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청년 이인철 | 에디터

저는 도봉을 자주 걸어 다녀요. 걸어 다니다 보면 도봉의 골목들이 아름다운 이유를 알게 되기도 하죠. 어느 날 방학천문화예술거리를 걷다가 작고 예쁜 공간이 나타난 걸 발견했어요. 입구에는 '지구도 방학이 필요해'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이 적혀 있었어요. 대체 누가, 왜 만든 공간인지 궁금하신 여러분을 위해 이 공간을 만든 '그레이티' 팀을 제가 대신 인터뷰를 해봤어요. 

 

지순 | 그레이티 팀 셋째

저희 셋은 6년 전, 도봉에서 각자 단체와 기관에서 일을 하다 만난 사이예요.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은 모두 직장이 바뀌고 원래 만났던 관계에서도 벗어났지만 '환경, 인권 그리고 동물권'에 대한 문제의식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정기적인 모임을 갖다 보니 어느샌가 저희가 소소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행하는 하나의 팀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렇게 만들어진 팀이 '그레이티'예요.

그레이티는 3명이 함께하고 있어요. 첫째 희영은 동화를 쓰는 연극배우예요. 저희 팀의 특별한 콘텐츠 중 하나가 낭독극인데요. 셋이 나눈 대화가 동화 스토리가 되어 인물로 나타나 생명력을 가질 때면 정말 놀라워요. 기복이 없이 오래가는 장거리 선수인 희영 덕분에 프로젝트를 완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었어요. 저희들의 페이스메이커죠. 둘째 은희는 기획자예요. 지방필 공간의 첫 오픈을 기념해서 진행한 '캐리어마켓' 프로젝트도 은희 메모장 속 잠들어 있던 아이디어였어요. 목표를 정확하게 이해한 뒤에 그것을 수행하는 성격이라, 일하다 샛길로 빠지지 않게 잡아주죠. 특히 정리된 언어로 차분하게 의사소통을 잘해서 외부 미팅 때도 은희에게 많이 도움을 받고 있죠. 셋째인 저(지순)는 공간/시각 디자이너예요. 주로 로고, 포스터, 책자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래픽 디자인과 손그림 작업을 같이 해서 스타일이 다양한 편이죠. 동물권에 관심이 많아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공존을 그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저희 그레이티는 방학천문화예술거리(이하 방예리)에 공간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지구도방학이필요해(이하 지방필)'죠. 지방필이라는 이름을 처음 만들 때 '방학천'이라는 지명이 들어가는 이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셋이서 많은 논의를 했죠. 셋의 마음은 같았어요. 우리 셋에서 시작해 지역 주민, 더 나아가 지구를 위해 '잘 쓰이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여러 이름 후보 중에 팀이 하는 일과 가장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 이름이 지금의 '지구도방학이필요해'였죠. 


그레이티가 방예리에 가면

그레이티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생활권 단위로 환경·동물권·인권에 대한 소소한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마음을 가진 팀이 만든 공간이 지방필이죠. 22년 10월에 오픈했어요. 서로의 집을 오가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운영하다가,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동안 도봉구 공간들을 기웃거렸죠. 그러다 22년 7월 방예리에 조그만 공간을 인수할 수 있었어요. 특별히 방예리를 염두했던 건 아니에요. 사무실을 알아보던 차에 우연한 기회로 공간을 얻게 됐어요.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거죠. 그렇게 만난 공간을 셋이 오픈 전까지 직접 페인트칠도 하고 타일도 붙이면서 공간을 조성했어요.

직접 만들어서 더 소중한 지방필이지만 사람들에게는 뭐 하는지 모르겠으나 가면 재밌는 공간으로 인식되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공간을 기능면으로 본다면 뚜렷하지 않아요. 하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뚜렷하지 않고 싶어요. 우리가 재밌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프로그램 속 공간으로 담고 싶을 뿐이에요. 현재는 지방필의 정해진 운영시간은 없어요. 인스타그램(@grei__t)에 프로그램 운영일과 시간을 공지하고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지방필의 운영시간 확인이 가능한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grei__t/


도봉과 도봉 사이에서 느낀 것들

요새 그레이티는 참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하니, 감사하게도 주변 분들의 소개와 제안을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 감사한 마음으로 10월부터 바쁘고 다소 요란한 시간을 보냈죠. 처음이라 우왕좌왕 우당탕탕 실수도 많았지만 앞으로 무엇을 더 채우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번 쌍리단길겨울축제는 참 즐거웠는데요. 저희에게 쌍리단길축제는 각 점포들의 공간의 영업 환경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거리 곳곳에 방문객들에게 재미를 주는 요소를 연출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어요. 마침 비어있는 공간이 있으니 구청의 협조를 받아 그곳을 활용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그중 쌍리단길의 '시작'과도 같은 곳인 노말키친이 얼마 전 혜화로 매장을 옮기면서 빈 공간이 되어 현재는 구청이 주차장 부지로 건물을 매입해 놓은 상태라 이거다 싶었죠. 역사와 같은 노말키친 간판이 남아 있는 공간을 크리스마스 포토존으로 활용했었어요. 오시는 분들마다 "여기 맛있었는데 없어져서 아쉽다" 등등 기억을 소환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어요. 또 그날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거리마다 트리를 설치하기도 했는데 입구를 장식할 트리가 특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도봉 하면 양말, 양말로 트리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던 차에 '도봉양말협동조합'을 운영하시는 강대훈 이사장님께서 요즘 좀처럼 찾기 어려운 빨간 양말을 기부해주셔서 완성된 트리도 있었죠. 너그러이 전력을 공급해주신 각 점포 사장님들 덕분에 트리들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었어요.

멤버 셋 모두 도봉이 고향도 아니고, 일로 오게 된 지역이지만 도봉이라는 지역에 애정이 있어요. 도봉에서 저희가 서로를 포함해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추억도 참 많아요. 방학천의 오리가족, 길 끝에 보이는 도봉산 풍경도 아름답고요! 정겨운 커뮤니티와 풍경이 오래도록 잘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도봉의 지속적인 함께 살이를 위해 그레이티가 건강한 고민과 프로젝트를 계속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23년에는 소비를 줄이고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다른 이와 나누는 '캐리어마켓'과 환경을 위한 발거음이자 생태낭독극장인 '오늘은 동화가 필요해'를 정기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면서 그 외에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기획할 계획이 있어요. 모두들 기대해주시고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짧았을 작년 한 해 동안 그레이티 및 지방필과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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