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20
서울동북여성민우회 (홍문정 신임대표) |
■ 지역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민우회활동가로 매진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도봉구에는 2001년에 들어왔다. 그무렵은 독립다큐영화 제작하는 일을 했고 사무실은 종로에 있었다. 도봉은 나에게 베드타운 이었다. 독립영화일은 짧게 했다. 아이가 생기면서 일을 중단했다.
지역하고 만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아픈 아버지와 먹거리 관심이다. 가까운 곳에 생협이 두 곳 있었다. 민우회생협(지금의 행복중심)과 한 살림이 있었다. 가입절차가 용이하다는 굉장히 단순한 이유로 동북여성민우회 생협을 만나게 됐다. 그때는 민우회와 생협이 분리독립되기 전이라, 생협 조합원가입이 자연스레 동북여성민우회를 만나게 되는 통로가 되었다.
인생이 계획대로 뜻한 바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미혼이 아닌, '비혼'을 주장하면서 결혼제도를 선택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합의하에 결혼을 했음에도 아이가 생겼다. 내 삶에 아이가 한 번도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터라 첫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어려움과 필요가 공동 육아부모협동조합을 만나게 했고, 바로 발바닥공원근처로 이사를 감행했다. 그때부터다. 지역사람들, 마을, 육아를 통해 당면한 내 문제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페미니즘을 만나게 했다. 활동가라기엔 미진한 구석이 많았고, 정리가 되어가는 데는 꽤 시간과 갈등이 있었다.
■ 민우회활동 외에 다른 활동을 많이 하신 것으로 아는데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글쎄요. 뭘 했을까? 민우회활동도 내 삶을 이루는 하나의 조각이니까요.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이것저것을 만난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고민을 상담하기 위해 지역에 있는 언니들을 만나면서 여성주의를 만났고 아이는 같이 키워야한다고 해서 공동육아를 만났다. 내 먹는 것이 나를 이룬다는 것을 깨닫고 생협을 만나 식량문제, 농업주권,환경문제를 더 깊게 생각했다. 아이학령기가 되어 공교육에 진입하지 않고 4.19탑 인근 비인가초등대안 삼각산재미난학교에 아이 손을 잡고 입학했다. 대안교육운동이라는 것을 만나게 됐다. 그즈음 마을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를 함께 잘 키울까 고민이 싹트던 때였던 것 같다.
마을사람들을 만나 책을 읽고 작당모의를 하다보니, 다양한 것들이 보였다. 정체성으로 이야기하면 난 녹생당 당원이기도 했다. 현재는 민우회 임기대표라, 당적은 잠시 내려놓았지만. 열정적으로 핵심에서 활동하지는 못했지만, 내 관심사가 늘 연결되어있다. 밀양송전탑반대운동, 후쿠시마사고 이후 탈핵운동, 서울시장에 페미니즘후보를 낸 이력까지 가슴이 벅찬 시간들이었다.
■ 여성민우회 활동가로서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장착한지는 그리 길지 않다. 나는 위빠사나 명상수행을 하는 수행자이기도 한데, 수행자의 정체성을 가장 크게 가졌던 시기동안, 민우회바깥에서 민우회를 바라볼 시간이 있었다. 결국 그 시기에도 마을에서 다양한 작당모의를 하며, 결국 강북여성주의모임 문을 만나 신나는 한해를 보냈지만.
돌아돌아 다시 확인한 내 정체성이 다시, 민우회, 다시, 페미니즘 회원으로서 수혜를 받았던 기간이 길다. 방학동 민우회사무실에 오면 힘이 나고 위로가 되고, 내 푸념을 그대로 수용해주던 언니들이 있었다. 지금 그 언니들이 많이 없어 아쉽다.
민우회는 건강한 조직문화, 평등하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우리부터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나이 학력 출신지역등을 묻는 인사를 하지 않고, 모두를 선생님이라 호칭하며 존중한다. 그래서 그 시절 만났던 회원들의 나이를 정확히 알 리 없다. 다만 먼저 이곳에 계셨고, 아이를 낳아 키우거나 지역에서 활동했기에 내게 언니였다. ‘내가 여성주의자다’, ‘페미니스트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이것과 상당히 맞닿아있긴 한데 이것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던가, 기준이라던가, 철학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은 나는 '페미니스트'다. 내 삶의 질곡과 이 세상에 대해 이해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이 철학 안에서 풀려진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인터뷰에서 여성주의는 아직 철학으로 수준이 안 된다는. 굳이 들자면 '한나아렌트'정도~~~라고 한 강신주라는 자의 편협함과 오만에 치를 떤 적이 있다.
■ 2019년 동북여성민우회 대표가 되셨는데 임기동안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1992년 처음 한국여성민우회의 첫 번째 지부로 이곳에 둥지를 튼 당시의 미션도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지역의 환경을 바꿔나가는 것이었다. 민우회는 지역에 기반을 둔 회원조직이다. 그것을 완전히 벗어난 활동이 있을 수 없다. 민우회가 지역에서 굳건히 발 딛고 그 많은 선배언니들이 활동해온 지난 27년 우리 지역이 좀 달라졌을까? 가부장제사회가 여전히 굳건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민우소모임 중에 '페륜'이라는 이름의 소모임이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가치가 함축하고 있는 염원을 담은 바퀴를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굴려나가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이름으로 나는 해석하고 싶다. 생활협동조합운동, 쓰레기소각장 반대운동, 초안산 골프연습장 의정비반환소송, 의회방청을 통한 지역정치를 바꿔나가려는 시도, 우리지역의 정책을 성 평등한 관점으로 분석해보기, 행정이 펼치는 사업이 이곳에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 의견을 반영하는 젠더거버넌스 모니터링에 이르기까지. 민우회가 해 온 다양한 일들은 그 시기 시기 시대와 우리의 요구와 맞닿아 있었다.
2019년 시대와 민우회 회원들은 어떤 것을 요구하고 기대할까?
지금 두달된 신임대표인 나의 관심은 좀 더 예민한 수신능력을 키워, 회원과의 접점을 넓히고 민우회가 좀 더 생동감 넘치는 조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농담처럼 하는 말은 “홍문정처럼 대표하면 나도 하겠다” 라는 좀 말랑한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나의 욕심이다. 대표라는 자리는 언제나 무겁다. 지역에서 기대하는 바와 회원이 기대하는 바가 상당히 크지만 균형을 잡으면서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우회와 지역을 하나하나의 나무로 세심히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깊은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스스로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활동 중에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사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배우자다.(웃음) 요기까지만. 지금은 든든한 지원군역할을 해주고 있다. 20년만의 가장 큰 성과다. “나는 페미니스트야” 라고 말하기 시작했더니 세상이 나에게 너무 각박하게 다가왔다. 이는 여전히 우리사회가 젠더불평등이한 사회라는 것의 반증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장자연사건, 승리, 김학의에 이르는 수많은 이 남성들의 공고한 카르텔 성평등 세상이 너무 요원한 게 나에게 가장 힘든 지점이다.(웃음)
■ 활동 중에 의미 있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사람이다. 사람이 힘인 것 같다. 관계에서 가져오는 힘.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다. 안전하게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힘이다.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동지같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힘을 받는다. 내가 에너지가 소진됐을 때 타인의 에너지를 통해 힘을 얻는다. 반대로 나의 에너지가 타인에게 힘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상식적이라 생각했던 많은 이들이 여성주의 시각에서, 나의 테두리 밖으로 멀리 가기도 했다. 연연해하지 않는다. 함부로 연대하지도 않겠다. 사람은 고쳐 쓰지 않는다 했으니.
■ 타 단체와 연대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동북권에 NPO지원 센터가 생기면서 동북5구 젠더워킹그룹을 하고 있다. 도봉, 노원, 강북, 성북, 중랑이 함께 하고 있다. 각 구에 있는 여성정책을 살펴보고 분석해서 토론회를, 작년에는 각 구의 성평등 조례와 기금을 살펴봤다. 함께 하니 힘이 되었다.
도봉구만 보더라도 민우회가 홀로 해오던 3.8여성의 날, 7월 여성주간, 11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등 행사에서 공동기획ㆍ액션을 조직해내는 수많은 지역의 단체가 있다. 기획부터 수행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고 있다. 놀랍고 희망적이다. 올 3.8세계여성의날 특강으로 (미투의 정치학)을 공동기획해서 강의를 열었는데 유료강의비였음에도 100명이 넘는 참여자가 왔다. 그것 자체가 연대의 힘이었다.
■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은 민과행정의 협치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대에, 제대로 된 협치를 하기 위한 토양을 마련하는 단위라는 생각이 든다. 민과 관이 서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활동과 업무를 존중하는 것을 기본전제로 파트너쉽을 만들어가는데 플랫폼이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리라. 지난해 프리컨퍼런스와 컨퍼런스가 충분한 시작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여성민우회 ☞ www.womenlink.or.kr 3천원 문자후원 #2540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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