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커피 한 잔

119일 목요일 오후1시에 평화문화진지에서 김낙준 선배님을 만났다.




활동하게 된 계기와 동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대학시절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화학과라 화학물질을 많이 접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배우자가 공무원시험을 준비 한다 해서 같이 준비했는데 나만 붙었다. 면접을 보러 갔더니 남성이 매우 적었다. 면접 본 남성들 대부분이 뽑혔다.

공직생활을 경험상으로 1년만 해보려고 한 것이 3년이 되고 5년이 되었다. 당시 공무원 동기들과 안 좋은 관행들을 없애보자고 결의했다. 공무원은 한자리에 오래 있을 수 없게 되어 있다. 8년간 도봉구에 있다가 노원으로 옮겨갔다. 노원으로 가서 중랑천 사람들이라는 시민단체 함께 만들고 중랑천 관련 일들을 많이 했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직생활을 그만 두었다.

녹색후보들이 지방선거에 출마하려고 하던 계기와 시민후보를 지방선거에 출마시켜보자고 한 것이 맞아서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다. 지금은 어려운 환경이지만 당시 방학3동에 출마해서 시민활동가들과 맨투맨으로 주민들 만나서 당선될 수 있었다. 2006년에 지방선거가 중선거구제로 바뀌면서 소수정당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출마하고 당선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되었다. 출마했을 때 주민들이 시민후보들은 한번만 출마하고 그만 할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꼭 재선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의원활동하면서 이 활동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문제제기하고 비판, 비난하는 직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원활동을 한 것은 아랫세대가 살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한 것인데 이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의원을 그만두고 가장 먼저 한 것은 나무야 카페를 오픈한 것이었다. 그 당시에 열린 주민커뮤니티 공간이 없었다. 나의 책무라는 생각이 들어 빚까지 얻어 오픈했다. 지금은 도서관 속 별난학교라는 지역아동센터에 공간을 주고 그 건물 3층으로 이사했다. 3층에 창업지원센터를 운영 중인데 그 옆으로 나무야 카페 공간이 이동했다.

도봉에서 자라고 도봉에서 많은 역할을 하다 보니 도봉을 넓은 시야로 보게 되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미선이효순이사건 같은 사회적 이슈에 집중하려고 학습모임하면서 지역사회통합 이슈와 비전을 논의했다. 예전에는 문화영역에 관심이 많았다면 지금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생겨서 50+세대들과 건강관련 프로그램하려고 한다.

공동모금회의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통한 지역사회 복지가 목표인 도시넷 활동도 했다. 지금의 혁신교육 분야인 방과후학교 연결사업, 사례관리(찾동사업으로 제도화), 우리지역사회네트워크, 활동가 스터디 등을 했다. 활동가 스터디는 활동가들이 직접 기획하고 교육 받을 수 있는 방식, 퍼실리테이터 방식으로 시도했다.

박원순 시장 당선 후 서울시에서 마을공동체사업 하게 되었다. 이 때 지역에서 활동하던 핵심인사들이 서울시 중앙으로 많이 진출했다. 이동진 구청장 취임 후 다시 도봉으로 오게 되었다.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마을공동체, 사회적기업 등의 가치사업이 지역에서 잘 수행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다. 지역에서 이러한 가치사업을 만들어보려고 서울시에서 나왔다.

말이 길어졌는데, 그래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웃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살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도시넷 활동에서 중점적으로 고려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도봉구 시민사회네트워크의 시작은 정보연이라 생각한다. 처음 만남이 인상 깊었는데 어느 날 푸른청년회라는 간판이 생겨서 가봤다. 사무실에 청년들 몇이 앉아있더라. 그냥 인사하고 나왔다.(웃음^^) 북한동포돕기운동으로 첫 네트워크를 시작했다. 북한동포돕기운동 실무진을 구성해서 도봉시민회 만들었다. 당시에는 사회적 이슈들로 이슈파이팅을 했다. 수락~불암 간 관통도로 건설 반대 투쟁, 효순미선이 투쟁 등을 했고 협의회 수준으로 진행하였다. 관심 있는 사안이면 참여하고 관심 없으면 빠지는 식으로 느슨한 형태로 운영하였다. 2002년 차없는거리를 시작으로 지역이슈를 함께 하게 되었다. 실무기관이었던 도봉시민회는 시민단체로 성격을 바꾸고 단체들이 돌아가면서 협의회의 대표기관과 실무를 담당했다.

네트워크의 시작 관점은 참여단체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놓을 수 있는 질과 양이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

도시넷하면서 시민력이 강화되었다. 최선기 구청장이 취임하면서 당시 임성규 방아골볼지관장을 해임시켰다. 그것을 계기로 방아골복지관에 노조가 생겼다. 도시넷 사업도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시민사회에 다양성이 등장하고 많은 부분 제도화된 상황에서 어떻게 시민사회를 모아낼지 조언이나 팁을 알려주세요.

 

보통의 네트워크는 서로 공통된 부분들이 연결되어 있다. 지금 시민협력플랫폼의 구조는 컨소시엄 단체들이 모여서 네트워크를 만드는 구조이다. 실무진도 컨소시엄 단체에서 나온 구조인데 그러면 네트워크가 확장되기 어렵다. 도시넷의 경우 기획 단계부터 확장성을 염두에 두고 네트워크 실무진을 구성했다. 청년영역, 시민사회네트워크 영역, 복지 네트워킹 영역 이렇게 말이다. 실무진들이 자기 단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부문으로 접근해야 네트워크 관계망을 짜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 하려면 사람들이 만나게 해주어야 한다. 실무진들이 권한을 갖고 결정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마을공동체 사업의 경우 중앙에서 기획하고 설계할 때와 지역에서 실행할 때 관점의 차이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기획은 머릿속에서 상상해보는 것이다. 지역은 시범지 역할을 한다. 성패사례분석해서 다시 시도하려고 했는데 1차례 시범하고 바로 사업을 오픈했다. 그래서 사업의 문제점도 있다. 준비되지 않은 주민이 모임을 조직하고 활동가로 성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처음 이 사업을 제기했을 때는 시민단체 몇몇을 롤모델로 세워보려고 했었는데 시민사회사업이라는 공격을 받을까봐 하지 못했다. 박원순 시장의 혁신적인 계획의 성과는 지역 곳곳에 시민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변화된 시대 활동가들에게 조언을 해주세요.

 

과거 80년대 대학생 때는 민주화시대 대의를 위해 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관계 맺을 때 상대방의 관심사나 나와 연결이 어느 정도 맺어있는지 파악해라. 접근방식도 예전과는 달라져야한다. 옛날에는 헌신하면 됐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고민해야 한다. 오히려 느슨한 네트워크 형태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봉구 시민협력플랫폼에 대한 조언과 당부의 말씀해주세요.

 

모든 사업의 결과와 과정이 모두 성과일 수 없다. 어떤 사업을 결과가 성과적일 수 있고 어떤 사업은 과정이 성과적일 수 있다. 이 모두가 조화롭게 갈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건물을 시공할 때도 1차 준공 후 2, 3, 4차 준공의 과정이 있는데 하나의 결과 모든 사업을 기획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카이빙 기능을 잘 수행했으면 좋겠다. 모든 사업의 과정과 결과가 잘 기록되었으면 한다. 시민협력플랫폼 이후까지 계획하여 사업했으면 한다. 이 사업으로 무엇을 이룰 것인지 명확히 했으면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