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커피 한잔.

1026일 목요일 오후3시 까르페디엠에서 김희정 선배님을 만났다.



선배님 소개 좀 해주세요.


 대학 다니면서 학생운동을 했다. 여성으로서의 삶과 가치에 대한 물음들이 학생운동으로는 해소되지 않았는데 여성학 수업을 듣고 많은 의문들이 해소되었다. 바로 114에 전화를 걸어 여성단체 연락처를 문의했고 동북여성민우회를 소개 받았다. 동북여성민우회에 이력서(?)를 준비해서 방문한 첫날 김연순(당시 사무국장) 언니를 만나고 바로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 재미없고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학교를 그만두고 동북여성민우회에서 상근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 시작 당시에는 활동가라는 명칭도 없었고, 개념도 생소할 때였다.

 컵라면 먹으면서 활동하는 언니들을 위해 쌀밥을 먹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아름다운재단으로 옮겨가서 활동을 했다.(웃음^^) 공익적인 모금을 하는 첫 단체였고 거기에 흥미를 느끼고 활동을 하게 되었다. 활동하면서 모금을 통해 돈만이 아니라 사람이 함께 온다는 것을 깨닫게 했지만 돈이 오고 가는 지원 관계의 이면이 참 황폐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돈으로 지원하는 것은 이제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인권재단에서 몇 년간 프리랜서로 활동하다가 NPO지원센터에서 3년간 활동했다. 돈이 오고가는 관계가 아닌 사람간의 관계로 활동을 했다.

 

활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여성학 수업이 큰 계기였다. 여성학 수업을 들으면서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이해되지 않았던 엄마의 삶과 나의 삶이 이해가 되고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민우회에서 아름다운재단으로 옮길 때 어땠는지 말씀해주세요.


 민우회는 직장이기 이전에 나의 정체성이라 생각했다. 민우회를 떠나서는 어디를 가든지 민우회는 나를 키워준 제2의 어머니, 2의 자궁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지원하는 것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셨는데 그 해답을 얻으셨나요.


 위기라고 생각하는 순간 해답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노사모의 등장을 보면서 시민단체의 역할을 다른 주체들이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다양한 주체들이 나서는데 예전의 지원 방식(특히 돈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다른 요소의 지원이 필요하고 지원의 방식도 바뀌어야할 것 같다. 종속적인 관계가 아닌 파트너, 동반자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NPO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는 돈으로 지원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과 중심보다 과정이 드러나보이는 지원을 했다. 연속지원을 얼마만큼 할 것인지 규정하지 않았고 지원하는 자원에 대해 자유롭게 하지만 공익적 목적에 한해서 쓸 수 있도록 했다. 공익적 목적이 어떤 것인지도 가치설정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활동하시면서 느끼는 좌절이나 어려움이 있었다면 말씀해 주세요.


 NPO지원센터 활동하면서 NGO 단체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활동가 정체성은 나의 정체성 중 하나이다. 굳이 활동가라고 명시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다른 영역을 통해 활동가 영역에 진입할 수 있다. 거버넌스, 협치 구조가 답답하고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재미있는 일,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남아있는 동료들을 보면 미안한 생각도 든다. 끝까지 남지 않는 것, 단체 활동에서 행사나 사업의 성과를 행정적으로 요구하는 것, 모든 것을 계획한데로 만들려고 하는 것 등 인위적인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지역활동, 사회혁신활동을 개념적으로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는데요. 지역활동, 사회혁신활동의 진입을 어려워하는 청년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나요.


 지역활동, 사회혁신활동 영역에 대한 정확한 개념 설명은 어렵다. 원천기술로 접근하여 설명하면 좋겠다. 시민사회와 지역은 사람사이에 말문을 트이게 하고 참여하게 하는 원천기술을 얻게 된다. 지역활동, 사회혁신활동을 하면 바로 이러한 원천기술을 얻는 것 같다.

1세대 리더십은 단체를 넘어서 지역을 고민하는 시기였다면 2세대 리더십은 자기 단체만 들여다보는 시기인 것 같다. 단체의 역량이 부족해서 그랬다보다는 시기가 그런 것 같다. 지금의 시기는 다시 민민 단체를 넘어서 지역을 만드는 사업을 할 때이다. 개별 단체가 잘 되는 것보다 지역 전체가 잘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차원의 문제가 잘 해결되면 단체의 유연성이 더 올라가지 않을까. 협력의 과정도 협력이 되게 하여야 한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부터 긴 시간 협의하고 협력했으면 좋겠다. 기존의 대표 리더십으로 민민 협력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단체가 있다가 없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유지되기 어렵고 힘든 단체가 유지되는 것이 이상한 건 아닌지. 모두가 어려운데 개별공간과 사람을 힘들게 꾸리고 유지하기보다는 사무실도 함께 쓰고 활동가 역량도 함께 공유하면 더 효율적일 것 같다.

 

이야기 들으면서 단체별로 사업을 공유하고 비슷한 사업은 콜라보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통의 자원은 함께 이루고 이용하면 좋겠다. 예를 들면 단체마다 각각 디자이너를 두는 것은 비효율적이란 생각이다. 공동의 디자이너를 두고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활동가들에게 조언을 해주세요. (활동과 생활이 일치되지 못하는 부분)


 삶과 일의 가치 싱크로율이 높아야 되는게 이 영역이다. 실제로 그렇지 못할 때 활동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협력하자고 나서려면 그 단체의 구조부터 협력의 구조가 되어여 한다. 활동가가 컵라면을 먹으면 일이 많으니 당연한거야가 아니라 컵라면을 먹으며 일을 하는 그런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이런 가치부터 확실하게 해야한다.

 

자녀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세상은 무엇인가요.


 자녀들이 살 세상은 자기들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웃음^^) 지금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이 기록과 자료를 잘 남겨야 한다. 그것을 후대들이 참고해서 취사선택하여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만들어 주고 싶은 세상은 기록이 잘 되어있고 아카이빙이 잘 구축되어 있는 세상이다.


활동하는데 배우자의 지지는 어떠한가요.


 한참 활동할 때 밖에서 볼 때는 활동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진 것 같다. 가족이 밤늦게까지 활동하는 것에 대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끝으로 도봉구 시민협력플랫폼에 대한 기대와 당부의 말씀을 해주세요.


 중간자라는 포지션을 잘 취해야 한다. 경직되는 순간 갑이 될 수도 있다. 주변의 환경을 잘 이해하는 유연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첫 번째 커피한 잔.

1025일 수요일 오후4시 까르페디엠에서 홍은정 선배님을 만났다.

 


활동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나 동기가 무엇이었나요.


 도봉구가 고향이다. ,,고 모두 도봉구에서 다녔다. 대학을 멀리 다니면서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 그때는 진정한 주민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다시 도봉구로 이사를 왔다. 그때 당시 민우회, 생협 등 여성 운동하는 곳이 있었다. 아이 때문에 생협을 이용하다가 민우회 활동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니까 사는 지역에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고 관계도 생겼다. 그제서야 진정한 주민이 된 것이다. 민우회 활동을 하면서 지역 활동도 시작하게 되었다.

 84학번이다. 대학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고 졸업을 앞두면서 약간의 거리두기를 했었다. 지역 활동을 하게 된 계기로 학생운동을 끝까지 하지 못한 부채감도 작용한 것 같다.


 민우회 활동은 자발적으로 하셨는지, 아니면 권유로 하셨는지요.


 98년도 지방선거부터 기초의회, 기초단체장도 뽑게 되었다. 그 후로 민우회에서 기초의회 예산서 분석하는 스터디를 운영했다. 대학에서 법을 전공했는데 민우회에서 예산분석 스터디를 함께 하자고 하더라. 예산분석하면서 재미있었다.

 민우회 활동은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전에는 방아골복지관에서 주민조직사업 일환으로 진행한 주말농장에 아이와 함께 참여했었다.

 

시민단체, 지역활동하면서 활동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활동비 지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자비 부담하면서 활동했다. 2007년인가 2008년인가 민우회 대표로 상근하면서 활동비를 처음 받아봤다. 그런데 받은 활동비도 사업비로 다시 다 지출했다. (웃음^^)

 

현재까지 어떠한 영역과 분야에서 활동하셨나요.


  지역 여성운동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여성운동을 지역의 문제, 생활의 문제와 결부하여 활동했다. 주민자치운동의 한 영역으로 진행한 예산분석 활동의 경우 시민단체에서 처음하는 활동이다 보니 주민 신뢰나 호응이 무척 좋았다. 여성이슈를 지역으로 끌어와서 활동했는데 면월경대 알리기, 명절 평등 캠페인, KTX 여승무원 투쟁 등을 지역에서 알려내고 함께 했다.

  지방선거에 시민후보를 내고 선거운동도 했다. 2002년도에 처음으로 2명의 시민후보(김낙준, 추경숙)를 내고 시민의 힘으로 선거의 전 과정을 만들어갔다. 선거가 지역운동에서 참 좋은 계기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였다. 2006년 선거에서는 시민후보가 모두 낙선하고, 2010년 선거에 다시 1(이창림)의 시민후보를 냈다. 비록 낙선했지만 각각 활동하던 시민단체들이 연대하고 네트워크를 구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후보를 정하는 과정에서 갈등은 없었나요.


 대체적으로 갈등 없이 정리되었다. 시민단체 활동가등 2,30명이 모여서 후보를 추천하고 하려는 의지가 높은 분으로 결정이 되었다. 후보는 공인으로서 살아야하는 어려운 자리라 후보로 나서고 결의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다.

 

2006년과 2010년 지방선거 모두 시민후보들이 낙선했는데 어떻게 승리적으로 평가했나요.


 2006년 선거에 패배하고 약간 의기소침해졌다. 시민후보 중 한 분이 개인사정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면서 끝까지 지역을 책임지지 않는 것에 대한 주민비판도 있었다. 이때 후보들과 주요 선거운동원들 중심으로 도봉시민사회도시네트워크(도시넷)를 결성하였다. 때마침 공동모금회에서 지역커뮤니티, 지역사례관리 지원사업을 시작한 계기도 맞아 떨어졌다. 공동모금회에서 지원을 받아 시민력 강화와 지역사례관리 결합하여 네트워크를 조성하였다. 도시넷 활동하면서 자활, 복지기관도 드러내면서 지역문제를 이슈파이팅했다. 시민단체들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서로 연대하는 이 과정은 도봉시민사회만의 독자적 경험이었다.

 2010년 선거에서 비록 낙선했지만 23%의 득표율이었다. 당선권과 얼마 차이 나지 않았다. 이때는 의정비 이슈가 있었다. 의회에서 의정비를 정하는 절차를 무시하고 결정했다. 절차를 무시한 것과 관련해 투쟁을 벌이다가 주민소송을 진행했다. 각 시민단체 대표들이 원고가 되었다. 1심에서 승소했다. 전국에서 주민소송을 진행하고 승소한 첫 사례라고 하더라. 하지만 2심과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환수를 주장했는데 근거할 관련 사례가 없었고, 이미 지급된 의정비를 반환하는게 무리라는 판단이었나보다. 지방선거와 주민소송으로 시민단체 네트워크가 더 단단해지고 강해졌다.

 활동을 하면서 주민만남의 기회가 어려웠다. 그래서 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지역신문을 만들어보자고 했고, 그렇게 민민네트워크의 결실인 도봉N이 탄생했다.

 

도봉N은 어떻게 활동하셨나요.


 도봉N 활동도 재미있게 했다. 어느 단체에도 속하지 않는 분들이 모여서, 우리집을 도봉N 사무실로 해서 활동했다. 신문을 매개로 주민들을 만나니까 피드백도 빠르고 여론형성이나 영향력이 커서 좋았다. 그런데 본업을 따로 가지고 활동하다보니 마감압박이 너무 크고 재정적 어려움 있었다. 거기에다 신문뿐 아니라 잡지, 팟캐스트, 책 등 다양한 매체도 발행하고 마라톤, 체육대회, 평화기행 등 행사도 진행했다. 너무 힘들어서 잠시 쉬자고 한 것이 지금까지 쉬게 되었다.(웃음^^)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요.


 그 당시에는 힘들었겠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크게 힘들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활동하면서 어려움이 나섰을 때 극복은 어떻게 하셨나요.


 극복해본 적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던 것 같다.

 

꼭 했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노는 것을 잘했으면 좋겠다. 상처도 사람에게 받지만 그 극복도 사람과 할 수 있다. 우리 활동이 모두 사람과의 활동이기에 그런 것 같다. 여담으로 도봉이 시민운동이 잘 된 이유는 잘 놀아서라고 한다. 놀면서 친해지고 사적으로 자주 만나야지 공적인 일도 잘 되는 것 같다. 활동하고 남는 것은 사람이더라.

 요양원 운영하면서 처음해보는 일이라 어려웠다. 민우회 등 시민단체활동 경험이 다 내공으로 쌓여있더라. 그래서 다른 일들도 잘 해낼 수 있었다. 시민단체활동은 사람을 조직하는 일이라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변화된 시대, 활동하는 후배들에게 해줄 말이 있나요.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자신은 없다. 4~5년동안 시민단체활동과 떨어져있었다. 네트워크가 이제는 일반적인 개념이 되었다. 활동가의 숫자도 많아지고 저변도 넓어지게 되었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활동들을 보면서 재밌게 다가오면서도 이러한 다양함을 하나로 모아내고 끌어가는 것이 녹록히 않겠다는 생각이다. 세대가 바뀌었다. 시민사회 초창기에는 80년대 운동권 방식으로 시민운동이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성 큰 세대다. 여기서부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이러한 다양성에 잘 대처하는 시민협력플랫폼이 되었으면 한다.

 

끝으로 도봉구 시민협력플랫폼에 대한 기대와 당부의 말씀을 해주세요.


기대가 정말 크다. 도시넷을 좋은 기억으로 가지고 있어서 더 기대가 큰 것 같다. 지금은 시민협력플랫폼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예전에 시민단체가 하던 많은 일을 이제는 행정부가 하고 있다. 민의 역동성, 창의성을 발휘해서 민간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민의 영역을 행정부에 넘겨주면서 민이 행정부의 하부조직처럼 되는 우려가 있다. 민만이 가지고 있는 운동성, 역동성, 창의성을 다시 높여야 한다. 이 역할을 도봉구 시민협력플랫폼이 했으면 한다. 행사나 사업, 활동성과에 집중하지 말고 시민역량을 회복하는데 활동의 초점을 맞추기를 바란다. 시민단체의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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