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20

서울동북여성민우회 (홍문정 신임대표)

 

 

 

지역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민우회활동가로 매진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도봉구에는 2001년에 들어왔다. 그무렵은 독립다큐영화 제작하는 일을 했고 사무실은 종로에 있었다. 도봉은 나에게 베드타운 이었다. 독립영화일은 짧게 했다. 아이가 생기면서 일을 중단했다.

지역하고 만나게 된 직접적 계기는 아픈 아버지와 먹거리 관심이다. 가까운 곳에 생협이 두 곳 있었다. 민우회생협(지금의 행복중심)과 한 살림이 있었다. 가입절차가 용이하다는 굉장히 단순한 이유로 동북여성민우회 생협을 만나게 됐다. 그때는 민우회와 생협이 분리독립되기 전이라, 생협 조합원가입이 자연스레 동북여성민우회를 만나게 되는 통로가 되었다.

인생이 계획대로 뜻한 바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미혼이 아닌, '비혼'을 주장하면서 결혼제도를 선택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합의하에 결혼을 했음에도 아이가 생겼다. 내 삶에 아이가 한 번도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터라 첫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어려움과 필요가 공동 육아부모협동조합을 만나게 했고, 바로 발바닥공원근처로 이사를 감행했다. 그때부터다. 지역사람들, 마을, 육아를 통해 당면한 내 문제와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싶은 욕구가 페미니즘을 만나게 했다. 활동가라기엔 미진한 구석이 많았고, 정리가 되어가는 데는 꽤 시간과 갈등이 있었다.

 

 

 

 

민우회활동 외에 다른 활동을 많이 하신 것으로 아는데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글쎄요. 뭘 했을까? 민우회활동도 내 삶을 이루는 하나의 조각이니까요.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이것저것을 만난 것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고민을 상담하기 위해 지역에 있는 언니들을 만나면서 여성주의를 만났고 아이는 같이 키워야한다고 해서 공동육아를 만났다. 내 먹는 것이 나를 이룬다는 것을 깨닫고 생협을 만나 식량문제, 농업주권,환경문제를 더 깊게 생각했다. 아이학령기가 되어 공교육에 진입하지 않고 4.19탑 인근 비인가초등대안 삼각산재미난학교에 아이 손을 잡고 입학했다. 대안교육운동이라는 것을 만나게 됐다그즈음 마을에서 어떻게 하면 아이를 함께 잘 키울까 고민이 싹트던 때였던 것 같다.

마을사람들을 만나 책을 읽고 작당모의를 하다보니, 다양한 것들이 보였다. 정체성으로 이야기하면 난 녹생당 당원이기도 했다. 현재는 민우회 임기대표라, 당적은 잠시 내려놓았지만. 열정적으로 핵심에서 활동하지는 못했지만, 내 관심사가 늘 연결되어있다. 밀양송전탑반대운동, 후쿠시마사고 이후 탈핵운동, 서울시장에 페미니즘후보를 낸 이력까지 가슴이 벅찬 시간들이었다.

 

 

 

 

여성민우회 활동가로서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장착한지는 그리 길지 않다. 나는 위빠사나 명상수행을 하는 수행자이기도 한데, 수행자의 정체성을 가장 크게 가졌던 시기동안, 민우회바깥에서 민우회를 바라볼 시간이 있었다. 결국 그 시기에도 마을에서 다양한 작당모의를 하며, 결국 강북여성주의모임 문을 만나 신나는 한해를 보냈지만.

돌아돌아 다시 확인한 내 정체성이 다시, 민우회, 다시, 페미니즘 회원으로서 수혜를 받았던 기간이 길다. 방학동 민우회사무실에 오면 힘이 나고 위로가 되고, 내 푸념을 그대로 수용해주던 언니들이 있었다. 지금 그 언니들이 많이 없어 아쉽다.

 

 

민우회는 건강한 조직문화, 평등하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우리부터 시작하자는 의미에서 나이 학력 출신지역등을 묻는 인사를 하지 않고, 모두를 선생님이라 호칭하며 존중한다그래서 그 시절 만났던 회원들의 나이를 정확히 알 리 없다. 다만 먼저 이곳에 계셨고, 아이를 낳아 키우거나 지역에서 활동했기에 내게 언니였다. 내가 여성주의자다’, ‘페미니스트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이것과 상당히 맞닿아있긴 한데 이것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던가, 기준이라던가, 철학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은 나는 '페미니스트'. 내 삶의 질곡과 이 세상에 대해 이해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이 철학 안에서 풀려진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인터뷰에서 여성주의는 아직 철학으로 수준이 안 된다는. 굳이 들자면 '한나아렌트'정도~~~라고 한 강신주라는 자의 편협함과 오만에 치를 떤 적이 있다.

 

 

 

 

 

 

2019년 동북여성민우회 대표가 되셨는데 임기동안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1992년 처음 한국여성민우회의 첫 번째 지부로 이곳에 둥지를 튼 당시의 미션도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과 지역의 환경을 바꿔나가는 것이었다. 민우회는 지역에 기반을 둔 회원조직이다. 그것을 완전히 벗어난 활동이 있을 수 없다. 민우회가 지역에서 굳건히 발 딛고 그 많은 선배언니들이 활동해온 지난 27년 우리 지역이 좀 달라졌을까? 가부장제사회가 여전히 굳건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민우소모임 중에 '페륜'이라는 이름의 소모임이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가치가 함축하고 있는 염원을 담은 바퀴를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굴려나가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이름으로 나는 해석하고 싶다. 생활협동조합운동, 쓰레기소각장 반대운동, 초안산 골프연습장 의정비반환소송, 의회방청을 통한 지역정치를 바꿔나가려는 시도, 우리지역의 정책을 성 평등한 관점으로 분석해보기, 행정이 펼치는 사업이 이곳에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 의견을 반영하는 젠더거버넌스 모니터링에 이르기까지. 민우회가 해 온 다양한 일들은 그 시기 시기 시대와 우리의 요구와 맞닿아 있었다.

 

 

 

2019년 시대와 민우회 회원들은 어떤 것을 요구하고 기대할까?

금 두달된 신임대표인 나의 관심은 좀 더 예민한 수신능력을 키워, 회원과의 접점을 넓히고 민우회가 좀 더 생동감 넘치는 조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농담처럼 하는 말은 홍문정처럼 대표하면 나도 하겠다라는 좀 말랑한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 나의 욕심이다. 대표라는 자리는 언제나 무겁다. 지역에서 기대하는 바와 회원이 기대하는 바가 상당히 크지만 균형을 잡으면서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우회와 지역을 하나하나의 나무로 세심히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깊은 숲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스스로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활동 중에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사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배우자다.(웃음) 요기까지만. 지금은 든든한 지원군역할을 해주고 있다. 20년만의 가장 큰 성과다. 나는 페미니스트야라고 말하기 시작했더니 세상이 나에게 너무 각박하게 다가왔다. 이는 여전히 우리사회가 젠더불평등이한 사회라는 것의 반증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장자연사건, 승리, 김학의에 이르는 수많은 이 남성들의 공고한 카르텔 성평등 세상이 너무 요원한 게 나에게 가장 힘든 지점이다.(웃음)

 

 

 

활동 중에 의미 있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사람이다. 사람이 힘인 것 같다. 관계에서 가져오는 힘.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다. 안전하게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힘이다.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동지같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 힘을 받는다. 내가 에너지가 소진됐을 때 타인의 에너지를 통해 힘을 얻는다. 반대로 나의 에너지가 타인에게 힘을 주기도 한다. 그래도 상식적이라 생각했던 많은 이들이 여성주의 시각에서, 나의 테두리 밖으로 멀리 가기도 했다. 연연해하지 않는다. 함부로 연대하지도 않겠다. 사람은 고쳐 쓰지 않는다 했으니.

 

 

 

 

 

타 단체와 연대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동북권에 NPO지원 센터가 생기면서 동북5구 젠더워킹그룹을 하고 있다. 도봉, 노원, 강북, 성북, 중랑이 함께 하고 있다. 각 구에 있는 여성정책을 살펴보고 분석해서 토론회를, 작년에는 각 구의 성평등 조례와 기금을 살펴봤다. 함께 하니 힘이 되었다.

도봉구만 보더라도 민우회가 홀로 해오던 3.8여성의 날, 7 여성주간, 11월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등 행사에서 공동기획액션을 조직해내는 수많은 지역의 단체가 있다. 기획부터 수행에 이르기까지 함께 하고 있다. 놀랍고 희망적이다. 3.8세계여성의날 특강으로 (미투의 정치학)을 공동기획해서 강의를 열었는데 유료강의비였음에도 100명이 넘는 참여자가 왔다. 그것 자체가 연대의 힘이었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은 민과행정의 협치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대에, 제대로 된 협치를 하기 위한 토양을 마련하는 단위라는 생각이 든다. 민과 관이 서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활동과 업무를 존중하는 것을 기본전제로 파트너쉽을 만들어가는데 플랫폼이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리라. 지난해 프리컨퍼런스와 컨퍼런스가 충분한 시작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여성민우회 ☞ www.womenlink.or.kr

3천원 문자후원 #25401992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19

 

 

도봉문화정보도서관 (이순임 관장)

 

 

 

 

 

지역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동기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지역활동을 시작한때는 1998년입니다. 지역활동의 시작은 동네주부들과 독서모임하면서 공동육아했던 시절이고요. 2003년에 도봉시민회 교육간사로 활동하면서 시민사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지요.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작은도서관 운동을 하면서 풀뿌리 주민운동에 투신하게 됩니다. 2010년 공공도서관의 변화를 이끌어내야겠다고 결심하고 도봉아이나라도서관에 취직하면서 줄곧 도서관에서 평생교육과 복합문화센터로의 도서관, 커뮤니티센터로서의 도서관으로 지역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으로 9년째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서관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어떤 추억을 가지고 계시나요? 책과 도서관은 관장님께 어떤 의미와

역할을 하나요?

 

저는 제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에 위로와 치유가 되어 준 것이 책이었고 도서관 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을 때도, 인생의 2막을 시작해야 했을 때도 도서관은 책이라는 매개

로 인생의 스승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시민의 변화에 책만큼 도서관만큼 적절하게 역할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마을공동체 안에 도서관은 공간적으로 활동적으로 마을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체가 만들어진 취지와 목적 그리고 활동내용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말씀해 주세요.

 

도봉구립도서관은 민족과 인류의 기억을 전승하여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도서관의 운영주체로서 크고 무거운 사회적 책무를 잊지 않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협력과 봉사로 지역사회에 역할을 다하여 왔습니다. 만약 저에게 도서관의 존재이유가 무엇이냐 라고 물으신다면 도서관은 공익기관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보루로, 정보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하는 사회적 장치로, 지식정보의 생산기지로, 평생교육을 선도하는 수행기관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마이크로칩이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도봉구립도서관이 지역사회의 심장이며, 지역사회의 마이크로칩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해가고 있다고 느끼시지요? 맞습니다. 공공도서관의 환경도 빠르게 변화되고 있고 시민들의 요구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도봉구립도서관은 도서관의 생애주기별 평생학습 및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 증대, 지역공동체 거점으로서의 도서관 역할 증대, 지식정보제공의 융복합서비스에 대한 요구 증가, 지식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도서관의 역할 강화를 위해 뛰어 왔습니다.

저는 공공도서관이 편의점보다 더 많기를, 공공도서관 회원은 지금의 두 배 이상이 되기를, 도서관 가는 횟수는 집 앞 수퍼 가는 횟수의 두 배가 넘기를,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은 TV보는 시간보다 더 많기를 꿈꿉니다.

도봉구립도서관의 운영의 중요한 방향성이라고 물으신다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드리고, 꿈을 찾아 드리며,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도와드리고자합니다. 마을의 중심이 되어 선한 마음을 모아 미래를 밝히는 촛불이 되고, 누구에게나 비추는 햇빛 같은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삶터를 가꾸고 공동체를 지원하며, 치유와 성장을 돕는 그래서 주민들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를 희망하며 주민들과 함께하는 주민밀착형 주민참여형 도서관으로 운영하겠다고 말씀드립니다.

 

 

앞으로의 활동방향성과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도봉구립도서관은 지난 10년 동안 비약적인 양적성장을 이루어내었고 교육. 문화, 예술분야의 프로그램, 도서 관리프로그램 업그레이드, 책 이음서비스도입, 도서관 리모델링 등 인프라구축에 매진하여 왔습니다. 또한 전문 사서 인력을 확보하는 일, 수탁기관의 일원화로 도서관들을 통합하여 운영시스템을 일원화 하는 일, 도서관 직원의 신분상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등 많은 변화를 이루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잘 아시다시피 한국사회는 경제 양극화 심화’, ‘고령화’, ‘과당 경쟁 및 인간성 상실’, ‘세대 간 갈등’, ‘인구 감소등의 다양한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바이오 및 나노 테크놀로지, 로봇, 3D프린팅, 클라우드, 공유경제, 증강현실등 4차 산업혁명의 주축이 되는 핵심 기술 및 분야로 초연결, 초지능이 가능한 사회가 곧 도래한다고 하기도 하구요.

우리가 살아갈 미래사회. 그 변화의 파고에 도서관은 어떤 역할로 시대적 사명을 다할 것인가는 모든 도서관인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도서관의 위기는 오래전부터 이야기되어져 왔습니다. 미래에 정말 사서가 없어질까? 종이책이 사라질까? 모든 게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모호한 4차산업혁명시기에 미래도봉구립도서관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내용으로 어떤 과정으로 진화할 것인가?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고 기민하게 적용시킬 수 있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조직역량을 갖추어 방향전환을 빨리 준비해야 한다는 조급함.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으로 미래도서관의 혁신을 이끌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조직역량을 갖추어야 한다는 절박감.

조직 안팎의 역량을 모두 모아 민첩하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명확한 목표를 공유하고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협업역량을 지닌 일꾼을 양성해야 한다는 초조함.

미래 도봉구립도서관이 디지털 변혁 적응조직이 되기 위한 디지털 비전 수립, 조직의 대규모 참여유도, 디지털 거버넌스 구축, 기술 리더십과 관련된 역량을 언제 무엇을 어떻게 갖추어 나가야 할지 모를 답답함.

 

답을 찾아야 했고 목마름을 해소할 우물을 팔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두드려야 문이 열린다는 말처럼 해답을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난 도서관 사업과 활동을 돌아보고 도봉구립도서관의 새로운 미래, 주민과 함께 미래를 만들어 보자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향후 5년 동안 도서관이 성취하고자 하는 미래에는 구립도서관수, , 사립 작은도서관 수, 도서관 공급면적, 도서관 총예산, 도서관시설 투자예산, 장서 수, 사서 수, 이용자수, 회원 수, 동아리 수, 대출권수, 상호대차 이용권수, 독서문화프로그램 수, 참여자수에서 한층 발전되고 상향된 목표를 잡고 달려갈 겁니다.

세상을 읽는 힘, 미래를 만드는 힘이라는 비전다이나믹도서관, 버라이어티도봉이라는 슬로건아래 4개의 추진목표와 23개의 추진과제를 만들었습니다.

책읽기는 앞선 시대의 지혜, 지식, 정보, 스스로 문제를 설정해서 탐구해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며 한사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행위입니다.

도봉구민들이 책읽기를 통해 세상을 읽는 역량을 배양하고 세상을 살아갈 내면의 힘을 갖추기를 간절히 원하며 비전을 그려보았습니다. 구민이 원하는 교육, 문화, 예술, 복지를 담는 커뮤니티센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도서관이 주민들의 삶터와 공동체를 지원하며 주민의 곁에서 힘이 되어주겠다는 의미로 세상을 읽는 힘, 미래를 만드는 힘이라는 비전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슬로건의 의미도 힘이라는 이미지가 갖는 생명력 있고, 활력 넘치는 도서관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다양하고 다채로운 도봉의 미래를 열어가는 좋은 밑거름이 되겠다는 뜻으로 보아주시면 되겠습니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대한 기대/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무엇을? 어떻게 왜? 하고 싶은가? 그것만 분명하면 된다. 준비된 만큼, 아는 만큼, 생각한 만큼 가고 하게 될 것이다. 바라는 대로 되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거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결국은 도봉의 변화와 발전은 우리존재 됨됨이만큼 이루어질 것이기에 참여한 사람과 단체 각자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뛰어야겠지요.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18

 

 

 

송석재단 (박민정 상임이사, 이지훈 인문교육팀장)

 

 

 

 

송석재단의 설립배경

 

 

 

박민정 상임이사 (◀)

 

송석재단은 송석 박문규 선생님(1900~1971)이 설리한 민간재단이다. 1945년 광복이후 남북이 분단되고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길거리로 나와 있는 고아들이 많았다. 당시 조대비의 별장이었던 광륜사 자리에 임시적으로 아이들을 데려다가 먹이고 입히면서 아동구호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구호활동은 1947년부터 시작했고 1949년 법인으로 허가를 받았다. 현재 송석복지재단(1949년 설립)과 송석교육문화재단(1992년 설립)을 운영하고 있다 

 

 

 

 

 

 

 

 

 

 

 재단이 만들어진 취지와 목적 그리고 활동내용

 

박민정 상임이사

 

송석복지재단, 송석교육문화재단은 모든 아동·청소년이 행복한 사회를 구현한다는 공통의 미션을 가지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아동과 청소년이 행복한 사회가 어떤 것인지, 행복한 사회를 구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늘 고민하며 운영하고 있다.

 

송석재단 주사무소는 현재 혜화동에 있다. 과거에는 도봉구 지역에서 고아원으로 계속 운영했다가 전두환 정권 당시 보육원을 혐오시설로 지정함으로써 용인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용인에 있던 도봉유린원 소재지가 아파트단지로 개발 되면서 지원 법인으로 바뀌었고, 주사무소를 종로구 혜화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종로구는 청소년카페나 문화의 집이 없다. 노인인구가 많고 조손가정이 많아, 갈등도 심하고 힘들어하는 청소년이 많은데 그들이 의지할 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송석재단 주사무소를 혜화동으로 결정하게 되었고 이런 지역적 환경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 결과 종로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수탁 운영하기 시작했다.

 

도봉숲속마을은 교육시설로 운영하고 있다. 1992년에 재단법인 도봉산 청소년마을을 설립하고 2002년에 허가를 받았다. 국립공원 안이라 허가를 받는데 10년이 걸렸다. 수련원을 지으면서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생태나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봉숲속마을과 운영법인인 송석교육문화재단에서는 지난 10년간 환경솨 생태에 관한 프로그램에 주력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청소년이 되었으면 좋겠고, 그러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인문학적 소양과 철학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7년부터 실천적 인문학을 가르치기 위해 인문학교실 쿰을 운영하고 있다. 도봉구에 사는 청소년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청소년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지금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지훈 인문교육팀장 (▶)

 

1947년 해방이후에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도봉유린원을 세웠다. 유린원의 뜻은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노는 정원을 말한다. (놀 유), (이웃 린), (동산원)을 뜻한다.

이때부터 송석재단의 뿌리가 시작되었다. 그 이후 1949년에 복지재단이 설립되고 1992년에 교육문화재단이 설립되고 도봉숲속마을이 2005년에 개원했다. 도봉유린원에서 아이들을 위한 활동은 시작했다. 당시 송석재단의 미션은 모든 청소년이 행복한 사회를 구현하자 라는 것이다. 해방이후 산업화시기에는 여전히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아이들이 많았기에 경제지원활동을 청소년지원활동으로 해왔다. 경제성장 이후에는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체험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도심 속에 숲을 갖고 있고 직접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을 갖고 있었기에 송석재단이 갖고 있는 재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생태적인 감수성을 키워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 결과 생태환경 교육활동을 10년 넘게 진행해 왔다. 현재의 고민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될지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이 증가되는 상황에서 과학기술, 생명공학, AI유입 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생각의 토대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의 시대에서는 자기 삶에 대한 철학을 스스로 세워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송석재단의 미션도 청소년이 행복하게가 아닌 청소년이 행복한 사회이다 보니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실천적으로 펼쳐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지역사회에서 협업을 하며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박민정 상임이사

 

지역 내에서 송석재단은 재단의 미션과 청소년 교육활동 보다는 도봉숲속마을이라는 시설로만 알려져 있어서 안타깝다.

지역의 민간단체와 함께 협업을 하고 싶지만 서로 편견이 많은 것 같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면서 서로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상호 신뢰와 존중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주 비즈니스모델이나 주 활동영역이 공공영역으로 이관되었을 때 어떤 고민을 하시고 어떤 스텝들을 밟고자 하는지 궁금합니다.

 

박민정 상임이사

 

비슷한 것들을 복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활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항상 담고 싶다.

 

 

이지훈 인문교육팀장

 

비슷한 것들 사이에서도 오리지널의 비교불가하다고 생각한다. 오리지널은 별다른 게 아니라 그것을 왜하는지에 대한 목적성이다. 대부분 어떤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겠다고 하면서 방법과 표현하는 스킬만 따라하고 그 안에 담긴 철학에 대해서는 아무도 배우려하지 않는다. 그것은 복제에 불과하다. 프로그램이 같거나 혹은 보이는 형태가 비슷하더라도 그 프로그램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지향성은 다르다고 본다. 그게 저는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한다.

 

 

 

협업에서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박민정 상임이사

 

가려는 방향이나 지향하는 바가 비슷했으면 좋겠다. 혹은 다르더라도 그 방향성을 일치시킬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지훈 인문교육팀장

 

많은 모임들이 미리 완성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서 모임에 참가자로서 참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함께 고민하는 참여자는 될 수 없던 것 같다. 도봉구에 시민협력 플랫폼이 있다면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나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박민정 상임이사

 

2019년도는 선택과 집중이다. 해야만 하는 일들을 열심히 하자. 그래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들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는 사람을 키우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것이다. 송석복지재단을 통해 소외계층 아이들을 지원하고 송석교육문화재단을 통해 좋은 시민을 양성하고 싶다.

 

 

혜화동 저녁모임은 어떤 모임인가요?

 

박민정 상임이사

 

사업이 많아지고 대내외적으로 많은 활동을 해나가다보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성을 잃었던 적이 있다. 방황이 시작될 때 무작정 배우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이지훈 인문교육팀장

 

일단 공부해보자라는 생각에서 시작을 했지만 4년차에 들어선 지금은 혜화동 저녁모임의 정체성을 우리 스스로 세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2019년 혜화동 모임은 각 분야에서 앞서 고민하고 실천해 오신 분들을 모셔서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에 대한 비전을 함께 탐색하고 저희 재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 같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박민정 상임이사

 

만들어진 플랫폼이 아니라 고민을 같이하는 플랫폼이었으면 좋겠다. 중간관리자끼리 많이 만날 수 있는 장이 있었으면 한다.

리더는 은퇴하지만 중간관리자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지도자가 바뀌면 조금씩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17

 

 

도봉여성센터(남충진 관장)

 

 

 

 

 

 

 

도봉여성센터를 운영하게 된 계기나 동기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서울동북여성민우회는(이하 동북민우회) 지역에서 20년 넘게 활동을 해왔다. 그런 오랜 활동을 기반으로 더 많은 지역 여성을 만나 함께 하며 역량 강화에 힘쓰기 위해 도봉여성센터를 수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를 센터장으로 추대했다.

처음 여성센터에 왔을 당시 직원들은 모두 한국여학사협회의 사람들이라 생각되었다. 고립무원의 섬과 같았다. 게다가 관장실이 3층에 따로 있어서 직원들과 소통하기가 어려웠다. 관장실을 강의실로 바꾸고, 이 사무공간으로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고 함께 일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가 지역여성과 함께하고 싶어 이곳에 왔지만 실제 지역여성을 만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여기 있는 우리 직원들이구나! 여기 있는 이 직원들이 바로 내가 만나려던 지역여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직원들을 센터를 함께 운영해가는 파트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직원들의 성장을 통해서만 지역여성의 성장과 발전도 가능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직원들이 다시 보였다.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한솥밥 식구로 함께해오고 있다. 2014년부터 취업과 창업에 더 실질적인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도봉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수탁받게 되었다. ‘도봉여성새로일하기센터의 직원은 6명이다. 도봉여성센터의 직원 6명과 합해 현재 총 12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동북민우회 활동을 하면서 도봉여성센터를 운영하게 되기까지 그 활동과정이 궁금합니다.

 

동북민우회 활동을 시작한 지 18, 20년쯤 된 것 같다. 현재는 동북민우회가 사단법인이지만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에는 동북민우회는 본부의 지부였고 생협사업도 같이 수행하고 있었다. 그 당시 운영위원, 지역자치위원, 복지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당시 여성복지위원회 활동을 하며 지역여성의 복지욕구 조사를 위해 발로 뛰어다녔다. 여성들의 실질적인 삶의 지원이 어떻게 가능할까 직접 면대 면으로 만나서 들어보았다. 경제적인 욕구가 가장 컸지만 우리가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해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2순위인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고양민우회 등 여러 곳에 탐방을 다녀왔다.

 

지역아동센터는 나름의 목적과 취지로 운영되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아동센터도 좋지만 아이들이 눈에 띄지 않고 다른 아이들과 섞이면서 함께 할 수 있고 그 속에서 특별한 보살핌을 받는 구조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당시 작은 도서관운동이 여러 지역에서 활발히 벌어질 때였다. 그래서 도서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역복지에 관심을 갖고 있던 성지윤 씨와 만나서 함께 도서관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다. 그러면서 함께할 사람들을 규합했고 출자하고 모금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진짜 많은 사람들이 물심양면으로 함께해주셨다.

 

생글도서관 대표로서 역할을 하며 도서관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동북민우회가 도봉여성센터를 위탁받으면서 오경훈 대표가 여성센터를 운영하라고 제안했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공공에서 돈을 받는 일이고, 혼자서 들어가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대학 때 학생운동도 했지만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우면서부터이다. 대학졸업 후 출판사에 다니면서 생활인으로 살다 큰 아이를 공동육아에 보내면서 먹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20여 년 전, 아이양육에서 시작한 활동이 발전하여 먹거리, 지역사회, 여성주의활동 등으로 이어졌다.

 

 

 

서울동북여성민우회는 관장님께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 궁금합니다.

 

민우회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고 할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민우회도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젠더라는 의식이 없었다. 대학 때 여성주의 활동을 하면 재수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너무 튀고 잘난 체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성주의 활동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지역에서 민우회를 만나고 활동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민우회에서 만나는 사람이 좋았고 민우회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사실 나는 열등감이 많았다. 완벽주의자였기 때문에 늘 부족한 존재라고 날 정의했다. 그런데 민우회에서 다양한 교육에 참여하면서 내가 부족해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향이 그런 거구나. 저 사람은 잘 나서가 아니라 성향이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타입이구나.” 등을 알게 되었다.

 

민우회는 자신감 없고 위축된 나의 자아를 회복시켜 주었다. 민우회활동을 통해 나 는 성장하고 회복되었다. 생글 작은도서관을 개관할 수 있었던 힘도 민우회가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도서관을 만들 때 손을 내밀면 주위의 많은 분들이 흔쾌히 손잡아주시고 회원으로 가입해주셨다. 덕분에 겁 없이 월세내면서 하는 사업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도봉여성센터의 취지와 목적 그리고 활동내용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말씀해 주세요.

 

도봉여성센터는 구의 조례에 따라 설치, 운영되고 있다. 처음 민우회가 센터를 수탁 받았을 때 이곳을 뭔가 민우회스럽게운영해보자는 의욕이 충만했다. 운영하면서 느낀 점은, 센터는 개인이나 단체의 것이 아닌 일정 기간 위탁을 위임을 받은 공적 장이라는 점이다. 위탁받은 동안 공익적 관점에서 투명하고도 민주적인 방법으로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센터의 오너가 아니다. 위탁받는 법인이 파견한 사람으로서 센터 안에서 구성원들과 협력하며 최대한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며 일하려고 노력한다. 직원과 나는 같은 처지라고 생각한다. 단지 나는 책임이 더 큰 역할을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역할은 다르지만 대등한 위치에서 운영하려고 많이 노력한다. 보조금 집행의 문제나 사업비 집행의 문제도 투명하고 공개적인 상태에서 공익적 관점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지금 생각은 도봉여성센터를 통해 민우회회원을 늘리고 민우회스럽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민우회가 운영하니 여기 참 괜찮다는 평을 듣고 싶다. 이 목적을 수행하면 될 것 같다. 직원들도 어떤 위탁법인보다 민우회가 위탁을 해주니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면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만족하면 좋겠다. 결국은 이러한 것들이 가능할 때 민우회의 가치를 구현한다고 생각한다. 위로부터 목적과 비전, 미션을 수행하라고 꽂아주어서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곳에 있는 직원들이 어떻게 하면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조력하고 방향도 제시하고 지원할 것인가가 과제인 것 같다.

 

 

 

 

법인의 부설기관으로 센터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지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민우회의 활동가이면서 기관의 센터장이다 보니 정체성이 여러 개다. 그래서 외로운 지점들이 있다. 센터사람 대부분은 직원이지 활동가는 아니다. 간혹 민우회의 대표나 활동가들이 센터 직원들을 활동가로 생각할 때가 있다. 이럴 경우 힘들다. 센터 직원들을 활동가로 여기다보면 위탁기관이 아닌 직영시설처럼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인과의 관계에서는 이런 지점이 어려운 것 같다.

센터 안에서의 어려운 점은 여성센터와 새일센터의 임금구조가 다르다. 임금격차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쪽을 다 통합해서 관리운영을 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터 직원들은 생활인으로 살고 싶어 하는 반면, 법인 입장에서는 무언가를 함께 수행하고 싶어 한다. 이런 부분이 충돌될 때 힘들다. 나의 바람은 서로가 멀리보고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삶의 안전성을 유지하면서 일을 하게 되면 위탁 주체에 대해 호의적이면서 기꺼이 위탁체의 한 일원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탁체에서 일자리를 주었으니 할 수 없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멀리 봤으면 좋겠다.

 

위탁사업을 할 때는 나름의 목적이 있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우회는 민우회의 운동적 관점에서 위탁을 평가해야 하고 나는 현재 내 역할에서 고민을 해야 한다. 이러한 지점이 어느 때는 서로 대립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조화롭기도 하다.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 기본적인 신뢰관계 속에서 이러한 갈등을 드러내고 조율하고 합의하고 어떻게 함께 하느냐 인 것 같다. 이런 신뢰를 기본으로 해서 문제를 풀어 가면 될 것 같다.

 

 

 

이런 어려운 상황도 있었지만 의미 있었던 점이나 보람을 느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센터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다. 공익적 관점에서 아이디어도 많이 내고 협력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갈등상황은 있겠지만 큰 불협화음 없이 일하는 것 같다. 자랑같긴 한데 누군가 내게 갈등해결의 리더십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성향을 발휘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여성 관련 교육을 기획하는 것도 재미있고, 취창업지원하는 사업도 뜻깊다. 네트워크 사업하는 것도 좋다. 교육을 통해 직원들을 역량강화시키고 함께하는 것이 매우 뿌듯하고 재미있다. 여성센터 일이 잘 맞고 재미있다.

위탁받아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지인이 지역여성의 역량강화도 중요하지만 센터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행복해야 되지 않겠는가.” 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맘 속에 계속 맴돈다. 비록 내가 임금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도봉에서 도봉여성센터가 제일 일하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봉여성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해지는 것이 현재 나의 미션이라고 생각한다. 민우회가 운영하니 되게 좋다는 그런 말을 듣고 싶다.

 

 

 

공공(지자체/공공위탁기관)의 사업이 다양화되면서, 민간단체와 중복된 기능이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데, 이러한 중복된 기능으로 인해 허비되는 자원에 대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누군가가 바꿀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처음 민우회 활동 당시에는 지역에서 시민교육을 하는 곳도 없었다. 내 돈을 내고 교육을 받고 활동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지금은 무료 교육의 장도 많이 생기고, 교육에 참여를 하면 혜택도 많다. 이렇듯 뭔가 많이 하지만 그들이 다 행복한가는 짚어보고 싶다.

예전엔 활동을 적게 해도 깨달음이 있었고, 사람을 만나고 동료가 되는 것이 행복했다. 그런데 지금은 엄청 분주한데,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행복한가?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나고 있나? 내가 흡족한가? 내 삶의 문제까지 꺼내놓으면서 논의할 수 있나? 취미의 공동체로 약간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묶인 것이 아니라 삶도 같이 공유하면서 할 수 있나? 그걸 하면서 우리는 행복한가를 짚어보고 싶다. 행복하다면 오케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허하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지역에서 연대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동안 3.8세계여성의 날이나 양성평등주간 행사를 민우회에서 독자적으로 했다. 민우회에서 센터를 위탁받은 후로는 사회복지협의회 여성분과를 통해서 사업을 하거나 지역의 많은 다른 기관들과 네트워킹해서 활동하게 되었다. 예전에 민우회가 혼자 하던 것을 현재는 건강가정다문화지원센터,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한살림, 신협, 어르신돌봄종사자지원센터 등과 함께 연대해서 활동한다. 여러 기관단체와 연대해서 함께 하는 것이 뿌듯하다.

 

 

 

앞으로의 활동 방향성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크게는 젠더적 관점을 가지고 민우회의 구성원으로서 도봉여성센터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숙제이고 도봉이어서가 나름의 구심을 갖고 도봉지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에게도 힘이 되고 또 지역전체 주민들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자 뒷배가 될 수 있게 잘 자리잡도록 하는 것도 숙제이다.

 

그런 여러 가지 숙제가 있는 것 같다. 어째든 이런 문제를 개인이 과도하게 고민하고 끌어간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고민하는 사람들과 함께 풀어가야 할 것 같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작년에 컨퍼런스를 준비해서 쭉 해온 것을 보면서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처음 플랫폼 사업을 계획하고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시작했을 때 어떻게 사업을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그런데 옛날의 활동방식에서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으로 너무나 세련되게 풀어냈던 것 같다. 그런 형식이 지역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과거방식으로 일하던 오랜 활동가를 긴장시켰던 것 같다. “이제는 활동도 세련되게 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자극들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이것이 포장이 아니라 내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를 가나 생각보다 소통이 쉽지 않다. 또 조직의 문화 자체가 건강한 문화가 드물다. 민주적이고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의 삶과 행복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 역할을 플랫폼에서 해주었으면 좋겠다. 플랫폼의 역할이 그냥 이렇게 저렇게 막 엮어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위들이 민주적이고 건강한 조직이 돼서 잘 운영되는 데에 이바지했으면 한다.

 

지역 내에 목적의식을 가진 단위들이 많다. 목적에 집중하다 보면 그 안에서 일하는 구성원들의 삶의 문제와 원활한 소통의 문제가 건강한지는 의심이 된다. 과도한 목적의식을 갖고 조직을 운영하거나 목적에 방점을 두게 되면 수단이라든가 과정을 등한시하게 되고 우리 안을 제대로 살피거나 돌보지 못한다. 작은 조직이든 큰 조직이든 조직문화가 건강하고 그 안에서 일하는 구성원이 행복해야 한다. 플랫폼이 건강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데 제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16

 

글로벌마을학교(우경림 대표)


 

 

지역에서 활동을 하게 된 계기나 동기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도봉구 창 2동에서 25년간 살았다. 개인적으로 자격증을 따고 싶어서 화장품자격증을 시작으로 비누, 캔들 등의 여러 자격증을 따다보니 작업장이 필요했다. 그 작업장이 바로 이 숲속에 공방이다.

처음에는 작업장으로 시작했다. 주위의 몇 몇 분들이 작업장보다는 공방이 좋겠다고 권유해 개인공방으로 시작했다. 2014년에 서울시에서 마을학교를 시작했다. 당시 평생학습관에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었다. 재능기부를 하면서 서울시 마을학교를 첫 사업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2015년에서 2017년까지 마을공동체, 마을학교 활동을 공방에서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곳이 개인공방이 아니고 마을의 공방, 마을의 쉼터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현재는 겨울방학 여름방학 특강, 학습자리, 마을학교와 함께 돌봄도 하고 있다. 또 현재 창 2동의 주민자치회의 문화경제분과를 맡고 있어 그곳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과 함께 지역의 크고 작은 축제나 행사에도 협력하고 있다.

 

작업장과 공방의 차이는 어떤 것인가요.


작업장은 좀 폐쇄적이다. 밖에 간판도 없고 내가 이곳에서 필요한 것을 만드는 개인공간이다. 공방은 누구든 들어왔다 나갈 수 있는 오픈된 공간이다. 함께 만들고 체험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공방사용에 자격조건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자격조건은 없다. 2동 시끌벅적사랑방 김주희 선생님께서 이곳을 시끌벅적사랑방의 문화센터 공간처럼 활용하는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작업장에서 공방의 형태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숲속에가 지향하는 가치나 역할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역할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203040대 등 다양한 연령층이 찾아오고 있다. 연령별로 삶에 지치고 나름의 고단한 삶이 있다.

많은 분들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분들이 이곳을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고 회복과 치유가 될 수 있으면 한다. 숲속에를 통해 공통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성취감이다.

30십대의 주부들은 어린아이 육아에 지친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전에 이곳에 와서 함께 무언가를 만든다. 이렇게 취미를 통해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졌다. 그 분들이 이곳에서 배우고 나누고 담소하고 수다 떠는 공간이 된 것이다.

2동에서 뚝딱뚝딱 나눔 이웃을 진행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분들과 봉사단체를 만들어 지역의 차상위계층이나 우울증을 앓고 계신 분들을 만나 공방에서 다양한 것들을 만들고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다. 작은 공간이지만 활용도는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마을공동체가 활성화 되면서 창 2동에 처음 숲속에 마을공동체가 생겼고 그 후 아지트 등 대여섯 개의 마을공동체가 생겼다. 그다음 마을학교를 시작했다. 그 후 마을학교가 대여섯 개가 생겼다. 올 해는 창 3동에 마을학교가 4개정도 만들어지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공방운영이나 활동 중에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사람이 힘들다. 마을학교와 마을공동체 활동을 5-6년째 하다 보니 사람에 대한 노하우가 생겼다. 좀 더 배려하고 맞추어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관계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말 때문에 힘들었다. 말은 돌고 돈다 때문에 누군가가 쏟아내는 안 좋은 말을 끊어야하는데 처음에 이 끊는 것이 어려웠다.

 

활동 중에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5년 동안 40명의 전문가를 배출했다. 그분들이 이곳에서 충분히 배우고 어딘가에 나가서 자기의 역할을 했을 때 보람을 느낀다.

해가 바뀌면서 제 자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는 것 같다. 지역에 동이 보이고 구가 보이고 나라가 보이는 것 같다. 전체를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럴 때 보람을 느낀다. 마을활동을 하다 보니 누군가가 내게 마을활동가라고 말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가 마을활동가가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지역에서 연대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숲속에 공방의 이름으로 연대하지는 않는다. 글로벌마을학교로 함께 하고 있다. 창림초등학교와 함께 돌봄수업을 하는 방식으로 연계하고 있다.

마을학교의 의미는 학교가 마을로 나오는 것이다. 학교학생들이 마을로 나와서 배우는 것이다. 마을 주민이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친다.

글로벌마을학교는 현재 화장품학교, 미니어처학교, 요리학교, 플로시트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마을교사로서 학교와 지역과 연대하고 있다.

지역의 주민 센터와 함께 매실축제, 거리음악축제, 벚꽃 축제에 참여하고 있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소리를 잘 듣고 그 소리가 진정으로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개혁과 변화는 일어나지만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목소리를 계속 내다보면 무언가 꿈틀거리고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는다. 시민협력플랫폼이 오픈해서 많은 활동가의 소리를 들어주고 그들과 함께 소리를 내주면 좋겠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15

 

도도봉봉(허나영 대표)


 


■ 도도봉봉 독립서점을 개업하게 된 동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처음 이 공간은 선배언니와 함께 작업장으로 시작했다도봉구 쌍문동에 사는 선배언니와 함께 작업장을 찾고 있었다도봉구에 거주하는 선배언니와 내가 사는 노원구의 중간지대를 찾다보니 창동으로 오게 되었다그 후 선배언니가 나가고 봉봉이와 스터디를 하게 되었다봉봉이가 도봉구에는 아직 독립서점이 없으니 이곳에 독립서점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봉봉이의 제안으로 독립서점을 개업하게 되었다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독립서점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동업자인 봉봉이가 여기저기 독립서점을 데리고 다녔다설명을 들어보니 취지도 괜찮고 작가가 아니어도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봉구가 전형적인 베드타운이지만 노원구와 다르게 옛날 분위기가 남아 있고 멋스러움이 있다이런 분위기가 참 좋다하지만 도봉시민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자부심을 못 느끼는 것 같다오히려 나처럼 외부에서 유입되는 젊은 사람들이 도봉지역의 재밌는 포인트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알아보는 것 같다젊은 층이 봤을 때는 도봉은 참 재미있는 곳이다도봉구가 알려지면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다.

 독립서점의 주인들은 서로 친하다한 번은 길이나 대학에 돌아다니는 길고양이들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도록 길 냥이 집 만들기를 했다이것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마포에 계신 독립서점 주인께서 함께 홍보를 해주셔서 마포에 계신 분들이 오셔서 함께 도와주셨다.

 

■ 독립출판서점과 일반서점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최근 도봉구에 '사유의 사유'가 생겼다이 서점도 독립서점이라고 할 수 있다이곳은 예술전문서적만을 취급하고 있다독립서점은 주인의 취향에 따라 책을 진열하게 되고 주인과 취향이 맞는 사람들이 서점을 찾게 된다남해의 봄날 같은 경우 북스테이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전국각처에서 이곳을 찾고 있다. 서점도 거대 자본을 갖은 회사가 지점을 내고 운영하거나 인터넷으로 판매하고 있다일반서점의 경우 북센이나 송인서적(현재는 부도로 인해 문을 닫음)과 같은 큰 도매상을 통해 베스트셀러나 신간서적을 일괄적으로 받아서 판매한다그에 반해 독립서점은 거대자본이 있는 회사나 큰 유통에 의지하지 않고 서점 주인의 취향대로 꾸며진 작은 서점을 말한다때문에 거대 서점에 비해 일부분에 국한된 서적들이 주로 진열된다저희 서점은 인문학이나 에세이문학책이 많다책을 하나하나 읽어보고 좋은 책을 진열해 놓는다좋아하는 작가나 좋아하는 책들을 골라서 진열해 놓는다

 

■ 도도봉봉에서는 어떤 출판물을 취급하나요?


 문학인문학가벼운 사회학 그리고 독립출판물을 취급하고 있다아마 도봉구 다른 서점에서는 독립출판물을 거의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독립출판물의 좋은 점은 지역에서 내가 내 것을 만들고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말하자면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것을 스스로 창조해가는 능동적 소비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독자가 감상자에 머물지 않고 직접 작품을 생산하는 문예의 프로슈머(prosumer)가 되는 것이다.

 

■ 독립출판물의 경우 대중적인 소비가 어려워서 개인 부담이 클 것 같은데 이런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나요?


 소량으로 인쇄한다. 300부를 찍으면 백만 원 정도의 비용이 나온다이는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또한 출판물이 안 나갈 경우 악성재고로 남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 내년 상반기부터는 인터넷판매를 하려고 한다인터넷판매를 활용함으로써 타 지역에 계신 분들도 서점을 이용할 수 있다공간의 제약을 넘어 활용범위를 확장하려고 한다.

 

■ 도도봉봉의 재정운영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정부보조금 사업과 모임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사실 만 원짜리 책 한 권 팔면 순수하게 떨어지는 돈이 2,000원에서 2,500원이다북센과 같은 출판유통업체에서 75%를 가져간다나머지 20-25%가 서점에 떨어진다작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자신의 작품을 출판해준다는 생각에 염가로 계약을 한다때문에 인세를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일러스트 작가들의 경우최근 작가들이 표준정가제를 통해 합당한 임금체계를 만들어보자는 시도를 했지만 출판사나 관련 업체에서 이를 저지했다.

 출판계도 개인이 출판을 하는 이유가 출판사에서 너무 많은 인세를 가져가다보니 직거래를 통해서 자신의 몫을 더 챙기게 되는 이유도 있다.

저희 같은 독립출판서점은 출판사나 출판유통업체가 많이 가져가는 수익구조에서 작가들이 수익을 더 가져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도도봉봉에서 진행하는 모임은 어떤 모임이고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거의 글쓰기모임이나 드로잉모임재즈 듣는 모임 등 단발성의 여러 모임이 많다어떤 것이든 저희 색깔과 맞는 것이면 다 해보려고 한다. 시모임생활만화쇼트쇼트 장르적 글쓰기 등이 있다.

모임은 소확행을 추구하는 젊은 친구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모임을 통해 책과 저희 도도봉봉을 알리는 홍보를 하고 있다.

 

■ 운영이나 활동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저희 서점을 찾으시는 고객 때문에 힘든 일은 거의 없다사실 운영하는데 재정적인 부분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우리나라는 대기업이 유통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유통구조의 불합리함이 크지만 변화가 어렵다이런 유통구조의 불합리함을 아는 사람들은 알라딘과 같은 서점을 이용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출판유통업체에서 가져가는 수익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릴 적 책을 좋아해서 책방에 놀러가곤 했다책방을 자주가다 보니 책방 아저씨와 친해졌던 추억이 있다그런데 요즘은 책방에 대한 추억들이 사라지고 있다사실 작은 가게들의 역할이 분명히 있는데 소비의 편리성 때문에 작은 가게들이 사라지고 있다작은 가게들은 사람의 감성을 풍부하게 해주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그런데 소비의 편리성 때문에 가게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쌓을 수 있는 추억이나 감성인간관계의 기회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대기업은 돈을 벌겠지만 소상공인들은 없어지고 결국 개인들은 황폐함과 피폐함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인간관계에 대한 맥락에서 볼 때 작은 가게들이 잘되어야한다.

 트레바리는 이러한 인간관계에 대한 욕구와 결핍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장 뜨는 곳이다이곳은 돈을 받고 독서모임을 제공한다책 한 권을 읽기 위해 16만원을 지불하고 독서모임을 갖는다트레바리를 통해 인간관계를 맺고 싶기 때문이다내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책을 다른 사람과 함께 읽기위해서 모임에 참여한다결국 사람을 만나고 인맥을 쌓기 위해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현재 많은 젊은 층이 참여하고 있다.

 

■ 도도봉봉이 추구하는 방향이나 특징이 무엇인가요.


 내 것이 있고 남의 것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간조차 없이 세상이 계속 바뀌다보니 옛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복고풍(Retro style)이다이전 세대에 대한 동경이 있다미래가 불투명하다보니 복고적인 성향이 있다. 90년대의 X세대를 동경한다거나 옛것에 주목한다방학동이나 쌍문동은 아직 서울의 옛 모습이 남아있어서 그런 것들을 발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요즘 젊은 세대들은 일본의 동경(東京)을 좋아한다그곳에는 옛것이 남아있기 때문이다세상이 빠르게 변화되는 것에 실증을 느낀다.

그래서 저희의 시선에서 방학동이나 쌍문동에 대한 책자를 만들고 계속 아카이빙작업을 하고 있다.

도봉구의 특징은 약간은 촌스럽고 옛것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희 서점에 오시는 손님들께 일대일로 다가가서 차도 내어드리고 오래오래 손님들과 얘기한다왜냐하면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정서적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 활동 중에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어떤건가요.


 제일 좋은 것은 손님들이다손님들이 이런 거 저런 거 사와주시고, “사장님뭐 사왔어요” 하며 같이 먹고 얘기하면서 음식에 대한 추억도 공유한다이번 목요 소설 이야기(목소리모임에서 도봉구 맛집 기행을 만들었다같이 음식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고 먹으러 다니면서 만들었다.

 손님들이 가장 큰 자산이다결국에는 사람인 것 같다.

진성고객이 다섯 분정도 되는 것 같다책을 꼭 사주시는 분이 진성고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이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시거나 저한테 힘이 되어주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활동방향성이나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책 축제를 하고 싶다일반서적이 아닌 독립출판서적의 책 축제를 해보고 싶다언리미티드 에디션이나 퍼블리셔스 테이블이라는 유명한 독립출판서점과 함께 책 축제를 했었다성황리에 잘 마쳤다이런 책 축제를 도봉지역에서 하게 된다면 이 지역이 갖는 이미지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를 지향하고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지역으로 소개될 것이라고 생각한다특히 젊은 친구들이 이런 문화를 즐기기 때문에 많은 젊은 층이 유입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 축제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지원이 필요하다인천에 있는 북극서점은 저희보다 작은 서점이지만 현대프리미엄아울렛이 들어오면서 그곳의 지원을 받아 북어택 도서전시회를 개최했다창동에 있는 마사회에서 사회공헌차원에서 도서전시회를 위해 지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마사회로 인해 창동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지만 책 축제를 통해 문화지역으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도봉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열정이 많은 분들이 모인 것 같다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서 기획하는 컨퍼런스의 과정이 성실히 기록되었으면 좋겠다각 분과 안에서 문제점을 명확히 진단하고 찾아서 그 해의 의제로 삼고 그 후 평가를 통해 해결된 의제와 해결되지 않은 의제를 구분하는 지점이 있어야할 것 같다해결되지 않은 의제는 공동의제로 삼아 해결해가는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지만 마음 맞는 분들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그 부분들을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그러기 위해서는 편하게 먹고 노는 자리가 필요한 것 같다풀어놓고 놀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아이디어도 더 많이 나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친해져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서로서로 도와줄 수 있는 부분도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14

 

산들바람 공부방(이미나 대표)

 

 

 

산들바람 공부방을 개소하게 된 계기나 동기가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이전에 성북과 관악지역에서 공부방 활동을 해 오다가 잠시 쉬게 되었다. 그리고 공부방 활동을 다시 시작하려는데 실무교사로 일할 수 있는 공부방을 찾기 어려웠다.

공부방은 관의 지원을 받지 않는 민간단체로서, 예전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지역-달동네 등에서 빈민운동을 하던 활동가들이, 부모들이 일하러 나간 동안 방치되어 있던 아이들과 함께 놀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데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공부방 법제화가 추진되면서 많은 민간 공부방들이 지역아동센터로 전환했고, 지금은 공부방으로 남아 있는 곳이 많지 않다.

그러한 가운데, 새로 한 사람의 활동비를 감당하며 사람을 구하는 곳을 만나기가 여의치 않을 것으로 짐작했고 실제로 그랬기 때문에, 공부방을 새로 열기로 했다. 공부방은 아직도 (지금보다) 더 많이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방과 같은 곳이 더 필요한 아이들이 있는 지역을 찾아보려 했고, 서울의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도봉구에 오게 되었다. 이 지역에 힘든 친구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고, 다니는 교회가 도봉구에 있어 연고가 있기도 했다.

2012년 여름, 이곳 방학1동에 산들바람공부방을 열고, 가을부터 아이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빈민운동을 하시면서 공부방 운영도 하신 건가요?


공부방 활동은 교육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게 됐다. 대학 시절, 대안교육운동이 막 일어나는 때였는데, ‘다른 교육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으면서 교육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는 졸업 후 기독교인권단체에서 일했는데, 이후 교육에 대한 마음이 커지며, 나누고 싶은 장으로 공부방을 떠올렸다.

 

공부방 운영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운영비는 후원회원들의 후원금으로 대부분 이뤄진다. 아이들의 가정에서도 공부방 운영에 참여하신다는 뜻에서 얼마간의 회비를 낸다.

후원인은 50여 명 정도 되고, 정기후원금은 160만 원 정도다. 여기에 비정기후원금을 보태 운영한다. 다양한 관계로 아는 분들이 후원을 하신다.

정기로 먹을거리나 책을 보내 주시기도 하고, 때때로 물품 후원을 하시기도 한다.

덕분에 할 수 있는 일이니, 모두 감사하다.

 

활동 중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처음 산들바람을 문 열고서는,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있는 친구들이 한꺼번에 모이다 보니 쉽지 않았다. 모든 것들을 새로이 만들어 가야 하는 시점에 저마다 자기 상처들을 드러내며 거칠게 부대끼면서, 서로 편안해지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 개개인도 교사도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쉽지 않은 순간들을 겪어 오는 동안, 또 그만큼 배우고 성장하기도 했다고 느낀다.

지금은, 전망을 함께 그리며 꾸준히 함께 할 동료가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쉽다. 자원교사들이 있고, 올해는 실무 일을 같이 하는 교사가 있어 힘이 되지만, 정한 요일과 시간에 오고 있고, 한시적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 같이 일할 수 있는 교사를 만나기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 재정 여건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가 매우 고민되는 부분이다.

 

 

아이들 모집은 어떻게 하셨나요?


맨처음에는 동네에 알림지를 붙이거나 돌리기도 하고, 학교나 주민센터에도 공부방을 소개했는데, 아이들이 오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없는 상태에서 먼저 집들이를 하면서 동네 아주머니들을 초대했는데, 그리고 나서 동네 분들이 한두 아이를 소개해 주셨다. 또 아는 활동가나 학교 교사가 우연히 지역에 있어 이들을 통해 소개받아 오기도 했다. 그렇게 와서 꾸준히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


지금은 주로 공부방 학부모들이 가까운 이들에게 소개하시거나 학교 지전가 선생님을 통해 새로 온다. 지금 함께하는 어린이청소년들은 15명인데, 올해는 상담하길 원하는 가정이 더 있었지만 아이들을 성의 있게 만나기 위해 인원을 마냥 늘릴 수는 없어 아쉽지만 다 받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연령은 어떻게 되나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2까지 있다. 첫해 초등 4학년까지 있었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지금의 학년이 되었다.

곧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청소년이 있으니, 이후에는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해 가야 할 것 같다. 지금의 역량으로 얼마만큼 같이 고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이 스물이 된다고 해서 건강한 성인으로 오롯이 독립해 살아가기가 힘든 사회이기 때문에 더 간단히 느껴지지 않기는 한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교육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공부방은 스스로 함께 건강한 삶을 가꾸어 가는 교육공동체를 지향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가치가 일상과 수업 활동 속에 녹아날 수 있도록 하고자 하고, 지금 여기서부터 즐겁고 자유롭고 안정감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꾸려 가고자 한다.

그래서 공부방에서는 더 많이 놀고,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학교와는 조금 다른 공부들을 더 하려고 하는데, 최근에는 좀 다르게 아이에 따라 학습시간이 많이 길어지기도 한다. 초등 12학년 친구들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느린 아이들의 경우, 말이 서툴고 이해력이 부족하다거나, 한글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게 되면, 기본적인 학교생활이나 또래 관계들을 위해서도 따로 학습이 필요하고, 이전 단계에서 쌓인 게 적은 만큼 시간이 오래 걸려 긴 시간 학습이 불가피하기도 하다.

또 너무 틀이 잡히지 않거나 거친 아이들은 만날 때 엄한 분위기를 만들게 되기도 하는데, 모순적이게도 아이들과 소통하고 제대로 만나기 위한 방편이라 느끼기도 하지만, 교사로서도 스스로 이전과 다른 모습이기도 하고 그 동안의 생각에도 배치되는 태도라 사실 불편하기도 하다.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아이들에 대해 조급한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아직도 계속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


활동 중에 가장 의미 있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아이들이 날마다 오고 싶어 와서 즐겁게 지낸다.’고 느끼면 그 자체가 의미 있다.

또 힘들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 기쁘고 의미 있다. 좀더 밝고 편안해지고, 쑥스럽지만 순한 마음을 표현하고, 의욕을 일으켜 좀더 노력을 하려 한다든지, 새로운 경험들을 통해 트여가는 모습들은 감동적이다. 그런 상태가 늘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 밖에서 보는 이들에겐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공부방에서 함께 어울리고 부대끼는 동안 좋은 순간을 경험해 보고 그런 순간들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조금씩 쌓여가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활동 방향성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가난한 또는 그밖의 지원이 필요한 어린이청소년과 여성(을 비롯한 가족)을 우선 지지한다.’는 기본 지향이 있다.

그리고 민간의 작은 공부방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규정되어 있지 않아 유연할 수 있고,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우리의 장점을 살려, ‘틈새에서 스스로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찾아 하려고 한다. 공부방과 같은 돌봄과 교육이 필요하지만- 법적 지원대상이 아닌 경우, 아이들이 많은 환경에서 적응하고 배우기 힘든 경우, 좀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경우에 처한 안타까운 아이들을 많이 본다. 이들에게 공부방이 필요하다면, 우선으로 함께하고자 한다.

공부방은 아이들과 함께 일상을 꾸려나가는 곳이다 보니, 상근 실무교사가 혼자인 상황에서 그밖에 무언가를 더 그리고 내다보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그저 열린 마음으로 한 발짝씩 걸으며, 실제 활동으로 현재를 보여 줄 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무엇보다 뜻을 함께할 수 있는 동료 교사를 만나길 바라고, 필요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더 제대로 해 나갈 수 있길 바란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플랫폼을 통해 교육에 뜻이 있는 좋은 분을 아신다면 연결해 주시길. 재정 고민을 함께해야겠지만, 공부방 활동에 마음 있는 분을 만나길 기다리고 있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13

  

 

한살림 북부지부 (김은주 지부장)

 


 

 

지역 활동(한살림활동을)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아이들의 먹을거리를 고민하면서 한살림에 가입하게 되었고 결혼 이후 가정주부로서 내 가족에 한정되었던 나의 관심과 노동을 다시 이웃과 사회로 이어가고 싶은 의지가 생겨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주부로서의 삶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고민하던 시기에 활동가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한살림활동가 지원을 했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대였고 생협활동이 가치 지향적인 의미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밥상살림, 농업살림, 생명살림, 지역살림을 일상에서 실천하고 더불어 잘 살기 위한 활동을 다시 시작해 보고 싶었다.

누구의 엄마, 아내, 며느리에서 다시 내 자신, 김은주로 살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

 

한살림이 만들어진 취지와 목적 그리고 활동내용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잘 살기 위해 생명농업을 바탕으로 생산자, 소비자 간 직거래운동을 펼치는 생명운동단체이자 생활협동조합이다.

자연생태계와 조화를 이루어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이웃과 나누는 일을 한다. 생산과 소비는 직거래를 통해 이루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주인인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한살림은 밥상에서 시작해서 세상을 바꾸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먹는 먹을거리를 통해 생산 방식, 과정, 생산하는 사람, 생산하는 환경, 먹는 사람, 먹는 사람들의 생각을 돌아본다.

매일 대하는 밥한그릇 안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말도 많이 한다.

밥 한그릇에 담긴 관계, 생명성, , 환경, 미래를 생각한다.

조합원 활동은 개인의 밥상에서 시작해 지역의 밥상으로 확장되고 자연을 지키고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기 위한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고 관계망을 확장하는 것이고 내용들도 살아가는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주제들로 이루어진다.

한살림운동은 일상에서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들어가는 대안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한살림운동을 잘 실현하면서 많은 조합원들이 의사결정구조에 참여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함께 협동하고 합의하는 협동조합의 구조로 운영한다.

 

활동 중에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의사결정과정이 어렵다. 다양한 의견과 구조로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의사결정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에 8개 지부가 있다. 북부지부에 4개 지구(강북지구, 경기북부지구, 노원지구, 도봉지구)가 있다. 북부지부 조합원수는 38천 명, 서울의 조합원 수는 28만 명이다.

전국 조합원수가 60만이 된다. 북부지부에는 9개 매장이 있다.

북부지부의 지부장으로서 지역 조합원의견을 잘 반영하는 의견을 개진하는 것, 한살림 서울의 이사로서 전체적인 관점을 가지고 현안을 고민하고 결정하고 그것을 지역에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지역의 필요와 욕구, 서울 전체 조합원 관점에서 균형감을 가지고 결정하는 매순간이 어렵다. 리더로서 균형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균형감을 유지하면서 순간순간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하고 있는 일이 의미 있고 기여하는 역할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 삶을 돌아볼 때 여유가 없고 소진되는 느낌이 들 때 힘들다. 지역 안에서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결합하고 싶고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도 풍성하고 싶은데 조직 현안이 많다보니 쉽지 않다.

 

삶터와 일터가 일치되고 가족들과 함께 누리는 여유 있는 저녁 시간을 꿈꾸는데 역할을 맡다보니 바쁘고 시간에 쫓기는 것 같다. 균형 잡힌 일터와 삶터로 살아가고 싶지만 어렵다. 집안에서 정성과 진심을 다하는가? 라고 스스로 자문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마음의 갈등이 생기곤 한다.


한살림에서 활동가로 출발해 활동팀장, 지부장 등 리더로 조율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6,7년째 맡고 있다. 의견을 조율하고 결정하는 것이 힘들다. 이것이 스트레스가 될 때가 있다. 겉보기에 결단력 있어 보이지만 집에서 고민을 많이 한다.

역할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 하지만 역할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인간으로서 성숙해 지는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

가끔 일중독이 아닐까 싶을 만큼 정신없이 일을 하는 것 같다. 조정해 나가는 것도 내 몫일 것 같다.

 

가장 의미 있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현장에 있을 때, 한살림운동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조합원을 만날 때, 새내기 조합원을 만날 때, 지역에서 새로운 사람들에게 함께 사는 운동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를 가질 때 행복하다.

생각해 보니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 의미있고 좋은 것 같다.

함께 하는 친구가 생기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특히 새내기 조합원을 만날 때 함께 무엇인가를 도모할 새로운 친구가 더 생긴 것 같아 뿌듯하다.

한살림 할 수 있어 좋다. 입장이 다른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몇 몇 힘든 사람을 만났지만 함께 함으로써 차츰 마음의 문을 열고 변해가는 모습에서 의미를 느낀다. 한살림을 통해 이웃을 만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 의미를 느낀다.

 

앞으로의 활동방향이나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단절되었던 사회를 관계로 이어주고 사람들이 서로 배려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마을과 지역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말을 할 때 잘 들어주고 상대방을 입장을 고려하고 조율하는 민주시민이 많이 생겨났으면 한다. 민주사회가 실현되길 바란다. 농업기반시설이 잘 지켜지고 미래의 먹거리가 안전해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생태계가 안전해지고 온 생명이 함께 더불어 사는 생명살림 세상을 만들어가도록 노력할 것이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지역의 크고 작은 단위가 가볍게 참여할 수 있게 문턱을 낮추었으면 좋겠다. 지역의 자원을 잘 알고 연결하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 민관협력을 잘하려면 밑바탕의 역할을 잘 해주어야한다. 작은 단체나 조직을 잘 파악하고 대변하고 협치로 이어가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내용적으로도 잘 협력되길 바라고 기대한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12

  

도봉마을교육 사회적협동조합

함다락(노애경이사장)


▲ 반딧불이 작은 도서관 

 

 

함다락을 설립하게 된 동기나 등장배경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도봉 마을 곳곳에 교육활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인이 강의나 사업장을 통해 교육 사업을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에 관심이 있는 주체들이 존재했다. 도봉구가 혁신교육지구가 되면서 2015년 도봉 혁신교육 활동가 양성과정을 개설했다. 이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주체적 모임 계기가 되었다. 도봉구에서 시민단체나 마을계획은 활발하였으나, 반면 교육 분야는 화두가 되지못한 때였다. 활동가 양성과정 이후 교육생들은 교육 관심사로 자발적 모임을 갖게 되었다. 네트워킹을 통해 교육에 대한 공통 관심분모는 확장하며 뜨거워졌다. 교육과정를 통해 교육의 시야는 넓어지고, 뭔가 시도하고자하는 마음이 꿈틀거렸다. 그후 2, 3기 혁신교육 활동가가 매년 양성되었고, 마을교육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특히 1기는 2016년 권역활동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0명 정도의 도봉 혁신교육 권역활동가들이 동별 마을학교 선생님들을 만나고 지원하면서 민 안에서 중간지원 활동을 경험하게 되었다. 마을학교를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를 고민하고 박람회 등에 직접 제안. 운영하며, 참여하였다. 그결과 도봉에 교육열정 사람모임이 생기게 되었다.  

 

혁신교육활동가로 차기년도 계획을 설계하고 수립하는 과정에서 활동가의 의견수렴과정이 미약했다. 2016년 쏟아 부은 열정은 3년간의 활동을 통해 얻을 만큼의 다양하고 진한 활동경험 이었기에 일 년 사이에 권역활동가들은 많은 성장을 하게 되었고, 도봉교육에 소신이 있었다. 그러나, 자발적 활동에 경계가 생긴 이 시점에서 혁신활동가로 남을 것인지 기로에 서게 되었고 소신과 환경이 불일치하고도 생각된 활동가들은 활동을 멈추게 되었다그 후 사회적 경제에서 실시한 협동조합교육을 받았다. 긴 고민 끝에 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그 이유는 정책만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소리를 내야겠다는 욕구가 있었고, 우리가 도봉하고자 하는 교육활동이 멈추면 안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함다락에 마음을 모아준 분들과 후원조직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한 번도 얼굴을 뵙지 못한 선배활동가 김동현 협치 

조정관님을 비롯해 여러모로 지지해주신 후원자들과 생산자로 뛰어든 교육활동가, 소비자로 지지해준 부모들이 함께 합류하면서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었다.

 

함다락이 만들어진 취지와 목적 그리고 활동내용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이들에게는 앎이 삶이 될 수 있는 삶터, 부모에게는 스스로 서서 건강한 부모가 세우기, 활동가에게는 교육을 재능에 맞게 기획하며 다양하고 건강한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도봉 마을교육 생태계조성을 위해 조합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교육의 변화를 이끌어 낼 대상을 고민했다. 여러 제안들이 있었지만 교육활동에 첫 번째로 힘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부모라고 생각했다. 교육의 첫 만남 대상을 부모로 잡고 부모에게 교육의 현실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교육현실과 노후된 교육정책에서 부모와 아이들은 가장 혼돈스럽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교육적 울타리 되어주길 바랬다. 

 PLS(Parents Leadership School) 부모리더십양성과정을 개설운영하며, 교육은 대입만이 아닌 삶을 생존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자기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교육이 일반적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나 또한 이 강좌를 통해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다.

 

교육활동가는 계속해서 양성되고 있나요?

 

 혁신교육활동가양성과정은 구청 교육지원과가 위탁하여 진행되는 사업이다.

2년간 큰 법인에서 양성과정을 진행했다. 올 해는 도봉에서 탄생한 함다락 이 위탁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그런 만큼 4기 교육활동가 양성과정은 전달과 이해 교육만이 아닌, 현재 도봉교육이 나아갈 교육내용, 갈증해소를 하는 교육을 운영 있다. 양적 증대보다 질적인 성장을 기하고 싶다.

 조합 내의 운영은 작년 하반기부터 분과를 구성해서 운영하고 있다. 수작분과(플리마켓), 상담분과(조합원상담), 민들레 교육분과, 문화예술분과 4개의 분과로 운영되고 있다.

 

함다락이 추구하는 교육의 상은 어떤 건가요?


아이들이 받은 교육이 삶터에서 실제 적용되고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근력을 기르는 교육.

부모들도 스스로 서서 살필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다. 옆집엄마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 있게 자신의 교육관을 가지고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역량을 갖게 되는 교육을 제공.

활동가에게는 교육을 기획해보는 기회를 제공하며, 교육의 메이커로 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도봉 마을교육 생태계 구축.


 아이들 각자의 재능이 인정되고 그 재능으로 사회를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첫 그라운드를 마을에서 경험하면 좋겠다.

학교 안. 밖 아이들이 평등.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마을교육.

다양성이 인정되는 마을교육.

마을이 아이들과 시민. 학교를 품을 수 있는 교육생태계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활동 중에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조합 내에서 대표로 활동하다 보니 결정을 해야 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의 특성상 의사결정의 구조에서 바람직하게 가기위해 여러 절차와 과정이 있다. 일단, 나조차 익숙하지 않은 결정구조의 갖춘 조직에서 기다리고, 또는 판단하며 방향에 맞게 가야할 때 미숙함이 느껴진다.

 , 한 가지는 실무자 에게 경제적 지원을 정당하게 해야 하는데,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조직은 이럴 때 활동이 우선이냐, 경제적 삶이 우선이냐의 기로에 있는 활동가를 바라보며 뭐라 말해줄 수 없는 답답함이 있다.

 

가장 의미 있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우선 제 자신이 바뀐 것 같다. 다른 의미로 사람으로서 성장한 것 같다. 지역사회에 시민조직이 만들어지고 그 조직에서 일어나는 활동이 부모. 활동가 그 안에 나 자신이 소신 있게 서가는 모습을 보며 헛된 짓은 아니 었다, 잘하고 있다고 후회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앞으로의 활동방향이나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함다락은 도봉교육의 현실을 가장 잘 알고, 교육에 참여하고, 관심있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진 조합이다. 앞으로, 관이 지역 내에서 생성된 민간조직을 신뢰하며 도봉 교육기획의 파트너쉽이 형성되어야만, 욕구에 맞는 설계로 마을에 교육변화가 이루어진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함다락 또한 그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개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교육. 사회혁신의 한 부분일 테니 말이다신뢰하는 민.관 거버넌스의 길. 함께 할 때 지역역량도, 재미도. 지속도 더 해진다고 생각한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시민협력플랫폼은 활동가가 주인이 아닌 시민의 참여 확장 문을 열어두는 곳이다. 활동가나 관은 나, 우리, 민을 위해서 있다고 생각한다.

초반에는 활동가를 중심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민이 소소한 이야기를 소신 있게 할 수 있는 소통구조. 시도가 앞으로 계획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존 활동가들과 함께 섞여. 듣고, 논 할 때 새로운 사람이 성장되고, 중간확장 역할을 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그리하기 위해선 말, 사용하는 언어가 용이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용어집 정리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11

 

사회복지법인 한국장로교복지재단

도봉장애인종합복지관 (이상록 관장)



 

도봉장애인종합복지관을 시작하게 된 동기나 등장배경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2003년 창동염광교회 장애인부서에 교역자로 왔다. 20~30명 정도의 발달장애인들이 모이는 발달장애인부서(사랑부)에서 활동을 했다.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활동을 하다 보니, 주중 혹은 주말에 발달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거리가 필요했다. 2003년부터 토요일 오후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주말 문화활동(아자 장애인문화센터)을 시작하였고, 2008년도부터는 중증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주간보호시설을 교회에서 만들어 운영하였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장애인복지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장애인들과 함께 문화활동, 복지사업, 밥상모임 등의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자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교회 안에서 2013피어라희망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발달장애인 부모님과 봉사자들이 중심이 된 피어라희망협동조합을 통해, 카페베이커리농장을 운영하면서 장애인 친구들의 고용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교회 안에서의 장애인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들도 의미가 있었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 도봉에 장애인복지관이 설립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교회가 속한 교단의 한국장로교복지재단과 함께 준비하는 과정을 거쳐, 2016년 도봉장애인종합복지관 수탁운영자 선발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장애인복지관 수탁을 계기로 지역에 있는 장애인사업, 장애인과 관련된 과제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전 해볼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했다. 교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지역에 계신 분들을 섬기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또한 지역사회 내에서 좀 더 공신력 있게 사업을 해나가자는 차원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염광교회의 규모는 어느 정도 되나요?

 

염광교회는 등록교인이 12천명 정도, 그리고 주일 출석하는 성인 5,500~6,000, 1,000~1,5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축하는 규모의 교회이다. 염광교회의 장애인부서에는 발달장애인들의 예배와 활동모임 5개의 사랑부에 약 250명의 발달장애인 성도들이 다니고 있다. 또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농아부에 30-40명 정도의 농아인(청각장애인) 성도들이 다니고 있다. 또한 따로 모여 예배나 활동하는 모임은 없지만 다수의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어떠한 계기로 장애인과 관련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91년 신학대학을 입학했을 때부터 장애인동아리 활동을 했다. 당시 만났던 분들이 장애인 목사님, 장애인 사역자, 장애인 운동을 하시는 선배 분들이다. 그분들과 같이 지내다가 93년 시각장애인 교회에서 1년 정도 잠시 사역을 했다. 군대를 갔다 와서 농아교회에서 3-4년 정도 사역을 했다. 그 후 염광교회에서 발달장애인 사역을 하게 되었다. 교회 안에 다양한 사역과 활동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이것이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장애인복지를 전공했다. 염광교회에 오면서 목회를 넘어 장애인 분들과 함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이 생겼고 그 고민으로 지금까지 장애인 복지와 관련된 공부와 사역을 계속해 오고 있다. 

 

기존의 목회자와는 달리 협동조합, 사회적경제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가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아내가 목사이다. 아내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사역을 했다. 영등포산업선교회(예전에는 도시산업선교회라고 불렀던 곳)에서 실무 책임을 맡는 총무로 활동했다. 산업선교회 초기에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지원하는 일들을 많이 했지만,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환경이 바뀌면서 노숙인과 관련된 사업 및 비정규직 노동자를 지원하는 사업을 했다. 또한 노동자들과 지역의 주민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다양한 사업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와같은 사업을 지켜보면서, 장애인과 또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삶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데 협동조합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교회에 있을 때 꿈이 장애인 분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꿈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분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립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협동조합이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협동조합이 출범하게 된 계기는 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운영한 텃밭이었다. 봉사자들과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재배하여 먹고 남는 먹거리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건강한 먹거리를 함께 나누고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는 밥상모임을 만들었다. 소박한밥상모임을 통해 먹거리를 사주는 30-40명의 사람들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었고 2013년도에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그 후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업장에 장애인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베이커리, 카페, 공장에서 일하며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보니 사실 운영하고 경영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익이 좀 남아서 장애인분들을 많이 고용하다보니 인건비가 좀 부담스럽긴 했다. 매출액이 4-5억 정도 되는데 실무자와 장애인분들의 급여가 2-3억 이상이 지출된다. 그것이 제일 부담이긴 하지만 설립취지가 장애인분들에게 직장을 만들어주고 장애인분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기에 그 취지를 훼손할 순 없었다. 직간접적인 교회의 지원을 통해 수지를 유지하고 있다. 교회공동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사회적 자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안에서 법인을 만든다고 했을 때 우려나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을 텐데 그와 관련하여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우려를 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교회 안에서 계속해서 협의하고 안을 만들어서 제안을 해왔기 때문에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크게 반박이 없었던 것 같다. 우선 교회 안에서 최고의 리더십 이셨던 원로목사님, 그리고 현재의 담임목사님께서 장애인들을 섬기는 일이 우리 교회에서 꼭 해야 하는 사역이라고 인정하시며 집중해서 도와주셨다. 그 외의 교회의 리더들의 지원이 있었고, 또한 헌신된 봉사자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있었기에 다양한 장애인 관련 사업을 재미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

 

활동 중에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교회 안에서만 일하다가 지역의 자원과 어떻게 함께 할지가 어렵고 고민이 된다. 이일을 시작하는 것이 새로운 도전이자 새로운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배우려고 하고 있다.

 

앞으로의 활동방향이나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복지관의 미션이 바라는 대로 꿈꾸는 대로 함께 삶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장애인의 평생 어깨동무이다. 여기에는 크게 3가지 강조점이 있다. 첫째는 바꿈인데, 바라는 대로 꿈꾸는 대로를 줄이면 바꿈이 된다. 장애인들의 삶의 변화를 만들어 가자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도봉구 지역 장애인의 삶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다양한 활동들을 해보고 싶다. 두 번째는 평생인데, 장애인 분들의 삶이 어릴 때는 치료센터 그 다음은 특수학교, 복지사업, 직업재활사업, 평생서비스 등으로 분절적인 삶을 살고 있다. 서비스는 다양해지고 양적으로 늘었지만 여전히 분절되어있다. 이런 분절된 서비스를 생애주기에 따라 하나의 삶으로 연결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생애주기를 아우르며 삶의 이야기를 만드는 다양한 사업들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다. “...는 네 가지 단어, 어울림깨달음동일함무한함의 앞글자를 따 만든 말이다. 어울림은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생공동체를 만들자는 의미이고, 깨달음은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서로 배우는 배움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하는 의미이다. 동일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르지 않고 서로 존중하자는 인권존중 공동체를 만들자는 의미이고, 무한함은 장애인분들의 능력을 끌어내고 변화시켜서 무한한 희망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자는 의미이다.

 

이런 미션과 비전을 가진 도봉장애인종합복지관은 7개 팀으로 운영되고 있다. 2개 팀은 지원팀으로 경영지원팀, 관리지원팀이고 나머지 5개 팀은 사업팀이다. 사업팀에는 지역조직·권익옹호팀, 사례가족지원팀, 재활지원팀, 평생교육문화팀, 경제자립팀이 있다. 부설로는 활동지원사업과 바꿈카페가 있다.

일반적으로 장애인복지관은 관을 중심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개설하여 복지관으로 오시는 이용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개해왔다. 그러나 앞으로의 장애인복지관의 사업은 지역 속에서 장애인과 함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지역사회중심지원서비스(CBSS, Community-Based Support Service)로 전환하는 계기를 맞고 있다. 앞으로 우리복지관은 한걸음 더 지역 속으로 나아가 다양한 장애인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지역사회 내에서 풀어내도록 하는데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하고자 한다.

 

30대에서 50대 장애인분들을 보기가 어려운데 이분들은 어떻게 관리를 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최중증장애인 친구들의 고등학교 졸업식을 가보면, 졸업식 때 어머님들이 많이 우신다. 왜냐하면 고등학교졸업 후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장애인주간보호시설을 만든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 만들었다. 현재로 장애인복지 서비스는 시설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최중증의 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에 없다. 시설에서는 보다 경증장애인들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설에서도 나이제한이 있다 보니 30~40대 이상이 되면 갈 곳이 없다. 그런 경우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심각한 문제는 30~40대 이상의 중증장애인을 둔 가정의 부모님들이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60~70대의 부모) 장애 자녀를 돌보고 지원해줄 수 있는 신체적, 경제적, 정신적 여력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성인중증장애인을 둔 부모님들은 부모의 사후 자녀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큰 양육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떤 분들은 이러한 현상을 “WIAG(When I Am Gone)증후군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부분들을 지역사회와 이웃들이 함께 고민하고 그 분들이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가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나의 시설로써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민협력플랫폼에 대한 당부나 기대에 대한 말씀해 주세요.


지역으로 나가야하는데 저희도 그 길을 가보지 않아 잘 모르는 것 같다. 안 해봤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앞으로 지역과 플랫폼에 도움을 구하고 더 자주 만나는 날들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우리복지관이 더욱더 든든하게 지역장애인 삶의 어깨동무로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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