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7

 

그린트리예술창작센터(이진희)

 

 


그린트리예술창작센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만들었던 계기는 별 뜻 없이(?)^^ 그저 연습 삼아 공연을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쌍문동에서 태어나 자라고 결혼하고 아이도 키우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성악가를 꿈꿨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고 문화적 혜택도 많이 받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지도를 받지 못하고 취미로만 성악을 했다. 집에서 반대가 심해서 투쟁(?)도 했다.^^ 예술 쪽이 인맥, 지연, 학연을 중요시 여기는 분야다보니 좋은 선생님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누군가 성악을 공부하려면 이탈리아에 가야한다는 말을 듣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 달 준비해서 바로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거기서 10년을 공부했다. 당시, 한국에서 오는 유학생들은 다들 대학, 대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그 중 정말 잘 하는 사람들이 이탈리아로 유학을 왔는데,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고 바로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소질이 없다고 포기하고 돌아가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해야만 했다.

5년제 석사과정인 국립음악원을 가까스로 꼴찌로 입학하게 되었다. 하루에 4시간만 자면서 언어공부, 성악공부를 했다. 입학보다 졸업이 더 힘든 과정이었다. 수없는 좌절과 나와의 싸움에서 결국 꼴찌로 입학했지만 수석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시험에서 지도교수님은 많이 부족한 무대였지만 너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어.’라고 하셨고 나에겐 최고의 찬사였다. 무대만 서면 무서웠고 오롯이 혼자 모든 평가를 감당해내야 하는 공포를 없애기 위해 이탈리아 전국을 다니며 100이상 순회공연을 했다. 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뭐든 배웠고 익혔다. 연극, , 프랑스어, 독일어 등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열심히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오자 여전히 지연과 학연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많은 좌절과 막막함을 느꼈다. 인간관계에서 안 좋은 경험도 많이 하고 상처도 받았다.

가곡 음반을 내고 있었을 때 공연을 함께 하던 선생님과 함께 일본여행을 가게 되었고 가기서 뮤지컬 극단 사계대표를 만나게 되었다. 만난 자리에서 바로 오디션을 보게 되었는데 오페라의 유령의 주연으로 모든 경비를 다 지원해주겠다며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으나 어떤 곳인지도 몰랐고 음반을 내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거절했다.

극단 대표님이 음반제작을 끝내고 다시 일본에 올 수 있도록 초청해 줘서 당시 50년의 전통을 가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뮤지컬 극단인 거대한 사계뮤지컬 극단을 전국적으로 2주일간 투어를 해 주며 소개해 주시고는 입단하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성악만 했던 나에게 큰 도전이었지만 너무나도 스케일이 크고 완벽했던 공연들을 보며 단 시간 안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거라는 마음에 설레었다.

주역으로 스카웃 받았지만 사계에 입단하자마자 청소부터 시켰다. 의아했지만 즐겁게 했다. 부족했으니까. 성악은 많은 무대를 섰고 배웠고 익혔지만 뮤지컬은 처음이었으니까. 연수생 과정 거치고 무대에 서는 과정은 실로 어마어마하게 어렵고 엄격했다. 4년 동안 470회의 공연을 하면서 무대를 대하는 자세와 무대의 신성함을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하루하루가 긴장과 노력만이 있었다. 어느 날 2회 공연이 끝나 너무도 피곤한 상태였는데도 로비에 남아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오페라에 대한 열망이 뮤지컬보다 훨씬 크다는 걸 확인하고 극단을 그만 두고 나왔다.

4년간 일만 하느라 지쳤고 놀고 싶었다. 벌어둔 돈을 모두 털어서 바로 캐나다 벤쿠버의 베트남 가정에 홈스테이 일년치를 송금하고 영어 언어연수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다시 유학생으로 일본인, 이탈리아인, 맥시코인, 한국인과 사귀며 원 없이 여행하고 놀며 영어를 배웠다. 일 년 후 한국으로 돌아와 오페라 오디션을 봤고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불가리아 원형극장에서 오페라 사랑의 묘약주연으로 발탁되어 공연을 했고 2007년도 완전히 한국으로 귀국했다. 2008년도에 20년 교제 끝에 남편과 결혼했다.

한국에서 남편이 당시 미술치료를 전공하고 있었는데 나보고 음악을 하니 음악치료를 공부해보면 어떻겠냐고 했고 음악치료를 공부했다. 첫아이의 태교를 음악치료로 한 것 같다. 매번 나는 부족하다.’ 라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도전했고 공부했고 노력하다보니 어느새 많은 것을 할 줄 알게 되었다.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고 열과 성을 다했다.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열과 성의가 전해졌는지 학생들에게 엄청 인기가 많아 강의 우수 총장상까지 받게 되었다. 많은 아픔과 절망을 경험한 만큼 상대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 열린 마음으로 대하다보니 인기가 많아졌던 것 같다. 내가 노래를 못했기 때문에 노래 못하는 학생이 이해가 되었고 그에 맞는 조언도 해 줄 수 있었다.

어린나이에 오랫동안 혼자 유학생활을 하며 상처받고 견디고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고.. 참 많은 경험들 속에서 나도 많이 성장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우리 마을에서는 나처럼 선생님을 못 찾아서 헤매지 않고, 문화적인 혜택을 어렸을 때부터 누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2015, 그린트리예술창작센터를 개관한 이 후 지금까지 거의 매주 공연을 했고 안팎으로 160회 이상 공연을 했다.

가정을 돌보는 것과 육아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지만 남편의 격려와 도움으로 지속할 수 있었다. 매주 공연을 준비하는 것이 정말 많이 힘들지만 점점 사람들이 변화해 가기도 하고 감동받는 것을 보면서 힘이 되었고 중단할 수가 없었다.

검찰청의 범죄피해자센터와 연계해서 범죄피해자, 유가족들에게 공연을 보여주었는데 예술치료로도 열지 못했던 닫힌 마음이 공연으로 치유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한 회 한 회 정성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운영하면서 한 번도 공연에 대한 지원을 받은 적은 없다.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을 한 이후 감동후불제로 받기도 하고 회원들의 연간회비를 받기도 한다. 지금은 아티스트를 위해 적지만 입장료를 받고 있다.

 

지속하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하나요.

지속하기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 내가 정말 원하지 않으면 난 언제라도 그만 둘 것이다. 비영리민간단체이기에 열정이 있는 누군가에게 승계를 하게 되겠지만 정말 좋아하고 원해서 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든 일이기에 늘 자신에게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정말 이 일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비전은 없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래서 내가 성장하고 마을도 성장하고 마을의 누군가가 함께 성장해 갔으면 좋겠다. 160회 공연을 했는데 한 번도 똑같은 공연을 한 적이 없다. 예술인의 네트워크와 창작 활동이 확장되었다. 늘 흥분되고 설레는 작업들로 많은 아티스트들과 다양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싶다.

 

의미 있는 경험이 있었나요.

 

마을에 들어와 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늘 타지에서만 살았는데 마을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마을이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좋은 동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마을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다양한 마을활동과 혁신교육프로그램도 진행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거의 10년간 대학생들만 가르쳐 왔는데, 마을엔선 초등학생, .고생, 청년, 성인, 어르신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교육했다. 마을에서 다르지만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로 이해하고 바라보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한 마을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든든하고 좋은 경험이다.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그린트리예술창작센터에서 하는 공연들은 매주 참 공을 많이 들인 공연들이다. 좋은 분을 섭외하고 기획하고 공연을 만들고... 하지만 그 중에 홍보가 제일 어렵고 힘들다. 어렵게 출연자를 모셔서 정성을 들여 공연을 준비했는데 관객이 두 세명만 앉아 있으면 정말 출연자에게 미안하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들을 하다 보니 행정적인 진행이나 홍보 등 늘 부족했던 것 같다.

 

플랫폼에 바라는 바나 당부의 말씀을 해주세요.

 

아직도 도봉구가 살기 좋은 마을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좋은 행사나 기획 프로그램들이 많고 정보들도 쏟아지고 있지만 활동가나 늘상 관심을 갖는 사람들만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도봉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플랫폼에 접속해서 정보를 알 수 있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파이를 넓혀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린트리예술창작센터도 협력 플랫폼의 하나로서 그 역할을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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