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청년 이인철 / 에디터

9월 2일은 날이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도봉시민협력네트워크(이하 도봉시민넷)에 속한 도봉이어서와 도봉시민회가 마실을 다녀왔어요. 어디로 다녀왔냐고요? 도봉산역에 있는 평화문화진지!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도봉문화재단에서 진행한 「문화마실」 행사가 있었거든요.

도봉구가 지난해 12월 예비문화도시에 선정된 것 알고 계셨어요? 존중문화박람회 「문화마실」은 도봉의 법정문화도시 선정과 그간 도봉구 문화발전을 위해 애써온 다양한 활동가, 단체들과 도봉 주민이 만날 수 있는 연결의 장으로 열린 행사래요. 그래서인지 많은 도봉 주민들이 나와 행사를 즐기고 계셨더라고요.

그렇다면, 과연 도봉이어서와 도봉시민회는  「문화마실」 에 참여해서 어떤 일을 했는지 확인해볼까요?


날이 좋아서, 장소도 좋아서

 「문화마실」 행사를 진행한 평화문화진지 모습

여러분은 평화문화진지에 가보셨어요? 아직 안 가보셨다면 지금 빨리 피크닉 준비해서 달려가세요. 도봉산역에서 나와 피톤치드 가득한 창포원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공간인데요. 예전 대전차 방호시설과 시민아파트가 있던 공간이 평화를 상징하는 공간(더 자세한 설명 보기)으로 변한 거죠. 심지어 진짜 베를린 장벽도 볼 수 있고, 다양한 전시와 문화행사가 진행되고 있어요.

특히, 이 날은 날씨가 완벽했어요. 물론 더웠을 수도 있지만 사진에 다 담기 어려울 만큼 멋진 구름과 그 아래 도봉산 모습이 엄청 멋있더라고요. 이날 평화문화진지에 온 사람이라면 평화로운 날을 직접 경험하셨겠죠?


가볍게 즐기기 좋은 콘텐츠

이렇게 멋진 곳에 도봉의 많은 팀들이 모였어요. 덕분에 거리 삼위일체가 완성되었죠. 대체 거리 삼위일체가 뭐냐고요?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요! 배고프니 맛난 먹거리 먹고, 시원한 음료 하나 들고 이곳저곳 둘러볼 수 있는 거죠.

즐길거리 중에서는 체험부스가 꽤 있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면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도 있었어요. 환경생태를 주제로 부스를 운영하는 '안녕 상점'에서는 친환경 메모장 만들기 프로그램이 있었고, 양말목으로 코스터나 냄비받침을 만들어 볼 수 있는 부스도 있었어요. 저도 참여해봤는데 간단하면서 시간이 빨리 가더라고요. 하루만으로는 아쉬운  「문화마실」 😭

재밌는 공연도 있었어요. 시간 순서별로 다양한 공연이 준비되어 있어서 단조롭지 않고 여러 가지 아름다운 소리를 접할 수 있어서 귀가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하시거나, 수준급 악기 연주도 볼 수 있었죠. 저는 공연을 보기 위해 잔디에 앉아 있었는데요. 감미로운 노래와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달까?⛵️


QR만 찍으면 행운이 찾아와요🍀

앞에서 도봉이어서도  「문화마실」 행사에 참여했다는 거 말했죠? 도봉이어서는 QR코드를 이용해서 다양한 도봉의 시민단체나 행사들을 홍보했어요. 무작위로 배치되어 있는 QR코드를 찍어 나오는 행사를 확인하고 참가 신청도 할 수 있었죠. 이 QR코드들 사이에는 행운의 QR코드도 숨겨져 있었어요. 이 행운의 QR코드에 당첨된 분은 도봉이어서가 직접 만든 환경동화 '무수골에 무슨 일이?'를 드렸어요. 지역 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앞으로 도봉의 더 많은 행사를 알리기 위해 도봉시민넷과 더나은도봉이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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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59

 

역사만들기

(대표이사 이기만)

 

최근 비가 와서 그런지 하늘이 매우 맑고 깨끗하다.

들뜬 기분으로 창동역에서 환승을 해 15번 버스를 타고 우이동으로 향했다.

역사만들기 이기만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다.

핸드폰 앱에 의존해 길을 나섰지만 무용지물 또 헤맨다.

결국 이기만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도움을 요청했다.

친절하게 마중을 나오신 선생님을 따라 우이동 주택가로 들어섰다.

와~ 옛 정취가 그대로 남은 동네이다.

장독대와 단독주택들의 대문들이 눈에 띈다.

어릴 적 옛 기억의 동네가 떠올랐다.

추억을 소환하는 아름다운 동네이다.

 

파란색 대문 앞에 섰다.

갑자기 이기만 선생님께서

“개 좋아하세요?” 하고 물으신다.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저희 개가 사람을 무척 좋아합니다.”

“근데 좀 커요, 제 뒤에 붙어 따라오세요.”

 

마음을 졸이고 선생님의 뒤에 붙어 대문을 들어섰다.

덩치는 크지만 매우 순한 개인 것 같다.

하지만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못하고

선생님 뒤에 바짝 붙어 무사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무실이라기보다 정말 운치 있는 아름다운 서재 같다.

선생님께서 내주신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이 안식처 같은 공간을 두리번두리번 살필 수밖에 없다.

공간을 둘러 본 후 선생님과 탁자에 마주 앉았다.

▲ 역사만들기 사무실 입구

 

❍ 역사만들기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문화작업을 하는 주식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역사만들기는 주식회사이다.

외부에서 볼 땐 작은 단체 정도로 볼일 것이다.

실제로 작은 회사이다.(웃음)

 

주식회사를 설립하기 전에 협동조합도 고려했지만 책임소재가 분산되고 집행의 어려움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협동조합은 논의는 매우 잘 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지만 그 논의를 하나로 모으고 실행하는 데는 만만치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역사만들기는 처음부터 주식회사로 시작했다.

역사만들기는 지역의 역사와 지역민의 삶의 문화를 조사하는 회사이다.

우리나라에는 기초지자체가 총 250여 개 있다.

그 중 약 60여 지자체를 다니면서 조사하고 연구해서 해당 지역의 공식적인 역사문화서를 발간했다. 이런 일을 현재 30년째 하고 있다.

아마 이 분야에 우리만 한 회사가 없을 것이다.(웃음)

그런데 일을 해보니 이 일은 민간에서 할 일이 아니더라.

긴 시간투자와 연구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사실 이는 공공의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다.

 

❍ 연구조사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대개의 경우 지자체와 3년 내외의 기간을 설정하여 계약을 맺고 조사와 연구 작업을 시작했다.

연구용역 계약을 맺기까지 해당 지역의 대학이나 연구기관과 경쟁을 치러야한다.

계약을 마치면 그 지역의 연구자들과 함께 팀을 짜서 연구를 시작한다.

지역과 현장을 다니면서 녹음하고 조사된 자료는 대략 3,000~4,000페이지 가량의 책으로 발행된다.

이 과정은 길게는 4-5년 짧게는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처음부터 연구용역일을 맡아서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10년 정도는 디자인, 편집, 교정하는 편집대행 작업을 했고 20년차부터 연구자들과 함께하는 연구용역 작업을 하고 있다.

▲ 역사만들기 사무공간과 이기만 선생님

 

❍ 선생님께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80년대 학생운동을 했고 명동성당 청년회에서 활동했다.

당시 녹화사업(강제징집사건)에 의한 사망자사건을 조사하게 됐다.

83년 성탄 즈음 한희철 선배가 말년 휴가를 나왔다.

명동성당 청년회 행사를 보고 우리에게 열심히 잘한다며 격려를 하고 한 달 후에 보자는 약속을 하고 복귀했다.

그런데 한 달도 안돼서 총기 자살이란 비보를 받게 됐다.

여러 정황상 말도 안 되는 자살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학교나 일반사회에서는 손을 댈 수 없었고 종교계에서 이를 조사하게 되었는데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조사작업을 책임지고 맡아 진행했다.

조사권이 없다보니 희생자유족을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10여 명을 조사해서 보고서를 작성해 김수환 추기경님께 보고했다.

대학졸업 후 군대 가는 대신 청년단체 연합시위 주동자의 한 명으로 참여하여 구속이 되었다.

당시 시위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천주교, 불교, 기독교청년 및 문화운동단체 청년들이 연대해 대규모 가두시위를 조직하였다.

이후 출소를 한 후 빈민운동에 함께했다.

지금은 해체됐지만 천주교도시빈민회 활동을 통해 제정구 선생님과 정일우 신부님 등을 만나 빈민운동을 했다.

지금까지도 제정구 선생님만큼 존경하는 그런 사람은 없다.

 

당시 나는 지금의 도봉동, 상계동, 미아동, 정릉, 동소문동 등 서울북부지역을 담당하는 지역활동 총무였다.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천막농성을 했던 상계동 철거민들 중 남양주 배밭으로 이주해간 분들을 지원하는 작업과 여러 철거 재재발지역의 주민조직을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에 함께 했다.

그 후 제정구 선생님께서 정치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드셨던 1989년 무렵

나는 천주교도시빈민회를 나와 사회과학잡지 <민족지평>의 편집장으로 3년간 일했다.

이 잡지의 창간준비와 3년간의 발행작업, 그리고 마지막 폐간까지 함께 했다.

그때 편집위원으로 잡지 발간작업을 함께 했던 분이 한신대의 정건화 교수님이다.

 

잡지일을 정리한 후 충무로에 책상 하나 들고 나갔다.

내가 20대 때 가장 많이 했던 일이 유인물을 쓰고 만들고 제작하고 보관하는 일이다.

명동성당에 다닐 때 조사홍보부에서 기관지 만드는 일을 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출판 관련된 일을 자연스럽게 시작했던 것 같다.

 

‘큰기획’이라고 크게 기획하겠다는 의미를 두고 기획사를 설립했다.

가톨릭 어린이달력을 처음 기획해서 만들었다. 이 달력이 5년간 히트를 쳤다.

2년 정도 기획 일을 하고 있을 때 파주에서 파주지역의 군지를 디자인작업 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의뢰를 받고 보니 이것저것 제안해야할 부분이 많았다.

제안을 했지만 비용문제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돈은 안줘도 좋으니 권한을 달라고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서 지금의 지역사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 때가 1992년이다. 그 때부터 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처음 10년은 편집대행을 했고 20년차부터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용역 일을 하고 있다.

 

나는 학부에서 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이 작업을 하면서 관련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까지 밟게 됐다.

현재 연구자들이 하지 않는 영역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연구자들의 책임방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웃음)

 

강북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0년 전 한신대 정건화 교수님과의 재회가 계기였다.

지역사회를 위한 대학의 역할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도모하시던 정건화 교수님과 <지역>을 매개로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동북4구 지역자원 조사를 하게 됐고 현재 강북에 머물게 됐다.

 

성북 노원 도봉 등지에 대학이 많다. 하지만 대학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연구와 조사는 매우 보잘것없다.

오히려 도봉산이나 수락산 일대의 전통적인 주민조직이나 동제와 같은 마을의례를 지내는 주민들이 지역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다.

이 일대에 마을의례를 지내는 조직이 이직도 남아있다.

계모임, 상조회와 같은 형태로 20-30개 남아있고 지금도 2-3년에 한 번 의례를 진행한다.

서울지역에 아직 이런 조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에 상당히 놀랐다.

 

동제는 농업사회 전통으로 산신제이다. 산에서 제사를 지내고 산신령을 모셔와 동네를 돌며 동제를 지낸다.

동제는 온 마을사람들이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풀려나고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제사이다.

도봉산이나 북한산, 수락산, 불암산 등 산을 매개로 한 이 같은 동제는 동북4구 지역에 아직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 작업실 내(內) 자료들

 

❍ 동제의 주체는 누구인가요?

마을주민이다.

현재 도봉동도 2년마다 한 번씩 동제를 지내고 있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전통과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현재 리스트업 하고 있다.

현재 5천여 개를 리스트업 했고 보고서형식으로 작성된 책자도 발행했다.

지역자원을 어떻게 활용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에 착안한 것이 ‘이야기 가게’이다.

‘이야기 가게’는 문화자원을 사서 판매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문화도시 추진사업에 제안해서 현재 진행 중이다.

그래서 작년에 도봉구에서 6·25 경험을 한 경험자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활용사업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앞으로 그럴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6·25 경험자의 이야기를 당사자들에게서 직접 구입해서 학생들이 전쟁 경험자로부터 직접 전쟁과 관련된 강의나 수업을 듣는 것이다.

기본개념은 지역에 있는 주민의 특별한 경험이나 이야기를 사서 판매하는 것이다.

 

올 해부터는 도봉산 이야기를 수집하는 도봉산이야기가게가 운영되고 있다.

도봉산과 관련된 일화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가공해서 판매하고자 하는 사업인데, 도봉산 활성화와 지역 활성화를 위한 자원으로 쓰이게 된다.

도봉문화원 회원들의 이같은 노력이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길 기대하고 또 지원을 하고자 한다.

 

몇 해 전에 강북구에 4·19 이야기가게를 제안한 적이 있다.

4·19국립묘역에 가보면 시위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여러 다양한 증언이나 일화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4·19 희생자들 대부분이 경찰의 발포에 의해 사망했다.

희생자가 쓰러진 것을 본 사람이 있고 희생자를 병원으로 데려간 사람이 있을 것이고 희생자를 치료한 의사와 간호사가 있을 것이다.

이런 목격자들의 증언을 수집해 이야기를 자료로 남기는 작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잘 안됐다.

지금 이 시기가 마지막 시기이다. 이젠 목격자도 연로해 거의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게를 문화도시 도봉에 제안했다. 현재 도봉에서는 이야기가게를 진행 중이다.

아직 초보적 단계에 있지만 현재 도봉산과 관련된 이야기가게가 진행 중이다.

우리는 역사만들기에서 발굴한 지역자원들이 지역 활성화와 지역재생에 쓰일 수 있도록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다.

▲ 역사만들기 사무실 내(內) 자료실

 

❍ 역사만들기에서는 어떤 취지로 일하는지 궁금합니다.

철거반대투쟁을 하면서 철거민의 삶과 집 없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지역민의 history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내력들을 수집하고 알리는 작업을 했다.

향토사 작업을 하는 현재는 글이나 문서와 같은 자료를 남길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역사를 기억과 구술사 그리고 그의 생애사를 통해 작업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현재 살아온 이야기도 함께 작업한다. 평가는 나중에 할 일이다.

 

시군지나 향토지를 보면 우리가 했던 다양한 작업방식을 그대로 활용해서 발행하고 있다.

사진자료집 만들기는 역사만들기를 통해 처음 유포되기 시작했다.

자료집 만들기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붐을 일으켰다.

 

시중에 있던 역사관련 책은 내용도 어렵고 분량이 무척 많다.

그래서 역사만들기에서 역사의 대중화 작업을 시작했다.

내용의 대중화, 대장의 대중화 그리고 현재화이다.

사람중심, 현재중심, 주제중심으로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재구성했다.

이것이 역사만들기이다.

 

역사만들기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지역에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야지 엉뚱한 이야기를 해서 되겠는가?

 

그리고 과거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최근에 살아온 현재이야기도 담는다.

이야기를 나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로 이야기한다.

의식주가 됐든 문화가 됐든 교육이 됐든 환경이 됐든 주제중심으로 풀어간다.

 

우리가 작업을 위해 지역으로 들어가면 2,3년이 걸린다.

재미있긴 하지만 매우 힘든 작업이고 수익이 안 되다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오래 붙어있지 못한다.

결국 이 작업은 공공의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공공의 영역에서 움직이지 않으니 우리가 손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공을 찾아가 제안하긴 했지만 잘 안됐다.

그렇다면 시간이 걸려도 우리가 하자라고 결의하고 계획을 잡았다.

우선 사람을 만들고 남겨야했다. 전국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서로 강화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 힘으로 전국을 다니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한 번은 적은예산으로 통영의 섬지역을 조사해야했다.

우리 인원으로 그 많은 작업을 할 수 없어 해당 지역과 인근지역의 전문가들과 연계해 함께 작업했다.

그로서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예산이 적다고 해서 일을 엉터리로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목표는 반드시 달성한다.

우리는 생활방식 중에서도 특이한 방식이나 공개되지 못한 이야기를 찾아 작업한다.

 

❍ 향토사연구 작업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최근 옹진지역을 작업했다. 6·25 당시 옹진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조사를 시작했다.

옹진 7개면 섬을 다니면서 104명을 만나서 인터뷰를 정리했다.

그리고 연구보고서를 작성해서 군에 제출했다. 하지만 군에서 보고서를 반려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가 옹진 쪽이다.

덕적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6·25 당시 상황을 증언해주었다.

한국전쟁 공식 6·25 전쟁사를 보면 군인들이 덕적도에 상륙해서 적군 7명을 사살해 전과를 올린 기록이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당시 사살 된 7명을 모두 찾아냈다.

놀랍게도 모두 민간이고 그 중 2명은 임산부였다.

사실 이런 내용을 찾으러 옹진군을 찾은 것은 아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사람들이 그냥 자신들이 목격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올 해로 6·25가 70주년이 됐다.

이런 증언을 할 정도면 증언자의 나이가 당시 최소 연령이 15살에서 20세는 돼야한다. 현재 나이 85세에서 90세의 사람들이다.

이 분들이 증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젠 다 이야기해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살면 얼마나 살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분들이 원하는 것은 한 가지이다.

이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실만을 비석에 남기라는 것이다.

 

이곳엔 해병대 상륙기념비가 많이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두더라도 이곳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진실을 밝히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희생된 민간인의 비석을 남겨달라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하면서 국가기록과 지역의 기록이 극단적으로 대치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니 군에서는 당연히 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연구보고서가 반려되면서 우리는 이를 책으로 출판하기로 했다.

역사만들기에서 <옹진 지역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한국전쟁 이야기>를 올 6월에 출판했다.

 

지역을 다니면서 전쟁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민이 어떻게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리고 이러한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지역과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지역활동가와 지역운동가는 마을과 지역의 역사성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넓어져야한다. 현재 활동가들의 활동 반경은 넓어진 반면 깊이는 상당히 낮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연구는 지역의 활동가들이 해결할 일은 아니다.

상계동 마들 평야나 도봉지역의 역사성 등에 관한 이야기를 누군가 듣고 찾아내고 모으면서 지역의 역사가 나온다. 이런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것을 활동가들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연구기관이 필요하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 살았던 당사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료 등을 수집하고 가공할 수 있는 연구기관내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을 해줄 수 있는 기관이 없다보니 우리가 그 역할의 일부를 전국을 다니면서 하고 있다.

 

우리는 원천소스를 찾아주는 노력을 하고 있다.

여주의 경우 명성황후와 관련된 다양한 자원을 4년에 걸쳐 연구자와 지역민이 함께 수집하고 세미나와 조사를 통해 명성황후와 관련된 지역정보를 만들었다.

 

예산에서는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자료를 조사하면서 김정희선생님께서 자주 먹었던 음식이나 생활문화와 관련된 소스를 지역민에게 공유했다.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와 콘텐츠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지역의 인물이나 이야기는 지역의 원천소스로서 지역의 특색을 드러내는 상품이나 문화콘텐츠로 활용돼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킨다.

▲ 이기만 선생님(왼쪽)과 사람을 좋아하는 검은 개(犬)(오른쪽)

 

❍ 지역문화를 조사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지역)문화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는 상당히 중앙집권적이다.

지역운동가나 지역활동가의 지향은 결국 풀뿌리이다.

풀뿌리를 통해 지속성과 경제력이 생겨야 지역이 튼튼해진다.

풀뿌리가 튼튼해지고 제도화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역의 정치인들은 지역경제에 관심을 갖긴 하지만 그 토대가 매우 취약하다.

그러다보니 지역주민들이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조직하게 된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그 지역의 공동체적인 삶에 관한 소스를 찾고 제공해준다.

그리고 공유자원 활용방법을 알려준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경제이기도 하다.

 

지방에서 공유자산을 관리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눈물이 날 정도이다.

통영의 바닷가에서 갯지역을 나눠 활용하는 방법이나 바다자원을 공유하는 방법이나 산에서 나는 특산물을 공동체적으로 어떻게 관리하고 나누는가를 보면 대단히 합리적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피눈물 나게 공정하게 삯분 했는지는 문서를 보면 다 나와 있다.

 

그 중 계(契)는 대단히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릇계의 경우 평생 몇 번 쓰지 않는 그릇을 집에 쌓아둘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릇계를 통해 잔칫날이나 필요한 때에 빌려다 쓰는 계이다.

그 밖에 장례계, 결혼계, 장구계, 밥계 등도 있다.

지역의 한 마을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

금전부터 경조사 그리고 노는 것까지 모두 마을 안에서 해결된다. 이것이 마을인 것이다.

 

❍ 최근 공동체적인 삶을 회복하기 위해 곳곳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마을의 공동체적인 삶이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서울에서의 마을 만들기는 차원이 다르다. 서울은 이제 더이상 농업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서의 마을만들기는 옛 마을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한다.

마을에 대한 환상을 깨려는 것이 아니다. 마을은 농업사회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이것이 역사성이다.

 

지금은 산업사회이고 고도화된 정보사회에서 사이버 마을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이 모든 것을 다 해준다는 환상은 버려야한다.

대신 당시 마을의 공동체적 정신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깊이 간직하면 된다.

 

❍ 역사만들기는 앞으로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지역민의 이야기와 삶은 정치제도와도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러한 부분들을 자료로 잘 정리해서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게 만들고 활용되도록 하려고 한다.

앞으로 10년간은 연구용역일을 하면서 자료 플랫폼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가 조사하고 만들었던 자료와 활용했던 자료를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

책으로 된 자료는 10%도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작업 중인 자료는 일반인들이 보기엔 다소 내용이 어려울 것이다.

연구자들이나 그 외에 전문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지역정보가 나오긴 하지만 제대로 정리돼있지 않다.

그러한 부분을 보충하고 좀 더 전문적인 정보를 실어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인수봉 숲길마을과는 어떤 인연으로 활동하시게 됐나요?

오랫동안 앉아서 일을 하다 보니 고관절이 안 좋았다.

한신대에서 활동할 당시 인수봉 숲길마을에 들어가서 몇 년간을 살았다.

몸이 안 좋다보니 풀들을 보게 되고 자연에 관심이 많았다.

인수봉 숲길마을은 자연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꽃나무교실을 열고 수업도 했다.

나무를 심고 주민들과 함께 어울렸다.

그러다보니 부대표로 선출됐고 인수봉 마을에서 함께 활동했다.

당시 인수동 숲길마을이 <꽃피는 서울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때 활동을 참 재밌게 했다.

동네에서 작은 사진전시도 하고 식물전문가를 불러서 강의도 듣고 염색 교실도 운영했다.

이곳 우이동으로 이사 오면서 인수동 숲길마을 활동이 뜸해졌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가슴 뜨거워지는 경험을 많이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조사하고 수집해서 정리하는 전기를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지역 일을 하게 된지도 모르겠다.

 

인수동 숲길마을엔 노인 분들이 많이 거주한다. 자녀를 출가시키고 빈방이 많다.

자녀들이 출가한 빈방을 게스트하우스 목적으로 수리해서 마을도 홍보하고 수익도 창출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이것이 서울시에서 말하는 마을기업이다.

인수동 숲길마을이 ‘꽃피는 서울상’ 대상을 받으면서 자연마을 탐방코스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했다.

인수동 숲길마을의 큰 그림을 그려보면 이곳을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어서 외국인들이 머물게 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한달살이 할 외국인을 받아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한달살이를 경험하게 하고 지역홍보를 하는 것이다.

이곳에 머무르는 체재비는 받지 않는다. 대신에 이곳 마을사람들이 외국인의 마을로 한달살이를 같은 조건으로 떠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경비를 쓰지 않고 이렇게 해외네트워크를 형성해 놓고 점점 확대해 가면서 마을기업으로 운영하면 좋을 것 같았다.

처음 시작은 수익이 아니라 마을주민에게 일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마을회관에 모여서 기타 치고 우크렐라도 하면서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부터 시작해서 함께 모여 친환경 빵도 만들어 보고 실험적으로 이것저것 마을일을 재밌게 하다보면 마을기업을 위한 단계를 하나하나 밟게 되는 것이다.

 

❍ 지역역사의 산증인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현실에서 이 많은 분들의 증언이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어떻게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지역에서는 작업을 많이 하지 않고 지방에서 주로 작업했다.

이 분들의 생애사를 보면 혼자서 잘 먹고 잘 산 사람은 거의 없다.

이웃과 함께하면서 근검하게 생활한 흔적이 많다.

이러한 지역민의 역사와 이야기는 지역에서 담아내야한다.

지역활동, 마을활동, 문화활동을 통해 지역이야기를 풀어내야한다.

우리(역사만들기)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문화도시에 가서 이런저런 제안을 많이 한다.

책으로 발행되는 것 외에 더 확장된 작업은 지역에서 풀어내야한다고 말한다.

 

지역정보는 지역민의 삶에 녹아있다. 우리는 그 소스를 찾아내고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한다.

이런 자원은 영화, 광고, 도시재생 등 지역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과 연결된 모든 것에 유용하게 쓰인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그 삶의 문화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이런 의미들이 재생과 만날 때 문화적 재생은 중요하고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때문에 문화도시가 갖는 의미도 큰 것이다.

 

❍ 역사만들기 직원은 어느 정도 인가요?

정직원은 3명이고 관리, 기획, 연구위원 등은 상근은 아니지만 전속돼서 함께 일한다.

 

❍ 문화도시에 대해 큰 의미와 기대를 가지시는 것 같습니다. 문화도시에 대한 나름에 상(想)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재작년 도봉구에서 문화도시를 준비하면서 문화도시준비위원회에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나는 문화도시에서 공공성을 목표로 하는 도봉문화주식회사 설립을 제안했다.

도봉구에 도봉문화재단이 있지만 수익을 남길 수 없으므로 문화도시사업을 통해 인큐베이팅 하는 과정에서 수익창출이 가능한 문화주식회사 설립기반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왜냐하면 정부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예산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려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아야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문화도시 사업의 한 꼭지로 문화주식회사 설립 기반을 위한 계획과 실험이 들어갔으면 한다. 사업성을 따져보고 수익을 남길 수 있는 형태나 구조로 사업을 실험해보면 좋겠다. 수익이 발생하게 되면 그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열악한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우선 도봉의 문화도시 사업 중 하나는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 사업아이템으로 구성하고 이익을 남겼으면 한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문화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와 지원체계가 마련됐으면 한다.

그 사업체 역할을 나중에 도봉문화도시가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로 도봉문화도시가 지역에 있는 문화예술인들과 네트워크를 하면서 쌍방을 지속적으로 연계해주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면 좋겠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인들이 공동의 목표를 갖고 서로 연결돼서 회사나 협동조합을 설립 운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면 좋겠다.

도봉문화도시는 문화적 가치를 함께 공유하면서 도봉의 가치를 브랜드화 하고 이를 점점 확산하는 방식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문화기업을 만들었으면 한다.

규모 있는 주식회사를 만들어서 이사회를 조직하고 논의도 명확히 해서 일을 효과적으로 집행했으면 한다.

주식회사의 목표를 공공성에 두고 (주주)이사들이 이에 합의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관을 통해 공적인 목표를 명시하고 그에 대한 수익금은 공적인 목적을 위해 쓴다고 규정하면 된다. 나의 생각은 그러하다.

 

▲ 감사패 및 상패

 

❍ 문화재단과 문화기업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문화재단은 거버넌스이다.

거버넌스를 하는 순간 재정사업에 편입된다. 피할 수 없는 구조이다.

재정사업은 기본적으로 수행해야하는 사업이 있고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문화기업이다.

물론 그 대안으로 협동조합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보다 공공성을 강화시킨 이윤동기에서 출발한 문화주식회사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 말씀하신 문화주식회사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문화주식회사는 돈으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본이다.

문화주식회사는 일반주식회사와 질적으로 달리 가야한다.

규모는 더 많은 점을 만들고 그 점을 연결시키는 플랫폼으로서의 주식회사가 돼야한다.

 

❍ 공감되는 말씀이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며 시민자산화의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정부의 지원이 끝난 후 지속가능의 길은 어려운 것 같다.

공공에서 지원하는 기본체계는 물적 토대를 지원해주는 것이었다.

장소, 사무실 제공 등을 지원했다. 장소를 제공하면 변화가 있을 줄 알았지만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은 소프트웨어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벤처지원을 했다. 그리고 사회적 경제를 통해 물건을 사기도 하는 등의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정부의 물적 토대이든 금융에서의 지원이든 혹은 무상지원이든 영원히 지원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평등성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부나 공공에서 지원하는 것은 바운더리가 있다.

그 바운더리가 점점 넓혀지고 있긴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공공의 지원이 끊기면 그간 해온 사업이 지속되지 못하고 문을 닫거나 폐쇄된다.

하지만 이런 많은 실패에도 성공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그 성공한 사례를 찾아서 집중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

 

❍ 30년 가까이 역사만들기 작업을 하시면서 힘든 일도 많이 있었을 텐데 힘듬에도 선생님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오기 같다.(웃음)

예전에 YTN으로부터 세게 한 방 얻어맞은 적이 있다.

당시 경기도 문화재 안내판 개선작업을 할 때였다.

파주 자운서원에 가면 ‘율곡선생께서 사액서원’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사액서원은 임금으로부터 포상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영문번역가가 잘못 이해해 ‘율곡선생이 사약’을 받았다고 번역해 문제가 됐다.

사실 안내문을 확인하고 정정할 수 있는 과정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우리에겐 잘못된 부분을 보완하고 피드백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방송을 통해 문제제기가 되고나니 경기도와 파주시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핑퐁게임처럼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다.

결국 책임은 안내판 작업을 한 우리 회사로 넘어왔고 인터뷰 요청이 왔다.

나는 실수를 인정하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고 거르는 시스템이 부재하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매우 일방적이고 관료적이다. 이런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 라고 말했다. 이 멘트가 방송으로 나갔고 이 말이 아나운서에겐 울림이 됐다고 한다.

실수를 하더라도 올바름에 대한 신념이 있다면 많은 것이 설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작업을 해보니 역사는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

사실을 기록하고 평가는 나중에 하는 것이다.

목소리를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가 가야할 방향과 해야 할 일에 대한 신념과 확신을 갖는 것이다.

이런 확신과 믿음 속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

 

사실 이일을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말했듯이 돈도 안 되고 힘든 일이다.

처음에 나는 내가 잘나서 이일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안하니까 내가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웃음)

앞으로는 일을 벌이기보다 한 일들을 농축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 힘든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나이가 들어가고 몸이 아프다는 것이 힘들다.(웃음)

인력을 확보해서 일을 진행해야하는데 그 부분이 더디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과 조인이 안 되는 부분이 매우 스트레스이다.

 

역사만들기에서 함께 일했던 스쳐간 사람들이 이 영역에 절반 정도 일하고 있다.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오래 일하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우리에겐 한 사람이 중요하다.

함께 했던 사람을 놓친다는 것이 제일 힘들다.

 

❍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을 위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원론적인 방법이겠지만 플랫폼은 사람들이 오가는 정거장이고 모이는 공간이다.

결국 네트워크이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정거장이 있는 이유는 기차가 오고 또 가기 때문이다. 기차는 사람을 운송하는 수단이다.

플랫폼은 정체돼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공간이다.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아이템이나 소스거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이슈나 의제를 잘 장착하고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있으면 좋겠다.

 

함께보면 도움이 되는 인터뷰와 정보입니다.

클릭하세요!!! ↓↓↓

 

☞ 도봉문화원 인터뷰가기 dbplatform.tistory.com/222?category=741713

☞ 도봉문화재단 인터뷰가기 dbplatform.tistory.com/135?category=741713

☞ 도봉문화재단 간송옛집 인터뷰가기 dbplatform.tistory.com/121?category=741713

☞ 송석재단 인터뷰가기 dbplatform.tistory.com/77?category=741713  

함석헌 기념관 인터뷰가기 dbplatform.tistory.com/170?category=74171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54

 

 

 

도봉문화재단 문화도시추진단

(단장 민경찬)

 

 

지속되는 장마와 코로나로 인해 갑갑한 터에

오늘은 간만에 비가 내리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대중교통 이용자가 줄었는지 전철 안이 휑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로선 편하니 좋다.

 

오늘은 문화도시도봉추진단 단장님을 만난다.

도봉 내에 여러 문화 사업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문화도시도봉에서는 지역에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궁금하다.

그 이야기와 함께 단장님의 활동이야기를 들어본다.

 

어딜 가도 발열체크와 손소독은 필수가 됐다.

자동발열 체크 후 도봉구청에 들어서니

바로 앞에 도봉구민청 운영지원실이 보인다.

 

구민청 3층에서 뵙기로 했는데

구청 사무실 3층에서 기다린 나는

친절히 안내해주신 단장님의 말씀에도

엇갈리며 왔다 갔다 하다 겨우 만나게 됐다. ㅎㅎㅎ

단장님의 안내로 세미나실에 마주 앉았다.

 

 

▲ 도봉구청 내(內) 도봉구민청

 

 

❍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6월부터 문화도시도봉추진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전에는 강북과 도봉에서 음악회나 콘서트를 총감독하는 예술 감독으로 활동했다.

규모 있는 콘서트의 시나리오를 쓰고 총연출을 맡아 공연을 개최했다.

어린이 합창단 지휘감독을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쳤고 초·중·고에서 문화예술을 통한 융합교육을 했다.

음악과 인문학을 연결해서 가르치고 미술과 문학 그리고 명상 등을 접목하여 융합교육을 했다.

 

교육을 통해 빠르게 변화되는 아이들에 비해 부모와 선생님, 어른의 변화는 상당히 정체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이를 깨달은 후부터 어른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학부모를 비롯해 선생님, 기관장 등 교육과 관련된 업계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을 폭넓게 만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정 중에, 오마이 뉴스의 오연호 대표를 만나게 되면서 한국의 인생학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국의 인생학교는 덴마크의 ‘애프터 스콜레’(청소년 인생학교)를 벤치마킹한 ‘꿈틀리 인생학교’이다.

강화도에서 처음 시작했고 5년 정도 됐다.

 

☞ 꿈틀리 홈페이지 가기   http://www.ggumtle.com/html/home.html

 

인생학교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덴마크는 중학교를 마친 후 1년 정도 쉼을 가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

그 과정에 자신의 적성을 찾고 인생 공부도 한다. 이과정이 의무는 아니지만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을 한국에 도입해서 ‘꿈틀리 인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작년부터는 어른을 위한 인생학교를 전남 신안군에서 시작했다.

짧게 2박 3일이든 일주일이든 원하는 기간만큼 섬에서 쉼을 가지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꿈틀리의 인생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한 계기로 성인을 위한 인생학교에 교장으로 함께 하게 되었다.

섬마을에 있는 인생학교를 방문하시는 학부모, 선생님, 정부기관을 비롯한 여러 단체의 리더들, 청년들과 함께 인생수업을 하고 있다.

 

❍ 강북에서 활동하시다가 도봉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도봉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강북문화재단에서 주최한 공연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면서이다.

내가 음악감독으로 함께 한 공연에 도봉문화재단 상임이사님 부부가 참석했는데, 그 공연을 보고 감동을 했고,

도봉문화재단 주최 콘서트 총감독을 내게 의뢰하면서 도봉과 인연을 맺게 됐다.

 

도봉에서 첫 활동은 평화문화진지 개관식 콘서트를 총감독했다. 그 후 역사문화콘서트 ‘푸르게 더 푸르게’를 맡아서 감독했다.

이 공연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의 역사이야기를 음악, 춤, 영상, 캘리,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연결하여

담아냈고, 한 두 명의 유명인을 중심이 아니라, 지역의 시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 진행했다.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지만, 모두가 주인공인 공연을 하고자 했다.

도봉문화재단에서 6개월간 함께 했던 ‘도봉시스터즈’를 비롯해 지역아동센터, 도봉구립어린이합창단, 어르신 합창단

그리고 지역청년들과 청소년들이 함께 하면서, 모두가 함께 감동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세월호 5주기 때 있었던 416기억문화제의 총감독을 맡기도 했다.

관이나 재단의 주관한 행사가 아니라, 오롯이 시민들이 주관하고 함께 마음을 모으고 힘을 모아 진행한 문화제여서

더욱 기억에 남는 공연이었다. 이 때, 도봉의 시민력을 눈앞에서 확인하며, 도봉의 가능성을 보았다.

 

작년 도봉산축제 때는 ‘문화가 있는 날’에서 주관한 역사문화콘서트 ‘씨ᄋᆞᆯ의 소리’의 총감독으로 함께 하기도 했다.

도봉의 인물인 함석헌 선생님과 전형필 선생님의 이야기를 엮어서 대규모 음악회를 진행했다.

이 때도 어린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약 200여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함께 했고,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한껏 누리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문화도시 사업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문화도시는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라 지역별로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활용해서 문화 창조력을 강화하고

지역문화 균형발전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정한 도시를 의미한다.

 

도봉은 이전부터 ‘문화도시’를 표방하며 ‘문화도시 도봉’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여기까지 왔지만,

문체부가 지정한 법정 문화도시와는 좀 다르다.

법정문화도시로 지정이 되면,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그리고 지자체가 일부 부담하여 조성한 지원금을

5년간 최대 200억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물론 더 적어질 수도 있다.

 

원래 문화도시로 지정되려면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사업에 선정된 후 문화특화지역조성 사업을 추진해야 했다.

그러나 올 해 부터는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에 참여를 하지 않은 지자체도 누구나 참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만 41개의 지자체에서 법정 문화도시 지정을 받기 위한 조성계획서를 제출했고,

경쟁은 내년까지 더욱 치열해 질 예정이다.

도봉구는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에 선정되며, 법정 문화도시 지정을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올 6월부터는 ‘문화도시 사무국’과 추진단이 출범했다.

문화도시도봉사업은 지역의 다양한 문화자원을 활용해 관주도의 문화정책이 아닌 주민 주도의 문화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화도시 추진단은 도봉구의 시민들로 구성된 거버넌스로서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되기 위해 노력 중에 있고

문화도시도봉사업이 원활히 추진되고 공고화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고 뒷받침하기 위해 구성됐다고 보면 된다.

 

❍ 문화도시 사업은 현재 전국에서 시행되고 있나요?

그렇다. 문화도시 사업이 시행된 지 3년 정도 됐다.

지금까지 17군데가 선정됐지만 서울지역에서 선정된 곳은 아직 한군데도 없다.

왜냐하면 문화도시 사업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목적이 크기 때문에 지방보다 상대적으로 문화인프라가 좋은 서울이 지정 받기 더 어려운 상황이다.

 

❍ 사실 도봉구는 서울권에 해당되지만 다른 구에 비해 열악한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을 정부에 어필해서 문화도시 사업을 받으면 좋을 것 같다.

그렇다. 그 부분을 잘 풀어서 설득하고 있다.

단 풀어가는 방법이 관주도가 아닌 지역주민과 함께 민관협치로 풀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 부분이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 문화도시추진단/ 단장 민경찬

 

❍ 현재 민관협치는 잘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제 막 시작해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웃음)

6월에 시작해서 7월에 문화도시추진단 승인과 조성계획서의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추진단장 조인식을 했다.

문화도시추진단은 민으로만 구성됐고 활동가, 단체장, 관장, 센터장, 주민 등 각계각층의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도봉구는 다른 구에 비해 민관협치가 잘된다고 인식돼있다. 그럼에도 민관협치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협치가 잘되는 부분은 잘 되지만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도 있다고 주변에서 이야기한다.

추진단장을 하면서 꽤 많은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많은 분들이 민관 거버넌스의 한계와 우려 점들을 말씀하시며, 도봉의 민관 협치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비유하기도 하셨다.

정책에 참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함께 했지만 결국 결정권을 가진 관주도로 가게 되는 것을 경험한 여러 시민들의 목소리가 무게 있게 다가왔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 시민들의 이야기에 너무나 깊이 공감되었고, 그와 동시에 풀어가야 할 숙제가 많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민관 거버넌스를 잘 만들어가는 것이 추진단장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 단장님은 민관협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관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은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 분들이 실제로 감당해주시는 부분이 상당히 크다.

사실 그분들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 일들이 꽤 많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민에서 느끼는 기울어진 운동장과 관 중심으로 일이 진행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사람 중에 한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상호 존중 없이 협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협치는 관에서 느끼는 한계를 민과 함께 극복하고, 민이 할 수 없는 부분은 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적절한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서로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민이 잘 성장해서 관이 민을 파트너로 신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과 싸워서 무언가를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관이 상호 보완하는 관계로 함께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가능성을 본 것이 작년 <씨ᄋᆞᆯ의 소리>를 준비하면서이다.

이 콘서트는 구청과 도봉문화재단 그리고 민이 함께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민관이 서로 협의하고 맞춰가는 과정을 보면서 민관협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느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작품에 대한 모든 콘텐츠와 사람 등 많은 것을 민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은 최대한 민을 존중했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중하며 사업을 진행했다.

물론 만만치 않은 조율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은 서로의 협조하며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민관협치에 있어서 서로의 차이를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고 다름으로 인정하면 좋겠다.

무지개색상 빨, 주, 노, 초, 파, 남, 보가 있다.

각각의 색상이 더 선명해진다고 나쁜 것이 아니다. 훨씬 더 아름다워진다.

만일 각각의 다름을 따로 보지 않고 하나의 연결된 무지개로 본다면 연결을 통해 더 아름다워지고 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4·16 기억문화제를 함께하면서 도봉시민의 저력과 시민력을 보았다.

가치 있는 일에 동의가 됐을 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고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봤다. 이를 보면서 많이 놀랐다.

관의 시야밖에 있는 사각지대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은 민이 더 잘 본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관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부분은 민의 도움으로 해낼 수 있다. 또 민은 관의 행정력의 도움으로 필요한 자원이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민관이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나 관점의 차이를 잘 정리하고 마음을 모아서 하나의 가치를 중심으로 일한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업주체가 사업진행과정을 공정하게 하고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모두가 납득하고 인정한다면 관도 민간단체를 믿고 함께 파트너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도 민의 도움이 필요하다. 관에서 손닿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공평하게 좋은 성과를 내려면 결국 민의 도움이 필요하다.

민에서는 관을 성과주의라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관이 시민들을 위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시민들이 즐겁고 행복한 것이 관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 성과를 관이 가져가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민관이 함께 그 성과를 누리며, 도시 전체가 함께 성장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관의 체계는 만만치가 않다. 쉽게 바뀔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바꾸더라도 관 스스로 안에서부터 바뀌어야지, 밖에 있는 시민들이 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위해선 시민의 역량을 키우고 하나된 목소리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으로는 힘들지만, 역량 있는 시민들의 하나된 목소리가 있다면, 관이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문화도시 추진단이 그렇게 역량이 있는 민관 거버넌스가 되면 좋겠다.

 

민관 모두 각각의 펼쳐내고 싶은 욕구와 꿈이 있을 것이다. 이런 한 욕구와 꿈을 펼쳐낼 수 있는 도봉구가 됐으면 좋겠다.

풀어가는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종국에는 모두가 함께 잘살자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공감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민관의 목표를 퍼즐의 작품으로 비교하자면 퍼즐작품을 만들어 내기까지 한 조각 한 조각을 끼워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맞지 않는 퍼즐조각을 힘으로 구겨서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퍼즐조각을 돌려도 보고, 다른 것을 끼워도 보며 맞춰가는 과정과 수정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함께 일함에 있어서 설명과 설득 그리고 타협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관협치는 민관이 서로 시너지효과를 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긴장감과 견제도 필요하다.

하지만 서로 충돌해서 침몰하는 것이 아니라 차전놀이처럼 서로 상승하는 효과를 내야한다.

 

▲ 도봉구민청 3층/ 문화도시추진단 사무실

 

❍ 문화도시도봉을 만들어 내기 위해 막 협치를 시작하셨는데 잘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하게도 도봉구 안에서 협치의 경험을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시다. 그 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받고 있다.

물론 피해갈 수 없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협치의 경험이 있으신 분들의

고견을 반영해 미리 피할 수 있는 부분들은 피하고 예방하면서 잘 풀어가려고 한다.

 

저를 믿고 단장으로 승인해주신 추진단원들과 의견을 나누며 그 분들의 도움을 받아 문화도시를 함께 만들어 가려고 한다.

앞으로 수행해야할 사업이 많겠지만 사업을 빨리 진행하기보다는 거버넌스를 잘 세워서 시민들이 잘 협업하고

서로 존중하는 관계에서 일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우선 거버넌스 구축에 집중하려고 한다.

 

문화정책을 긴 안목에서 장기적으로 펼쳐가려고 한다. 그동안의 문화정책은 단기적이고 연속성이 없었다.

이것이 2년 마다 임기가 바뀌는 관의 한계이기도 하다.

열심히 문화정책을 수행했음에도 여러 한계에 부딪히는 지점들이 존재했다.

그러한 한계를 문화도시를 통해 극복하고 풀어가려고 한다.

 

도봉에 문화재단, 문화원, 문화예술지원센터 등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기관이 꽤 있다.

시민들이 보기에는 실행주체가 누가 됐든 비슷한 행사와 축제를 반복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도시가 또 다른 문화단체가 돼서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도봉구 문화전체를 융성하게 하고

구민들의 선택지를 넓히고 소외되는 곳 없이 균형 있게 문화혜택이 닿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이 모든 활동의 근간에는 도봉주민으로 구성된 문화도시추진단이 있다.

 

❍ 문화도시추진단원의 임기가 있나요?

추진단의 역할이나 임기 그리고 사업방향이나 사업의 구제적인 내용은 현재 마련해 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도 소그룹으로 모임이 있다.

현재 문화도시추진단은 사업실행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문화정책에 기여하고 사업방향에 대한 논의와 결정을 위한 단위로 생각하면 된다.

아직은 거버넌스를 세우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거버넌스를 세우는 과정 중에 조례와 내부방침 등 세부적인 내용들을 촘촘하게 채워갈 것이다.

 

❍ 처음 문화도시를 상상했을 때 건물이나 지역공간을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차원의 문화도시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 건물을 짓거나 외적인 하드웨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휴먼웨어이다.

사람들을 중심으로 풀어가려고 한다. 도봉주민은 매우 역동적이고 내부적으로 꿈틀거림이 있다.

이는 사람을 귀하게 여겼던 함석헌 선생님의 씨ᄋᆞᆯ 사상과도 잘 연결된다.

그렇다고 문화도시가 함석헌 선생님의 사상을 전파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함석헌 선생님의 씨ᄋᆞᆯ 개념을 가져와서 도봉의 시민들의 힘과 가능성을 설명하고 가치를 모으려는 것이다.

 

함석헌선생님이 말한 ‘씨ᄋᆞᆯ’은 순 우리말로 하면 ‘씨앗’이고, 동시에 ‘민(民)’이고 ‘민초’이다.

씨앗처럼 지금 당장 다 볼 수 없지만, 무수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다.

씨앗이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땅에 떨어져 다시 씨앗의 역할을 한다. 그렇게 숲을 만들어간다.

이 생명의 선순환이 도봉 문화의 선순환이 되길 바란다.

한 개인이 씨ᄋᆞᆯ이고 그 개인이 존중받고 자연스럽게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려 좋은 공동체를 이루고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 활동하시면서 어떤 부분이 힘드신가요?

아무래도 협업이다. 민관협치를 해야 하는 부분이 어렵다.

무언가가 드러났을 때는 그 배경에 많은 맥락과 콘텍스트가 존재한다.

이런 맥락을 빠르게 파악해서 대처해야 하는데 아직 서툴러서 더디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알아가고 시스템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현재는 버벅거리면서 따라가고 있다.(웃음)

 

❍ 활동하시면서 동력이 되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나는 4아이의 아빠이다. 큰애가 고 1이고 막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다.

내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내가 만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다.

 

현재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노래하는 아이들을 통해 굉장히 많은 힘을 얻는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시고 힘을 모아주시는 분들로부터 많은 동력을 받는다.

 

각 사람 안에는 사람이기 때문에 심어져있는 좋은 씨앗이 있다.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씨알사상과도 맥을 같이한다.

 

음악을 듣고 반응하는 존재가 사람이다. 원숭이는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원숭이는 아무리 심심해도 벽에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말하지 않아도 사람은 그림이나 영상을 보고

혹은 음악을 듣고 그 뒤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와 이야기를 캐치하고

깨달을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음악만으로도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이런 변화의 경험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좋은 것들이 밖으로 발현된다.

이런 변화의 경험을 확인할 때 많은 힘을 얻는다.

 

❍ 활동경험을 토대로 우리가 변화돼야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난 번 민민미래기획단 모임에 참여했을 때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모두 납득될 만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결론이 없었다.

다양함 속에서 공통분모를 찾고 공감하는 부분을 부각시켜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지지하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다.

 

❍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기대하는 바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시민사회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에 활동경험이 많은 분들이 계실 것이다.

이런 분들과 잘 연결돼서 개인 활동가와 시민사회가 함께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었으면 한다.

관이 무시할 수 없는 파트너가 되려면 시민들의 마음이 모아지고 실력도 갖추어야한다. 또한 풍성한 내용도 있어야한다.

시민사회단체로서 고유의 제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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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기념관 인터뷰가기 dbplatform.tistory.com/170?category=741713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51

 

도봉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사영미팀장)

 

 

매번 새로운 분들을 만나

활동과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늘 설레고 힘이 된다.

 

한 번도 얼굴을 뵌 적 없는 분을 만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오늘은 도봉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사영미 팀장님을 만난다.

어떤 분인지도 궁금하고 또 어떤 색다른 이야기와 경험이 있을지

벌써부터 기분이 들뜬다.

 

약속시간이 될 즈음 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도대체 어떤 분이 사영미 선생님인지

긴장된 마음으로 너른마루 출입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 분이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두리번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혹시 사영미 선생님?”

“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중앙 쪽에 마련된 2인 테이블에 앉았다.

 

 

▲ 도봉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사영미 팀장

 

 

❍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도봉문화재단에서 다양한 문화사업을 하고 있는 사영미라고 한다.

(당황하신 듯) 본인소개라고 하니 굉장히 어렵다.(웃음)

 

❍ 도봉문화재단에서 활동하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부산하기관에서 근무하며, 지역문화를 비롯해 문화영역에 대한 정책수립, 계획, 진행 및 평가까지 문화행정 전반에 관련된 일을 했다. 주로 지역의 문화정책을 수립하거나, 문화콘텐츠 자원을 발굴하고 축제를 기획하는 등의 업무를 했다. 결혼 후 육아를 하면서 지역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됐고 지역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도봉문화재단에 지원하게 됐다.

 

❍ 정부산하기관에서의 활동과 중간지원조직의 활동에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관에서는 주로 연구 리서치를 하거나 전문가나 조직을 대상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일을 했다.

지역 안에서 활동가로서 활동한 경험은 없다. 그러나 도봉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지역의 여러 상황을 활동가 분들을 통해 전해 듣고 파악하고 있다.

다양한 정책과 사업, 그리고 다양한 주체들의 활동들이 지역에서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관찰도 하고 직접 진행도 하고 있다.

중간지원조직이 어떤 역할을 해야 지역 활동이 활성화될지 늘 고민이다. 관과 민을 잘 연결하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 문화 사업팀에서 하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도봉문화재단에서 하고 있는 사업은 다양한 영역이 있다. 그중에서도 문화사업팀은 크게 세가지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지역의 주민, 기획자, 예술가가 연결하여 진행되는 지역문화사업, 도봉산페스티벌 등 축제행사운영, 그리고 간송옛집, 김수영문학관, 함석헌기념관과 같이 문화공간을 운영한다.

지역문화진흥사업을 통해 문화기획자를 양성 하고, 지역의 자원과 지역주민, 활동가와 연결하여 다양한 프로젝트 진행한다.

도봉지역과 공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봉쓰담> 이라는 작은 책자도 만들고 있다.

 

❍ 문화사업팀은 평화문화진지와 같은 문화적 공간을 정립하는 역할을 하고 있나요?

정립한다기보다 평화문화진지, 무중력지대 도봉, 구민청과 같이 새롭게 조성된 경우, 각각의 공간이 가진 방향과 특성에 맞게 공간을 기획하고 각 공간이 원활이 운영될 수 있도록 새롭게 조직이나 운영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추진해 왔다.

함석헌기념관, 간송옛집, 김수영문학관 등 지역에서 운영되는 공간에는 각각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재단이 공간을 운영한다기보다 각각의 공간이 잘 운영될 수 있게 통합적으로 지원한다고 생각하시는 게 맞을 것 같다.

공간의 고유한 특성이 잘 표현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외부에 홍보하며 문화공간이 안정적으로 시스템화 될 수 있게 지원한다.

 

❍ 현재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은 몇 곳인가요?

평화문화진지, 함석헌 기념관, 김수영 문학관, 간송옛집, 무중력지대 도봉, 구민청과 구립 도서관을 운영 중이고, 여러 팀에서 나누어서 운영 중에 있다.

 

❍ 중간지원조직으로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관에서는 우리보고 민적인 입장에서 말한다고 이야기하고, 민에서는 우리를 관으로 보신다.

우리 재단은 두 개의 성격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좋겠다.

부서마다 특성이 있지만 문화사업팀은 활동가처럼 일하지만 예산사용은 행정의 틀로 일한다.

재단은 두 가지의 언어를 잘 이해해야한다. 관과 민의 언어가 다르고 흐름이 다르다.

이 두 언어를 잘 이해해서 연결을 해야 하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

중간지원조직도 여러 형태와 기능을 갖고 있다.

문화재단의 경우 문화예술영역의 중간조직이다 보니 그 해석의 폭이 더 넓다.

각각의 이해관계와 수요에 맞게 행정에 잘 안치는 작업도 수반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일들에 대해 관으로부터 잘 이해받지 못할 때도 있고 민의 활동을 행정에 잘 안치기 위해 많은 설명과 이해를 시켜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하지만 재단의 강점도 있다. 담당자들이 지속성을 갖고 근무한다.

문화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일련의 과정과 이야기를 누적하고 축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관의 경우 담당자들이 자주 바뀌는 반면 재단은 사람이 많이 바뀌지 않고 연속성을 갖고 일한다는 강점이 있다.

재단의 경우 (지역)활동을 행정 안에 잘 담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고 고민을 많이 한다.

어떠한 요구도 되도록이면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여러 방법들을 다 찾아본다.

그래도 안 될 땐 안 된다고 말한다. 사실 이런 과정은 잘 드러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다보니

결과적으로 안 된다고 했으면 안도와줬다라는 평가만 남게 된다. 이럴 땐 아쉽다.

 

❍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민관협업이 잘되려면 어떤 점을 놓치지 말아야할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재단은 지역 활동가분들을 많이 기다린다.

활동가분들과 재단의 협업지점이 꽤 많은데 재단이 잘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마도 재단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그 기능에 대한 안내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서로 잘 모르다 보니 연결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다.

예전에 도봉구 시민협력플랫폼(이하 시플) 행사에 갔을 때 들었던 생각은 시플과 어떤 것들을 함께 할 수 있을까,

어느 지점부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어떻게 접근하고 어느 지점부터 이야기를 나눠야할지 고민이 된다.

일을 함께 시작하려면 먼저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상태에서 일이 시작돼야하나 하는 고민이 들었다.

나의 경우 지역 활동경험이 없다보니 지역 활동가분들과 어떻게 일을 시작해야할지 참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서로가 처음 시작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해결되면 잘 해결될 것 같다.

 

❍ 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사업주체는 어떻게 모집이 되고 있나요?

주체는 사업의 성격 및 방향에 따라 다르다.

전문예술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과 생활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프로그램 대상에 맞춰 모집공고도 하고 기존에 활동하신 분을 소개받기도 한다.

지역문화는 개인, 단체, 기획자, 예술가, 공간이 서로 연결되고 구성돼야한다.

도봉지역에 기획자가 많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물론 도봉지역에 기획자분들이 있긴 하겠지만 우리 팀과의 접점이나 긴밀한 협력이 없다보니 사업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계가 존재한다.

현재 3년째 기획자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기획주체를 새롭게 발굴하는 양성과정이다.

단순교육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현장과 이론의 갭을 줄일 수 있도록 하고, 초기 기획자들에게 실험적 프로그램을 해보실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개인주체나 단체들이 기획자로 등장하고 발굴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역 분들을 많이 만나고 이야기도 많이 해야 하는데 지역분 만나기가 참 어렵다.

재단의 문턱이 낮은데 높게 인식이 되는 것처럼 재단도 열려있긴 하지만 지역 분들께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 저희 시민협력플랫폼의 고민과 비슷한 것 같다. 

시민협력플랫폼도 열려있고 문턱이 높지 않지만 외부에서 문턱이 높게 인식된다.

그래서 지역 분들의 관심과 참여유도가 더딘 것 같다.

문화사업팀은 몸으로 뛰고 지역사람을 만나야하는 일이 많다. 그러다보니 지역 활동가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시플과 비슷한 고민지점이 있는 것 같다.

역할에 대한 고민과 지역을 위해서 어떤 것들을 더 해야 하는지 이런 고민지점이 비슷한 것 같다.

❍ 지역예술가 분들이 지역에서 단기적인 활동이 아니라 지속가능하게 활동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방법을 계속해서 찾아보고 있다.

일차적으로 어떤 분들이 지역에 계신지 확인하고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을 통해 의견과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툴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예를 들어 이번 코로나19와 관련해서 문화예술가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실태와 대처방안을 찾아보기도 했다.

문화예술가들이 지역에 많다고 하는데 실제적으로 주체로 등장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지역에 어떤 예술가분들이 있는지 계속해서 조사하고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이분들의 정보를 DB로 만들고 플랫폼에 등록해서 추후 프로젝트가 있을 때 이 분들을 추천하거나 소개하는 방식으로 연결해드린다.

초기 진입 예술가분들은 프로필이 없는 경우가 많다. 프로필제작과 함께 홍보지원을 하고 있다.

도봉지역은 거주하는 예술인들에 비해 활동할 공간이 많지 않다.

그러다보니 각각의 예술인들은 도봉지역을 활동공간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물론 지역에서 활동하고 계신 일부 예술가분들도 있지만 활동하지 않는 예술가분들이 지역에 더 많을 것이다.

이러한 실태를 파악해서 활동하지 않는 예술가분들이 필요한 니즈를 파악해고 그에 적합한 환경을 마련하려고 노력중이다.

예술가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자 한다.

사실 도봉문화재단이 문화예술가분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것은 어렵다.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기관은 국가단위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광역단위의 서울문화재단이 있고,

도봉문화재단과 같이 지자체 산하 기초문화재단 등이 있다. 이런 다양한 문화예술기관 안에서 각각의 역할이 분담돼있다.

도봉문화재단의 경우 시민문화예술향유나 생활문화예술을 통한 문화 복지확대에 좀 더 방점을 두고 있기는 하다.

문화예술이 개개인의 삶속에 녹아들고 주민의 삶이 풍요롭고 윤택해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예술인들의 개인생계와 관련된 부분은 오히려 예술인복지재단 쪽에서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예술인섹터와 주민섹터의 정책들이 다르게 작동된다.

사업이든 지원체계든 각각의 여건에 맞게 세팅된다.

문화재단이 문화예술영역의 전문기관이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다 다루지는 못한다.

지역의 형태에 맞게 요구에 맞게 세팅작업을 한다.

 

❍ 그렇다면 지역의 전문예술가들이 재단으로부터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구조이겠네요.

어렵다기보다 지역의 전문예술가분들이 지역에 좀 더 관심을 갖게 하는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 지역 전문예술가들의 활동무대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러한 부분을 재단에서 해결해줄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장소를 만들어줄 수 있다기보다 그에 대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

재단은 의견수렴기관이고 이러한 의견을 잘 담아서 행정에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지역의 실태조사와 수요조사를 통해 자료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리해서 행정에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 재단이 여러 역할이 있지만 주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신다고 생각하시나요?

지역에 필요한 것을 행정의 언어로 잘 정리해서 일이 실행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개인이 제안하면 민원이 되지만 이런 개인들의 목소리를 잘 모아서 공론화하고 우리 지역과 타 지역의 사례를 통해 자료를 정리해서 행정에 전달한다.

지역의 문화영역을 대변하고 지역의 문화적 욕구를 잘 정리해서 행정에 전달하는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다.

더불어 정책적으로 내려오는 사업을 지역에 맞게 적용하고 작동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단위에서 내려온 사업이 마을극장을 마련하는 것이라면 이 공간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자들을 만나

공간의 필요성부터 방향성 등 구체적인 공론화 작업을 한다. 그리고 행정에 제언을 하는 방식으로 문화정책의 기능을 한다.

지역에 필요한 것과 수요를 알리는 작업부터 결과물이 나오는 과정까지 문화영역의 전반을 아우르려고 한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 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문화는 천천히 흐름과 방향성을 갖고 진행되기 때문에 당장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게 천천히 스며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재단에서 공간을 건립하거나 시설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러려면 많은 예산과 추진력 그리고 거대자본이 투입돼야한다.

우리에겐 그러한 역할과 기능이 있지는 않다.

대신 공간에 대한 필요성과 각각의 공간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논의자리와 기능 폭을 넓히는 작업을 한다.

또 주민들의 문화인식을 넓히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지원한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의 변화가 우리에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 예술가분들의 고민이 다양하지만 그 중에 적합한 공간에 대한 갈급함이 공통적으로 있는 것 같은데, 중간지원조직으로서 이런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예술장르마다 공간의 필요부분이 다를 것이다. 사실 도봉구에 공간이 적지는 않다.

단, 분야별로 제대로 구성된 공간이 많지 않다. 말하자면 전문적인 공간이 많지 않다.

각각의 공간은 그 역할과 기능이 있고 분화돼있다. 그리고 공간의 목적과 방향성에 맞게 운영돼야한다.

그런데 가끔은 그 맥락과 지향점이 고려되지 않은 채 개인의 당사자성으로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럴 때 그에 대한 해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없다. 이로 인해 공간이 폐쇄적이다 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 같다.

사실은 이러한 대처에는 그럴 만한 과정이나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이런 앞뒤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있는

기회가 없다보니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아쉽고 고민지점으로 느껴진다.

 

❍ 민관협치 어떻게 가능할까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저도 항상 그게 고민입니다.(웃음)

원탁구조나 거버넌스의 구성으로 계속해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재단 기준에서의 원탁구조와 시플의 원형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협력이 잘 될 것인가는 늘 고민과제인 것 같다. 어떻게 이야기를 잘 담아서 논의구조로 가져갈지 늘 고민이다.

‘해야 한다’와 ‘하고 싶다’ 는 있지만 ‘어떻게’는 잘 모르겠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사이 오해도 받았다 풀렸다를 반복했던 것 같다.

4년 차가 되니 지역 분들의 얼굴이 낯익고 이름도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천천히 지속성을 갖고 알아가는 것도 협력방법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플랫폼에서 연락 왔을 때 매우 기뻤다.

왜냐하면 사업과 연결된 활동가 몇 분은 알고 있지만 그 외 다른 분들을 만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 번 인연을 맺고 고민을 이야기하다보면 나중에 시민사회와 무언가를 함께할 때 의논할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더 생기는 것이다.

앞으로 한 분 한 분을 만나 뵙는 계기를 만들다보면 지역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사람과 지역을 알아가는 데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꾸준히 같은 시각으로 지역을 바라보면서 같이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같은 현상을 보고 각각 다른 주체의 입장으로 다른 해석을 서로 이야기하고 해소해가는 과정과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에서는 마을사경센터 같은 중간지원조직은 이젠 친숙할 것이다.

재단도 현재의 하는 일들이 누적되다보면 재단의 역할에 대해서도 친숙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 과정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시플의 인터뷰제안이 도움이 되셨나봅니다.(웃음)

지금 이 자리가 너무 좋다. 내가 들을 수 있어서 좋다.

사실 시플은 나에게 약간 미지영역이자 낯선 영역이었다.

고민지점이 비슷한 것은 지역사회와 주민이라는 우리의 대상이 같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중에 재단은 문화영역이고 플랫폼은 좀 더 포괄적인 범위를 아우르는 것 같다.

방향은 같지만 풀어가는 방법과 전개되는 방식이 다른 것 같다.

 

❍ 활동하시면서 의미 있게 다가오는 지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보람을 느끼는 지점은 지역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고 느낄 때와 출퇴근길에 아는 얼굴이 많이 있다고 느낄 때이다.

그리고 지역에 관한 이야기 소재가 늘어나고 지역에 대해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이다. (웃음)

예전에는 함께 협업할 수 있는 동료들이 없었는데 현재는 협업할 수 있는 주체들이 늘어나고 무언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럴 때 보람을 느낀다.

예를 들어 플랫폼에서 전화주신 것도 큰 기쁨 중에 하나이다. 그 전에는 이렇게 먼저 연락을 주신 분들이 없었다. (웃음)

대화의 주체로 받아주신 것도 감사하다.

더 나은 도봉조직위에서 만나게 될 주체 분들과 또 상의할 수 있은 자리가 있어서 좋은 것 같다.

 

❍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기대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플랫폼의 틀을 지역에 안착시키고 커다란 활동으로 연결됐으면 한다.

플랫폼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유지가 돼서 그 기능과 역할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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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문화재단 홈페이지 www.dbfac.or.kr/front/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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