된 복지관이다보니 도봉구 전체를 바라봐야하는 사업이 많았고 어려웠다. 우리의 역량을 뛰어넘는 사업들을 했었다. 한편으로 홍보에서는 큰 성과가 있었지만 활동가들의 성장이나 재미있는 일터의 기능은 수행하지 못했다. 역량이 소진되기만 했다.

관과의 관계에서 갑을관계가 되는 한계가 있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다보니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면 탄압이 많이 들어왔다.

 

다음 복지관들과 다른 출발을 하게 된 철학은 무엇인가요.

 

나와 가치가 맞아야 참여하고 그래야 성과를 낼 수 가 있다. 가치지향을 맞게 해야 한다. 주민들이 알아야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학습조직도 하고 커리큘럼화 했다. 거기서 역량이 생겨나고 복지관을 탄탄하게 운영해 올 수 있었다.

 

지금도 그 교육과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나요.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복지관에 입사하면 팀을 꾸려서 학습하고 있다. 영화보고 토론도 하고 촛불집회 참가하고 토론하고 한다.

 

법인 위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당시 한나라당 소속 구청장이었을 때, 전국최우수 복지관으로 선정도 되었던 때이다. 구청에서 법인 이사 분 중 한 분의 금고 이상의 범죄기록을 트집 잡아 위탁을 박탈했다. 그 때 임성규 관장님도 복지관을 떠나게 되었다. 집회도 하고 행정소송도 했지만 되돌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관장님을 뺀 나머지 직원들 전원이 고용 승계되었다. 시민대책위가 꾸려져서 함께 싸운 결과였다. 과정을 겪게 되니 더 주민들과 밀착해서 네트워크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위기가 있었나요.

 

청소년카페인 휴카페가 있었는데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 청소년카페가 왜 영업을 하냐며 난리를 피워서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다. 청소년 이용률도 높고 영업도 잘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런 것들이 끊임없이 힘들게 한다.

아랫세대와 가치지향을 맞춰 가는 것이 어렵다.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내 생각을 주입하고 있지는 않나 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아랫세대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할 때 여기를 떠나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안에서 소통이 잘 되어야하는데 그런 부분이 어렵다.

 

어떨 때 보람을 느끼시나요.

 

우리 일꾼들이 직업적 복지사가 아니라 활동가로 성장되었을 때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주민들과 같은 지향으로 연대하고 협력할 때 보람된다.

 

아랫세대에게 조언과 당부를 해주세요.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는 개인과 가족이다. 기본단위가 유기적으로 결합한 형태가 지역이다. 사업을 할 때 서비스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남을 수 있게 했으면 한다. 나의 생각이 옳지만은 않기에 좀 더 내려놓고 주민만남과 사업했으면 한다. 선배 활동가들이 걸어왔던 길을 잘 바라보고 가치지향이 어떠했는지 잘 이해했으면 한다.

 

다른 복지관과 좀 다른데 신입직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채용과정에서 세계관이라든지 현실인식을 가진 인력을 채용하려고 한다. 면접에서 그렇게 뽑았는데 실제 삶과 다른 경우가 있다. 그런 점은 좀 어렵다. 신입 직원으로 들어오면 우선 복지관이 걸어온 길, 비전에 대해서 설명하고 일꾼의 비전은 무엇인지 묻고 가치지향을 맞춰가기 위한 토론의 과정들을 만들어 간다.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벽을 허무는 과정이다. 벽을 허무는 만큼 주민관계가 더 쉽게 되리라 믿는다.

 

도봉구내의 지역사업 위원으로 잘 참여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기관장이라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의 개수가 2개로 제한이 된다. 위원으로 참여했을 때 그것이 공격의 실마리로 되는 과정도 있었고 복지관 내에서 하는 작업이 많아 외부 활동을 잘 하지 못한다. 그리고 성향도 앞에 나서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웃음^^)

 

도봉구 시민협력플랫폼에 조업과 당부의 말씀을 해주세요.

 

방아골 네트워크 하면서 고민이 있었는데 그 고민이 또다시 되풀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다. 플랫폼은 머무르는 사람은 없다. 단지 타는 사람과 내리는 사람, 마중하고 배웅 나오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그 본원적 의미와 방향을 잘 찾았으면 좋겠다. 시민력 강화를 위해 시민, 시민력, 시민협력에 대한 공통의 정리가 명확하게 있었으면 한다. 도봉은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으로서 가장 좋은 곳인 것 같다.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들이 많이 되고 그 경험들이 쌓였으면 좋겠다. 전체보다는 부분, 작은 단위들의 공동체, 커뮤니티를 많이 생산해내는 방식으로 했으면 좋겠다. 욕구가 필요가 되게 하고 그 필요가 실현되게 하는 곳으로 도봉 시민협력플랫폼이 기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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