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40

 


리버노스

(대표 전진규)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오후

다행히 온도가 많이 낮지 않아

가을비를 연상케 한다.

 

오늘은

리버노스의 전진규 대표를 만난다.

리버노스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무중력지대 2층 회의실로 들어서니

열심히 무언가를 작업 중이신 전진규 대표가 보인다.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 리버노스 전진규 대표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소개를 해야 하나요?”(당황)

개인으로 해야 하나요?” “팀으로 해야 하나요?”(웃음)

나는 인디밴드 회기동 로맨티스트에서 처음 활동했다.

2015년 앨범을 냈고 회기동에서 작년까지 활동했다.

 

대학졸업 후 학생 신분이 아닌 채로 대학가에서 음악을 하는 것이 별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미아사거리에서 잠시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무중력지대 도봉을 알게 됐고 도봉구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작년 도봉구 예술인주택 문화인 마을3에 당첨돼 도봉으로 이주했다.

도봉으로 이사 온 후, 본격적으로 예술 활동과 영상제작 그리고 미디어교육을 하고 있다. 본가는 경기도에 있고 회기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30살부터는 도봉구에서 시즌 2가 시작됐다.

 

 

음악관련 전공을 하셨나요?

그렇지 않다. 외식경영을 전공했다. 전공과는 상관없이 음악을 학생 때부터 했다. 노래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노래를 좋아해서 곡도 쓰고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했다. 이런 활동이 경력으로 인정받아 도봉에서도 활동의 기회를 얻게 됐다. 도봉에서는 주로 녹음과 믹싱작업을 했다. 현재는 영상과 접목해서 영상제작도 하고 있다.

 

 

*'회기동 로맨티스트'의 음악이 궁금하다면 ?

https://music.naver.com/artist/musicianLeague.nhn?musicianId=2459&pcWeb=true

 

 

우연한 기회에 도봉지역에서 활동하게 됐지만 도봉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음악을 하면 홍대를 가야한다 아니면 이태원을 가야한다 라고 흔히 말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내가 겪었던 것을 노래하고 공감하며 공연과 앨범을 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굳이 먼 곳으로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회기동에서도 그렇게 활동했다. 자연스럽게 도봉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이곳에서 활동하게 된 것이다. 물론 시장경제의 구조상 싼 곳을 찾다보니 이곳으로 올라오게 됐다.(웃음)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보니 정말 서울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기는 대학가다 보니 떠날 사람들이 많이 살았고 젊은 세대가 많았다.

하지만 강북 특히 도봉은 전 세대가 아우러져 함께 살고 활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리얼 서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감명을 받고 있다.

 

회기동 로맨티스트는 현재 어떻게 활동하고 있나요?

회기동 로맨티스트 멤버들은 모두 취직을 해서 회기를 떠났다. 내가 회기동 마지막 멤버였다. 멤버들은 음악전공자들이 아니고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다. 음악을 전업으로 할 수 있었지만 경제적 이유로 모두 팀을 떠나게 됐다.

 

도봉지역이 다른 지역과 좀 다르다는 표현을 하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밤에 놀데가 없다. 대학가가 많은 동네를 가면 밤이 시끌벅적하다. 도봉은 직장인이 많다보니 10시만 돼도 사람이 없다. 여기는 노는 동네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 사는 동네란 느낌이 들었다. 내가 학생이라면 이곳이 재미없으니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이 있다 보니 이 지역에 순응하게 되고 사는 지역에 따라 라이프 패턴이 바뀌는 것 같다.

예술과 관련해서는 영감이 부족하다. 사람과 교류가 있어야하는데 지역이 넓고 번화가처럼 만남의 구심점이 없다보니 영감이 부족해진다.

헤밍웨이가 영감을 얻기 위해 펍(Pub)에 모여 작가들과 이야기했던 것처럼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영감을 얻기 위한 구심점이 있어야하는데 아쉬운 점이다.

물론 가까운 쌍문이나 수유에는 아티스트 분들이 있다고 하는데 도봉과 방학동에는 없는 것 같다.

 

말씀하신 것처럼 구심점역할을 할 수 있는 문화가 도봉에 생길 수 있을까요?

창동에 아레나공연장이 들어서지만 공연장과는 상관없이 거리를 중심으로 특화된 가게와 펍같은 상업거리가 형성돼야한다. 방예리를 가보니 그곳은 공방위주였다.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문화를 좋아하고 예술을 좋아하고 사람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밤 12이후에도 모일 수 있는 거리가 없는 것이 아쉽다. 노원의 경우 젊은 층이 모이는 번화가가 있긴 하지만 문화라기보다 유흥 쪽이 많다. 그나마 쌍문동이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문화예술의 거리에 대한 얘기는 듣지 못했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도 도봉에 머무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도봉에서 공모사업을 통해 예술가나 젊은 층들의 발판이 될 기회가 많이 열려있는 편이다. 신진 아티스트들이 이곳에 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리버노스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인디밴드활동 당시에는 노래를 많이 불렀다. 현재는 지역아티스트들의 음악성영상과 사운드를 접목해서 지역의 멋진 영상들을 제작한다.

올 해는 구청의 지원을 받아 도봉에 있는 싱어송라이터 세 분을 섭외해서 9개의 영상을 제작했다. 전공이 외식업 관련이다 보니 도봉구에 있는 가게를 소개하고 리뷰 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시범적으로 영상제작을 했다.

 

 

 

* 리버노스  '어디라이브' 보러가기 ! : https://www.youtube.com/channel/UCg7dKb-33l2lPxuKBxwmbiA

 

 

지역과 관련된 음식과 문화들을 청년층의 시각에서 바라본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리버노스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리버노스(River North)는 강북을 의미한다. 처음엔 강북지역을 대상으로 했지만 생각보다 강북이 넓고 우리가 도봉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다보니 도봉구 위주로 영상을 제작하고 있는 상황이다.

 

리버노스의 멤버는 몇 명인가요?

작년에 결성돼서 메인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4이고 모두 합치면 10명 정도 된다. 리버노스는 소속개념보다 각자 본업이 있고 활동이 있을 때 헤쳐모여로 운영된다.

 

대표님은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가요?

영상제작과 영상교육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영상제작을 하다 보니 음악이 삶에서 밀려나긴 했다.

일이 좀 불규칙하긴 하지만 재미있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다 커리어가 된다.

 

영상은 몇 편정도 제작됐나요?

작년에는 서울지역 위주로 찍었다. 그런데 힘들어서 올 해는 도봉구 위주로 영상을 찍었다. 도봉지역 2, 예술영상 9, 영화 2편 등 꽤 많이 찍었다.

영화제에 내려고 영화를 찍었지만 상은 못 탔다. 하지만 티브로드에서 현재 방영되고 있다.

 

영상을 제작하려면 제작비가 필요할텐데 어떻게 조달하시나요?

일단 개인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장비대여비는 안 든다.

각자 콘텐츠를 찍고 있기 때문에 번 돈을 투자하는 식으로 제작하고 있다. 각자 헌신하면서 제작하고 있다. 부담이 될 정도로 하지는 않고 즐겁게 할 정도로 하고 있다.

배우의 경우 지인이나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을 쓰고 있다.

참여자와 제작자가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관계와 구조로 하고 있다.

 

리버노스의 활동방향이나 비전을 말씀해주세요.

도봉구와 협력해서 크리에이터 & 아티스트들을 위한 콘텐츠 제작 종합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다. 곳에서 콘텐츠 교육과 제작이 함께 이루어지고 인력을 배출해서 도봉구를 알리는 서로 상생하는 구조의 스튜디오형 독립 공간을 만들고 싶다.

 

 

이미 홍대에서 스튜디오형 크리에이터 공간을 스타트업한 곳들도 있다.

구에서 이런 형태의 사업을 추구한다면 스튜디오설계와 아이디어를 제공해서 함께 참여하고 싶다. 또 마케팅을 해서 나중에 후배 활동가들이 양성되는 구조를 만들어보고 싶다.

 

* 리버노스 유투브 채널 구경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YkX-tK4ET_1XjoT3bPJAyQ/videos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은행나루 방송국이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잘 모른다. 아마 마을방송국은 교육이라기보다 콘텐츠를 만들어서 방송을 할 것이다.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엔 좀 더 폐쇄적인 면이 있을 수 있다.

 

선생님께서 구상하시는 스튜디오형 공간은 어떤 형태인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예를 들면 무중력지대의 이 공간이 크리에이터들의 공간이라고 상상하면 된다. 현재 이 사무실은 녹음실이고 다른 공간은 블루스크린이 있어서 촬영이 가능한 공간이 되고 아래층은 자유롭게 편집하는 공간 그리고 네트워크 하는 공간으로 상상하면 된다. 실제로 이런 공간이 서울에 존재하고 있다. 도봉구가 공간이 많으니 이런 스튜디오형 공간을 잘 만들면 강북지역에 있는 많은 청년들이 모일 것이다.

 

예시) 홍대 '티구시포' 공간 (출처: 티구시포 홈페이지)

 

바리칸토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요?

바리칸토는 음악연습실이다. 그리고 그곳은 개인이 투자해서 만든 개인소유의 작업실이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공간은 방송아카데미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그렇게 이해해도 된다. 현재 우리는 미디어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런 미디어영상 제작현장을 경험하거나 정보를 접할 시설공간이 없다. 심지어 사진기나 촬영 장비를 파는 샵도 이곳엔 없다.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도봉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이다.

홍대나 강남을 가면 쏘니나 캐논같은 회사에서 장비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만 도봉에는 아무것도 없다. 회사에서 왜 이곳에 매장운영을 안하는지 궁금하다.(웃음)

 

활동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공간이다. 공간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기간이 1년 미만이다. 그러다보니 사용하던 사무실의 집기들과 가구들을 몇 개월 사용하고 처분해야한다. 간사용 기간을 장기적으로 해주면 좋겠다. 프로젝트를 2-3년으로 해서 공간도 프로젝트기간 동안 사용하게 하면 훨씬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힘든 반면 활동에 동력을 주는 것은 어떤 부분일까요?

활동을 통해서 일거리가 들어온다. 물론 의도하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영상을 보고 강의나 영상제작과 같은 일거리를 의뢰한다.

우리의 영상을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봐주신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시는 분들도 많다.

 

영상홍보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일단 채널에 올리고 도봉문화재단에 링크를 보낸다. 도봉에서는 도봉문화재단을 통해서 홍보를 하고 있다. 자체적으로는 출품을 하거나 티브로드나 tbs같은 곳에 작품을 낸다. 방영이 되면 그 자체가 홍보역할을 한다.

 

지역에 있는 단체와 함께 작업하시는 것은 없나요?

LOE와 함께 현재 콜라보해서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4단체 정도 함께 홍보영상을 제작했다.

 

제작팀은 어떻게 꾸려지나요?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형·동생이 있다. 필요할 때마다 이들을 섭외한다. 제 입장에서는 이분들이 도봉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고 도봉구의 입장에서는 퀄리티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됨으로써 서로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이번에 구민청과 TEAM 2470을 연결해서 규모 있고 퀄리티 있는 행사를 했다.

 

청년예술인들이 도봉에 안착하기 위해서 지역차원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이왕 청년들에게 일을 맡길 거라면 크게 투자하고 확실한 결과를 얻었으면 한다. 홍보영상의 경우 사기업에 맡기면 한 편에 3-4천만원이 든다. 우리에게 맡기면 같은 퀼리티로 1천만원에 만들 수 있다. 아니 훨씬 더 잘 만들 수 있다.

사업이나 일의 의뢰가 나라장터에 등록된 사람들이 선발적으로 입찰된다.

도봉에 젊은 기술자들이 많지만 후발주자로 대기하다보니 일의 연결이 잘 안 된다. 그리고 문화예술을 하는 청년들에겐 공간의 문제가 가장 크기 때문에 적합한 공간이 제공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사실 플랫폼에 대해서 잘 몰랐다.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소식지나 홈페이지가 있어서 문의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39

 


무중력지대 도봉

(김동훈 센터장)


 

 

 

△ 주황색 컨테이너로 된 무중력지대 도봉 외관

 

하늘이 흐린 미세먼지가 있는 날이다.

오늘은 무중력지대 센터장님을 만난다.

최근 무중력지대에서 회의를 하다 보니

꽤 들락거렸지만 이곳 무중력지대에서

어떤 활동들이 펼쳐지는지 구체적으로 알진 못했다.

오늘은 김동훈 센터장님을 만나

편안하게 담소를 나누듯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무중력지대 2층 사무실에 들어서니

무언가에 집중하고 계신 센터장님이 보인다.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나와

옆 회의실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았다.

 

 

△ 무중력지대 도봉 김동훈 센터장

 

본인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항상 소개할 때 무중력지대 도봉에서 일하는 김동훈 이라고 소개합니다.(웃음)

 

 

지역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동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무중력지대 개관2018622 이다. 내가 무중력지대에서 일하게 된지는 올 4월 말부터였다. 무중력지대 오기 전에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일을 했다. 당시 주변 환경을 바꾸기 위해 이직을 알아보고 있을 때 무중력지대 도봉에서 구인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됐다.

무중력지대와 관련해서는 조금 활동경험이 있었다. 무중력지대 성북을 운영하는 성북신나 협동조합에서 1년 정도 조합원으로 활동했다.

그 전에는 문화재단, 사회적기업 노리단, 구리 YMCA 활동 경험이 있다. 기업 쪽보다는 민간단체에서 일을 많이 했다.

 

 

일반기업보다 민간단체를 선호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계기라기보다 일을 할 때 소득도 중요하지만 일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고 서로 상생할 때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물론 소득이 높은 직장을 골라서 다닐만한 스펙도 아니었고) 그러다보니 재미를 찾아 이직을 많이 했다. 2000년 대 초반 NGO에서 일할 당시 제 또래의 실무자들이 많았다. 급여는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었고 환경도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선배들이 부추겨서 자연스럽게 끌렸던 것 같다.(웃음)

 

 

무중력지대에서 센터장님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요?

총괄업무를 한다. 내가 무중력지대에 오기 전 이 자리는 공석이었다. 사실상 센터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업무를 진행하다보니 직원 분들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센터장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웃음)

전 직장에서 위탁사업을 한 경험으로 행정업무와 운영체계를 안정화하는 것에 신경썼다. 외부 협의나 의사결정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데서 실무자들이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

실무자들이 더 많은 경함을 할 수 있도록 외부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있다.이런 경험이 사업내용을 채우고 방향을 잡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중력지대가 생겨난 배경과 취지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무중력지대는 2016년 금천구 G벨리대방에 처음 생겼다.

그 전에 서울시 청년허브가 먼저 생겼다. 청년허브청년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청년허브를 통해 청년들이 모이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청년들이 편하게 무언가를 시도할 공간이 더 많이 생겨야한다는 필요에 의해 무중력지대가 만들어졌다.

 

'무중력'이라는 말은 원래 다른 배경에서 다른 의미로 쓰이기 시기작한 말이다. 무중력한 상태(운둔형 외톨이)의 청소년과 함께 밴드를 만들어서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적기업 유유자적 살롱에서 은둔형 외톨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단어 대신에 무중력 청소년으로 표현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무중력의 의미가 청년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해석된다. 청년들의 경우 여기저기에서 너무 많은 중력을 받고 있다. 취업이라는 중력, 결혼이라는 중력, 경제라는 중력. 이 중력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실험과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차원에서 무중력지대라는 이름을 쓰게 됐다.

말하자면 중력에서 벗어나 보자는 의미이다.

 

 

△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낸 무중력지대 도봉

 

 

무중력지대의 의미를 알고 보니 너무 멋집니다. 그렇다면 무중력지대는 그 의미처럼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중력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청년들의 교류와 소통, 실험을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지만 수치 상의 주된 이용자들은이 취업준비생이다.

△ 무중력지대 멤버십데이 활동 사진 (출처: 무중력지대 도봉 블로그)

 

공부를 하러 오는 분들도 센터사업에 더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활동도 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이 그런 활동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이 공간에서 준비를 잘해서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하면 그것도 하나의 성과라고 생각한다. 무중력지대를 통해 단 한 사람이라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다면 그것으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무중력지대 도봉의 활동방향이나 비전은 무엇인가요?

초기에는 무중력지대를 안착시키고 안정화하는데 집중했다.

지금은 도봉구에서 활동하는 청년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청년활동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각자 활동하는 공간이 있겠지만 전체가 함께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

청년들이 공간을 이용하는데 좀 원활할 수 있게 규칙을 수정하려한다.

청년들이 대관규칙에 대해 벽을 느끼고 있어서 청년들에게 한해서 무분별하지 않게 더 개방성을 가지려한다. 청년 이외의 사용자에게는 벽을 좀 더 높여서 청년들이 무중력지대를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청년에게 집중하려한다.

청년이 활동한다고 하면 대관형태가 아니라 협력사업처럼 공간지원을 하는 형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고민 중이다.

 

 

함께 활동하는 청년단체들은 어떤 단체가 있나요?

△ 청년정거장으로 활동 중인 청년단체들 (출처: 무중력지대 도봉 블로그)

올 해 사심가득 클래스, 사심가득 소모임으로 활동했던 팀이 40 정도 있고 청년정거장지원사업에 참여하는 팀은 리버노스, 나부랭이, 액션랩, 크크공방, 극공작소 뜬구름, 도도봉봉, 시선, LOE가 있다.

 

 

활동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어떤 부분인가요?

운영상에서의 어려움은 무중력지대가 위탁사업이다 보니 함께 근무하시는 분들이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고용안정성이 보장된다면 좀 더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의 구조에서 안정성을 더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에 있다.

현재 근무하시는 분들은 20대 초반에서 30대까지 아우른다.

첫 직장인 분도 계시고 이직하신 분도 있다. 개인의 행복과 조직의 활기가 함께 어우러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 중이다.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조직에 결속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이다.

물론 다들 자신의 역할들을 잘하고 있다. 약간 욕심을 낸다면 좀 더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다. 팀원들끼리는 화기애애한데.(웃음)

자유롭게 의견도 내고 논쟁(?)도 했으면 한다. 그러면서 관계성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왠지 의견을 내는데 주저하는 것 같아서 조금 아쉬울 때가 있다.

혹은 제안들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더 많이 소통하고 이야기하다보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무중력지대는 어느 법인이 위탁받나요?

무중력지대 도봉은 도봉문화재단이 위탁법인이다. 무중력지대마다 운영하는 주체의 성격이 다르다. 협동조합도 있고 주식회사도 있고 다양한 주체가 운영하는 것은 매우 좋은 형태라고 생각한다.

 

* 도봉문화재단 인터뷰가 궁금하시다면?! 

https://dbplatform.tistory.com/135?category=741713 

 


개인적으로는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개인적으로는 되게 행복하다.(웃음)

 

 

 

매우 행복해 보여서 참 좋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내가 하는 역할이 도움이 된다는 느낌이 들 때 만족스럽게 일할 수 있는 것 같다. 우선은 지금 행정적인 부분에서 도움이 되고 있고 또 센터에 망가진 것들을 잘 고친다.(웃음) 프로그램 기획이나 운영에는 별로 참여하지 않았다. 워낙 실무자들이 잘하고 있다.

 

 

 

그간의 활동경험을 토대로 단체가 변화되어야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도봉구의 시민단체 벽이 높다고 종종 들었다. 벽이 느껴져서 진입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일반 단체가 그렇다면 청년들도 아마 더 크게 느낄 것이다. 청년단체로 청년 인정이나 ‘LOE’는 그래도 시민플랫폼에 들어와 있지만 청년단체들은 좀 주저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짧은 경험에서 추측해본다면 청년들이 시민단체에 가입해서 활동하려면 너무 많은 활동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것 같다.

생계를 위한 본업이 있는 상황에서 따로 시간을 내서 활동해야하는데 시간에 대한 부담이 크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활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하면서 활동영역이 점점 넓어지는 형태라면 다를 수 있겠지만 현재 시민단체의 상황도 잘 모르고 역사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시민단체 안으로 진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런 걸림돌을 넘어서 참여한다 해도 조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명확하지 않다면 더욱 주저하게 될 것이다.

 

 

△ 무중력지대도봉 라운지를 가득 메운 청년들

 

 

그렇다면 청년들이 시민단체 안으로 유입되기 위한 대책이 있을까요?

시대와 상황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나는 YMCA에서 청소년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YMCA에서 청소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현재 청년들이 각자 활동하는 사무실이나 작업공간 이외에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공공에서 제공한다. 무중력지대같은 커뮤니티공간이나 문화, 창업단지 같은 곳이 그런 곳이다. 청년들이 필요한 공간이나 정보, 자료, 예산도 공공에서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민단체에서는 청년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를 일차적으로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청년들에게 제공할 만한 콘텐츠가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도 있다.

 

또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청년들이 생존문제를 해결한 후에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생존문제가 해결됐을 때 활동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청년들에겐 그런 생존의 문제부터 해결이 돼야 활동이 가능한 것 같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더나은도봉조직위원회 회의에 딱 한 번 참석했다. 그때 느낀 점은 회의에 참여한 단체들의 공동목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연대를 위한 목표가 부재한 것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지역단체들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다. 당시 지역단체와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함께 성명서를 낸다든가 사무실을 임대해서 함께 공유한다던가, 회의를 통해 지역사회의 방향성을 잡는다든가 하는 공동의 목표나 공동행동이 있어서 연대가 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없어지니 교류도 적어졌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도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는 시도해 볼 수 없는 일을 함께 시도해보는 것도 공동의 목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공간을 함께 임대해서 사무실과 회의실을 공유하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참여하는 팀의 규모에 따라서 사무실 공간을 분배를 하는 등 참여와 기여도에 따라 유연성 있게 운영하면 될 것 같다.

개인적인으로는 컨퍼런스 같은 향사는 경우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기 쉽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지속적인 참여를 위한 방법이 필요한데 기금마련 같은 건 어떨까 한다.

아니면 공간마련을 위해 가능한 몇 단체가 먼저 시작해서 꾸준히 기금마련에 참여하고 하나 둘 더 참여하다 보면 공간마련을 위한 Seed Money나 보증금이 만들어 지고 현재 사무실을 옮길까 고민하시는 단체들이 먼저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혼자 하는 것보다 함께 하면 부담도 훨씬 적을 것이고 더 나은 컨디션의 공간을 찾게 될 것이다.

먼저 물리적인 공간을 마련하면 그에 대한 책임과 의무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38


쿤스트하우스

(김채운 대표)


 

 

날이 좋다가도 수능날이 되면 추워진다는 전설(?)이 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창동역 1번 출구 앞에서 김채운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다.

잠깐 기다리는데도 온몸이 시리다.

예상치 못한 추위라 몸이 적응이 안됐는지 광장에 덩그러니

서있는 것이 힘들어서 잠시 무중력지대로 옮겨서 몸을 녹였다.

채운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광장으로 나갔다.

간만에 선생님의 모습을 보니 더 반갑게 느껴진다.

우리는 따뜻한 너른마루 카페로 이동했다.

 

 

 

쿤하라는 명칭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나요?

각자 활동을 하던 아티스트들이 내가 가진 재능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몇몇이 모이게 되었다.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도구이기 때문에 예술을 믿고 그 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정하자고 결정하면서 예술인의 집, 독일어로 쿤스트하우스(Kunst Haus)로 만들게 되었다. 원명이 길다보니 부르기 편하게 쿤하로 짧게 사용하지만 회사명은 원명 그대로 쿤스트 하우스(이하 쿤하)로 사용하고 있다.

 

△ 쿤스트하우스 김채운 대표

 

지역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동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쿤하는 마음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예술공연으로 힐링하고 예술을 배우고 싶으나 어려운 환경 때문에 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아동청소년을 위해 활동한다. 쿤하는 아동청소년들에게 체계적인 예술교육을 하고 이를 통해 외롭고 소외된 상처와 마음을 만져준다. 그리고 상처가 회복될 수 있도록 돕자는 활동취지가 있다.

2010년 처음 공연을 기획해서 쿤하활동을 시작했다.

쿤하활동과 취지가 도봉구에 입소문을 타면서 2011년 도봉구청에서 활동제안이 들어왔다. 당시 도봉구청 드림스타트에 예술교육이 부재했었는데 지역의 저소득층 가정의 아동을 위한 예술프로그램을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다.

당시 나는 라이솔트공연기획사에 근무하고 있어서 쿤하의 행정부분을 맡아서 도왔다. 쿤하 초기 멤버인 예술인 4명이 종합예술프로그램인 옐로드리머을 만들어 드림스타트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지역활동과 함께 쿤스트 하우스가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게 됐다.

 

△ 2015 드림스타트 합창단 옐로드리머 공연 사진 (출처: 동북일보)

 

 

쿤하의 학생대상 예술프로그램은 어떤 프로그램들이 있나요?

노래, 악기, , 연기, 밴드 등 다양한 예술을 전문가에게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동 놀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하고 청소년들은 주체성을 가지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다. 단순히 기능적인 예술보다는 생활에서 예술로 나를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결국 예술교육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건강한 성장기를 보낼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아동의 대부분 우울증, ADHD와 같은 심리적 문제를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아이들이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 아이들이 집밖으로 나와서 활동할 수 있게 많이 움직이고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노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또한 사회에서 다소 늦은 친구들이 일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같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공연 활동을 하게 한다.

건강한 친구들은 느린 친구들을 배려할 수 있도록, 느린 친구들은 건강한 친구들의 건강한 에너지를 받을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며 보폭을 맞추며 같이 성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옐로드리머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여 이 아이들이 사회에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

 

 

쿤하의 활동과정과 활동내용이 궁금합니다.

드림스타트12세 아동까지만 활동대상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우리와 함께 더 이상 활동할 수가 없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이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을 종종 봤다. 이를 보면서 많은 고민이 들었다.

그때 도봉교육복지센터에서 진행하는 통합성장프로그램을 알게되어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도 계속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술로 아동청소년들을 계속 만나다 보니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서 놓치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2년간 연극치료를 배우고 심리학 공부를 했다. 그리고 청소년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가 청소년들을 제대로 만날 준비가 됐던 것 같다.

예술을 전공한 청년들이 대학졸업 후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는 것을 보고 쿤하에서 같이 활동해보자고 제안했다. 청년들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지역에 기여하고 아이들은 전문가를 통해 예술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청년예술가와 지역의 아동청소년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계기가 마련됐다.

쿤하의 프로그램이 아이들의 성장에 좋다는 평가가 서초구에 알려지면서 서초구청으로부터 프로그램진행 요청이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2015년부터 서초구청에서도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다.

그 후 도봉혁신교육지구사업이 시행되면서 쿤하가 거점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혁신교육지구사업을 맡아서 하고 있다.

 

*도봉구혁신교육지구 - 쿤스트하우스 마을학교 신청을 원하신다면? 링크 클릭!

http://happyedu.dobong.go.kr/Lecture/vschool.asp?strSearchType=1&strSearchKeyword=%EC%BF%A4%EC%8A%A4%ED%8A%B8%ED%95%98%EC%9A%B0%EC%8A%A4&

 

저 개인적으로는 마을예술창작소에서 1년간 근무를 했고 그 후 도봉구청에 들어가서 마을공동체과 사회적경제팀에서 근무를 했다. 구청에 들어가게 된 계기는 전에 예비사회적기업 라이솔트에서 3년 근무한 것이 인연이 됐다.

 

마을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마을예술창작소에 다닐 때 근무지 옆예 마을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있었다.

그곳의 활동가분들과 친분이 생기다보니 마을활동에 더 관심을 갖게 됐던 것 같다. 이런 친분은 쿤하의 옐로드리머가 활동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마을예술창작소가 문을 닫으면서 옐로드리머의 연습공간이 사라졌다.

그때 마을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공간이나 허브센터의 공간을 빌려 사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예술활동가와 지역활동가가 서로 알게 되면서 활동영역도 넓히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현재 몇 몇의 예술활동가는 구청에서 진행하는 청년인큐베이팅 사업에 참여해서 바리칸토라는 팀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바리칸토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 뮤지컬 퍼포먼스팀 '바리칸토' (출처: 바리칸토 페이스북)

바리칸토는 처음 장미꽃 청년들이라는 팀명으로 활동했다. 장미꽃 청년은 타 지역의 청년들로 구성됐다. 이 청년들과 쿤하가 함께 같은 모티브로 도봉에서 버스킹을 했었다. 올 해 장미꽃 청년들이 구청사업에 지원하면서 팀명을 바꿔 바리칸토로 활동 중이다. 바리칸토는 뮤지컬 퍼포먼스 팀이다. 공연도 하고 사업도 하고 있다. 이 분들은 쿤하의 강사이면서 바리칸토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쿤하는 사업장이나 연습실이 없나요?

없다. 프로그램을 위한 연습공간이 필요한데 아이들이 연습할 공간이 마땅히 없다. 쿤하의 사업장은 이번에 마을사회적경제센터에 코어워킹으로 들어갔다. 쿤하도 마을사회적경제로 전환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본인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소개하시겠어요?

저요?(웃음).” “저도 참 요즘 고민이에요.” “난 도대체 뭔가.”(웃음)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나의 정체성은 뭔지 가끔 고민스럽다.

굳이 말하자면 아카데미 원장, 공연기획자 이렇게 소개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아카데미 원장이라면 학원을 운영하시나요?

ETA Lab Academy(Emotional Touching of Arts)을 만들었다.

감정터칭 예술교육 예술로 행복한 아이를 키우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쿤하 강사들은 쿤하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아카데미강사교육을 먼저 받는다.

우리는 일반 실용음악학원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 수업이 먼저 선행돼야한다.

왜냐하면 전문적인 예술교육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도 같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육함에 있어 아동청소년들이 예술교육을 받으면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야기도 들어주고 많이 안아주어야 하는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강사채용 전에 인터뷰를 2시간 정도 진행한다. 인터뷰를 통해 아이들의 특성을 알려주고 활동의 난이도 등을 설명해드린다. 그리고 선생님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게 될지 들어보고 의지를 파악한다.

이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의지가 중요하다. 실제로 일이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 두시는 분도 있다. 그래서 우리 쿤하 선생님들은 예술적 실력도 좋지만 정말 인성이 훌륭하신 선생님들이시다.

우리가 전문적인 치료기관은 아니지만 연극치료와 감정코칭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감정이입이 되면 일이 힘들어진다. 때문에 이 일이 쉽진 않다.

 

 

강사는 정기적으로 양성되나요?

현재까지는 비정기적이었지만 앞으로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강사를 배출할 예정이다. 현재 아카데미교육은 현 활동 강사들도 직무교육으로 받고 있다.

 

 

인터뷰를 해보니 선생님께서는 소외계층이나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대상도 아동부터 노인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 계층과 연령에 상관없이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첫째 20대 때는 계속 도전하고 넘어지고 도망가는 일이 많았다. 결국 예술을 포기하고 일반직장에 다니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서른살이 되자마자 사직서를 던지고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닥치는 대로 최대한 많은 활동을 했다.

나는 처음 예술을 배울 때 너무 힘들게 배웠다. 그 당시 이미 풍족하게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저렇게 다들 잘나갔다. 그런 반감 때문일까 활동하면서 재정적으로 안정적이고 풍족한 사람들 보다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마음이 더 끌렸다. 그리고 예술을 가르치기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위로하고 싶었다.

20대 때부터 시간이 허락하면 복지관이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활동했다. 신앙적인 부분에서 많은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다.

배워서 남 주자가 모토였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자존감도 낮고 자신감도 부족했다.

20대 때 화려한 무대에 서고 싶었고 그런 삶을 꿈꿔왔다.

그런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오는 좌절감과 절망감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 후 무대를 떠났고 음악도 노래도 예술과 관련된 모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대 후반에 의료업계에 들어가 3년간 열심히 돈을 벌었다. 돈도 많이 벌어봤지만 마음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우울증도 심했고 마음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때 독일유학에서 돌아온 신지연 언니를 만났다.

너 그렇게 열심히 음악 배웠는데 뭐하냐?” 라는 한 마디가 나를 흔들었고 힘을 줬다. 당시 나는 뭐든 움직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생각 없이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당시 마음이 바닥을 치는 상태에서 시작한 활동이라 모든 게 감사했다.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이런 기쁨을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귀하게 여기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인줄 알았다. 활동을 하면서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동안 내가 교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을 다시 보게 됐다.

 

 

 

앞으로 향후 계획이나 쿤하의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사실 쿤하를 이렇게 오래할 계획은 없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와서 나 자신도 놀라고 있다.(웃음)

주변에서도 기적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쿤하가 지금 이렇게 성장한 모습을 주변에서 좋게 평가해준다.

 

요즘 관심사는 아동청소년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안정된 환경을 제공해줄지 고민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 아티스트들의 권익을 보장해줄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하고 있는 일들과 사업이 자리를 잡고 지속가능해야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쿤하가 10년째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 보니 그동안의 노하우를 정리해서 전문화시키려 한다. 복지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사업을 해볼까 한다. 예술가와 아동청소년이 함께 지역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비영리단체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려고 한다.

 

 

활동 중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사실 자본이 없어서 힘든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선입견과 소외된다는 느낌이다. 내가 만나고 있는 대상자들은 힘없는 약자들이다. 나또한 힘없는 단체의 대표이다. 그러다보니 지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보다는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지역에 공간이 마련된다고 해서 기획 단계부터 참여해서 함께 공간을 만들었지만 막상 우리는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이 됐다. 이런 현실 앞에서 무너질 때가 있다. 힘없는 단체이다 보니 우리의 상황이나 입장은 고려되지 않고 일이 진행될 때 힘든 것 같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연결고리는 무엇일까요?

신앙과 관련된 게 크다.너무 신앙적인데..”(웃음)

저의 모토는 성경말씀에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다.

20대 후반 생사를 오가면서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사후에 내가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채운아, 네가 거기에 있어서 정말 보기 좋았어.” 라는 말을 듣고 싶다.

사실 쿤하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마음이 모여서 선한 힘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가 쿤하에서 해야 할 역할은 쿤하가 내 것이 아니니 다음 사람을 위해 좀 더 튼실한 재정여건과 튼실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누군가 쿤하를 맡았을 때 나처럼 힘들지 않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 쿤하를 더 선한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그간의 활동경험을 토대로 단체가 변화되어야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언제 부턴가 유사한 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많이 생겼다. 사업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든 그렇지 않든 너무 많은 사업 단위들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내실은 없고 명맥만 유지하는 느낌이다. 이런 유사한 단체들이 비슷한 일을 하면서 하향평준화 된다는 느낌도 있다. 사업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예술가 후배들 예술의 발전과 지속성을 생각하며 사업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도봉구에 공간이 많이 있다. 그런데 이런 공간을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도봉구에 행사도 많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행사. 사업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비슷한 사업을 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은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플랫폼이 이런 정보의 창구가 돼서 흩어진 정보를 통합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37


...

(최소영 대표)


 

 

약간은 쌀쌀한 오전이다.

최소영 대표와 인터뷰일정을 잡기위해 여러 번 연락했다.

그때마다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며 겸손하게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녀의 겸손한 거절은 청바지에 대한 궁금증을 더 유발시켰다.

드디어 오늘 그녀를 만나 청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앞일정이 있어서 30분 정도 늦어진다고 연락이 왔다.

늘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그녀의 열정은 삶 자체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 청.바.지. 최소영 대표

 

지역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시민단체 활동은 2007년 도봉시민회에서 처음 시작했다.

당시 도봉시민회에서 진행하는 리더십강사양성과정에 참여했다.

강사양성과정을 마친 후 지역의 소외계층 아이들과 리더십수업을 했다.

리더십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자존감도 향상됐고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됐다. 하지만 아이들의 변화는 지속성을 갖지 못했다.

가정으로 돌아가면 아이들의 자존감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런 한계를 보면서 아이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함께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계기로 지역활동과 마을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청바지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첫째, 마을활동을 할수록 예산지원중심 운영에 대한 한계를 느꼈고 그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예산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자생력을 갖춘 지속가능한 민간단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둘째,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고 변화를 이끌어 내자는 생각이 있었다.

 

우선 지역주민들과 함께 지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때마침 봉사활동이 필요한 중학생 자녀를 둔 가족단위들이 있어서 이 분들과 함께 마을봉사활동을 해보기로 했다.

기존의 시간 때우기식 봉사수준을 넘어서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 지역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봉사활동을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이러한 취지에서 마을주민모임이 결성됐고 네이밍을 청소년이 바꾸는 지역 활동’ (이하 청바지)이라고 붙였다.

청바지는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 활동기획에서 실행까지 모든 단계에 참여한다. 어른들은 곁에서 지지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이런 방식으로 청바지 활동은 청소년과 부모세대를 아우르는 활동을 했다.

 

청바지 활동목표지역사회 문제해결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를 찾는 방식걷기를 통해 동네를 알아가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그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을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어 방법을 찾는다. 거창하지 않지만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지역사회의 변화를 체감하며 성취감과 자부심을 키워갔다.

 

△ 서울강북신문에 보도된 청.바.지.의 '국화꽃 심기' 행사 (출처: 서울강북신문)

 

청바지에 참여한 인원은 얼마나 되나요?

2012년 초기 5-6 가족이 참여했고 15명 정도가 된 것 같다. 참여 숫자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활동의 의미에 동의하는 사람이 단 한명일지라도 진행할 각오로 활동을 진행하였다.

2019년 지금까지 거쳐 간 청소년과 가족들을 생각하면 수천 명 정도 된다.

 

 

청바지활동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요?

첫 활동은 느슨하게 지역을 거닐며 지역을 익히는 것이었다. 거닐다 보니 도로변 대형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예쁜 꽃들이 가득해야 할 화분에는 오랫동안 방치된 흔적으로 대형 쓰레기통으로 전락해 있었다.

우리는 방치된 화분에 를 심기로 했다.

꾸준한 관심과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 한철만 볼 수 있는 화초가 아닌 1년의 과정을 볼 수 있는 벼를 심고 1가족 1화분을 담당하고 관리하기로 했다.

15가족이 참여를 하여 1년 동안 벼를 심고 추수하는 과정을 거치며 도심 속 작은 농부가 되어 보기로 했다. 대형화분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주변을 청소하게 됐고 거리와 환경이 깨끗해졌다. 예상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벼를 가꾸는 과정에서 도심 속 무관심한 문제로 남을 수 있던 지역문제가 해결됐다. 이는 청바지 활동의 첫 성과였다.

작은 실천이었지만 청소년과 함께 하는 마을공동체 활동은 모범사례로 선정됐고 기사와 TV프로로 소개됐다.

 

*2014년 서울시 홈페이지 '월간마을 10호'에 소개된 청.바.지.

http://news.seoul.go.kr/gov/archives/65074 

 

[월간마을 10월] 마을, 청바지를 입다, 도봉구 ‘청바지’

우리가 사는 도시에 마법의 청바지를 입은 마을이 있다. 청소년이 바꾸는 지역활동, 마을 탐사단 청바지. 도봉구 창4동에 있는 청바지는 조금 더 특별하다. 마을 탐사단 청바지는 ‘우리 마을 자원봉사단’이라 불리지만 단순히 봉사만 하는 단체는 아니다.

news.seoul.go.kr

 

이 사례는 서울시에서 <누가 쓰레기화단에 꽃을 피웠을까?> 라는 책으로 발간됐고 초등학교 '지역문제 해결하기' 과정 참고 도서로 권장되기도 했다.

△ 누가 쓰레기 화단에 꽃을 피웠을까? (출처: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이외 청바지 활동은 청소년이 운영하는 벼룩시장, 1평 가로수 정원, 놀이터 마나책방, 마을청소, 청소년뮤지컬, 청소년 문화기획학교, 이야기가 있는 골목이야기 등 지역과 연관된 많은 봉사와 문화 활동으로 이어졌다.

 

처음 활동 시작 단계에서 '지역'이라는 공공공간을 활용한 참여활동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우리가 여기서 활동을 해도 돼?’라는 의문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해결 과정에서 , 우리가 해야 되는 구나’ ‘우리가 할 일이 더 많구나라는 의무감과 필요성을 알게 됐고, 활동의 좋은 결과를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청.바.지. 밴드 가입을 원하신다면?

링크 클릭! : https://band.us/band/5556928

 

마을탐사단 청바지 |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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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의 향후 계획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2012년 의기투합으로 시작한 작은 주민모임이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 단위가 확대되었고 아이가 자라듯 활동도 자랐다. 참여한 주민들의 역량은 지역의 자원으로 남아서 공익적 가치를 담은 활동이 마을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를 바랐기에 2016년 법인을 설립했다.

활동이 깊어질수록 가치지향 중심의 지역활동에서 경제적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가 필요함을 체감했고 현재 청바지의 제2전환기를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 훈훈한 분위기의 인터뷰 현장

 

대표님은 그간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지역사회 문제해결을 위해 마을 속에서 청소년과 어른들이 함께하는 마을활동을 했다. 이외에 민관거버넌스를 위한 마을공동체, 혁신교육, 협치, 도시재생과 관련된 활동들을 주로 해 왔다. 그 중에서 주민들과 함께 한 숲속대전차방호시설 공간재생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이다. 지금은 정체된 활동가가 되지 않기 위해 또 다른 배움과 그동안 쌓아 온 지역활동의 노하우를 다른 지역에 공유·전파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활동 중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항상 힘들다.(웃음)

기존의 활동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혁신적 활동을 위해 유목민처럼 동네를 돌며 활동꺼리를 찾아다니는 느슨한 활동의 유지운영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방식이 주는 변화의 내용과 참여의 중요성을 이해시키는 것'이 청바지의 미션이었다.

청바지의 활동은 미리 계획해서 근사하게 짜인 기획활동이 아니다.

자유분방한 활동이기에 오히려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청바지의 활동목적과 취지를 이해시켰다. 그렇다고 억지스럽게 설득시키고 참여시키지도 않았다. 마을활동은 자유의지가 중요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 청바지 활동가 (출처: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블로그)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활동을 통한 지역의 변화를 볼 때 힘을 얻는다. 크고 화려한 활동이 아니더라도 참여를 통한 지역사회변화의 시도는 아이들과 마을주민들에게 성장을 가져온다. 동시에 마을에 대한 자긍심을 갖게 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런 것이 동력이 된 것 같다.

 

그간의 활동경험을 토대로 단체가 변화되어야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상호존중이다. 서로의 입장차이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했으면 한다.

상호인정과 조건 없는 협력을 통한 상생협력이 이루어졌으면 한다.

 

활동가들의 성장도 필요하지만 단체의 성장도 필요하다고 본다.

마을활동의 시작과 중심은 개인이지만 활동가를 성장시키는 것은 단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신입활동가와 기존활동가의 활동경험에 맞춰 활동가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단체가 지원해야한다. 단체도 변화속도에 맞춰가야 한다. 또한 탄력적인 마을활동이 되지 않으면 정체되고 고립될 수 있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도봉의 시민단체는 과거네트워크로 움직이는 시민단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공의 활동이 사업화되어 여유가 없어지고 일에 허덕이면서 활동가들은 점점 힘에 부치고 있다.

시민협력플랫폼이 등장하면서 흩어졌던 네트워크를 새로운 에너지로 다시 모아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 에너지가 흩어지지 않고 서로 연대하고 연결이 되길 바란다.

문턱 없는 시민협력플랫폼이 되어서 어느 단위가 와도 소통이 가능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끝으로 시민협력플랫폼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자생력을 갖추어 사업 중심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채우고 채워가는 그런 곳으로 지역에서 함께 있어 주면 좋겠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36


꿈나누리센터

(정희경 대표)


 

 

정희경 선생님은

지난번 수제Bee어울터의 활동가로 소개됐다.

꿈나누리센터 대표로는 어떤 이야기보따리가 있을지 궁금하다.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논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의 활동가로 또 교육자로 지역에 기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정희경 논술·국어학원의 문을 두드리니

정희경 선생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반긴다.

 

△ 꿈나누리센터 정희경 대표

 

 

지역 활동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2011년 도봉구청에서 자기주도학습상담사 양성교육이 있어서 신청하게 되었다. 5:1의 경쟁을 뚫고 수강생으로 발탁되어 6개월간 양성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마치고 몇 몇 의지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심화수업을 받으며 스터디를 했다.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상담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후 창문 두드림 봉사단동아리를 결성했다.

창문 두드림 봉사단창문을 두드리면 창의적 사고가 열려 자신의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봉사단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창문 두드림 봉사단을 결성 후 2-3년간은 무료로 수업을 진행했다.

일주일에 한 번 지역아동센터와 복지관을 방문해서 소규모 담임제 멘토링 형태로 2시간씩 소외계층 청소년을 위한 자기주도 학습법을 지도했다.

처음 활동은 창문 두드림 봉사단으로 시작했지만 그 후 구청에서 양성한 학교폭력예방교육 강사단과 합치면서 마을학교 꿈나누리센터로 개명했다.

현재는 도봉구의 예산으로 학교수업을 의뢰받아 20시간씩 수업을 나가고 있다.

 

 

△ 정희경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논술학원 내부 (1)

 

 

현재 꿈나누리센터에서 활동하시는 선생님은 몇 분인가요?

회원은 현재 7명 정도 된다.

도봉구와 노원구에 있는 학교에 수업을 나가고 있다. 시험 후와 방학 전에 전환기 수업을 많이 한다.

 

 

꿈나누리센터의 비전이나 향후 계획은 무엇인요?

사실 다른 팀과 합친 것은 규모를 좀 넓혀서 협동조합을 만들어보려는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회원들 간에 서로 뜻이 다르기도 하고 준비과정에 시간 소요도 만만치 않다보니, 아직은 시기상조란 생각이 들어서 잠시 미뤄두고 있다.

현재는 리뉴얼 작업을 하려고 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속담이 있다.

물갈이 하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선생님들을 영입해야 활성화가 될 것 같다. 현재 인원수로는 수업을 나가는 데 역부족이기도 하다. 기존의 회원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혼자 감당 하는 상황들이 많다. 때문에 새로이 임원진을 꾸려야 할 지 내가 좀 더 감당을 해야 할 지 고민 중이다.

 

 

프로그램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시나요?

기본적인 틀과 매뉴얼은 있다. 하지만 내용은 그때그때 트렌드에 맞게 보완 수정한다.

말하자면 하드웨어는 그대로이지만 소프트웨어를 바꾸어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공부가 재밌지는 않지 않은가? 재미없는 공부를 재미있게 풀어가는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 정희경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논술학원 내부 (2)

 

 

활동 중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저희 팀원들은 대부분 본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학원 강사, 과외 선생님 혹은 학원원장으로 본업이 있는 분들이다.

그러다보니 지역 활동을 위해 시간내기가 어려웠다.

회의뿐만이 아니라 지역행사나 지역 활동에 참여해야 하지만 그럴만한 충분한 인원이 없었다. 때문에 임원들이 일방적으로 희생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이 제일 힘든 것 같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이 활동을 지속하게 되는 연결고리는 무엇일까요?

대부분 아이들을 좋아하는 선생님들이라 아이들이 매개가 되는 것 같다. 프로그램이 좋다보니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리고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 활동을 해오다 보니 쉽게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간의 활동경험을 토대로 단체가 변화되어야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활동가들을 위한 쉼 프로그램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활동이든 재미가 없으면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그리고 활동도 놀면서 해야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사실 활동을 하다보면 노는 지점이 잘 안 된다. 일에 치이고 억매이면서 쉼 없이 활동한다. 그러다보면 지치고 괴롭고 권태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활동이 즐겁고 지속가능하기 위해서활동가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한 장소에 앉아서 전지나 종이에 써서 붙이는 프로그램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웃음)

그냥 당일치기라도 가까운 곳으로 놀러가서 바람 쐬고 오는 그런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머리를 쉬는 것도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웃고, 좋은 것 보고, 맛있는 것 먹고 하는 활동자체가 활동가들끼리 친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친해지면 일도 더 잘되고 공유할 부분도 더 많아진다. 한 번 회의 자리에서 보는 것보다 사적으로 놀다 친해지는 게 훨씬 더 공감대가 형성되고 일을 하는데 효과적이라 생각한다.

활동가를 위한 반나절 투어, 인사동 투어, 창덕궁 투어 등 이런 당일치기 프로그램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로 친해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활동에 대한 선입견도 생기고 정보공유가 잘 안 되서 지역행사가 겹치는 등의 일이 발생한다.

친해질 기회가 있었다면 근황을 통해 행사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오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사실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 전까지 시민협력플랫폼이 도봉구에 있는지도 몰랐다. 물론 이런 정보를 접하지 못한 나의 문제도 있겠지만 플랫폼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은 것 같다. 플랫폼이 좀 더 많은 단체를 아우를 수 있게 구석구석 잘 홍보가 됐으면 한다. 몰라서 참석 못했다는 것은 자칫 초대받지 못한 느낌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35


도봉문화재단

(김용현 상임이사)


 

△ 도봉문화재단 입구

 

오늘은 창동역 부근에 위치한 도봉문화재단 사무실을 찾았다.

10분 정도 늦은 터라 열심히 달려서 도봉문화재단 건물로 향했다.

도봉문화재단 사무실을 노크하니, 김용현 상임이사님이 반기신다.

상임이사님과는 전부터 안면이 있는 터라 반가운 안부를 나누고 인터뷰로 들어갔다.

 

 

△ 도봉문화재단 김용현 상임이사

 

지역 활동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도봉은 내가 자라고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라 애착이 크다. 공부하느라 도봉을 떠났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돌아왔다. 우리 아이가 이 동네에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도봉에 대한 또 다른 관심과 애착이 생겼다. 미술과 음악을 전공한 부부지역과 만나며 혁신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지역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고, 협치를 하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봤다. 2017년부터는 도봉문화재단을 맡으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김용현 상임이사실 입구

 

도봉문화재단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도봉문화재단은 2017년에 출범해서 벌써 2년 반이 됐다. 그동안 도봉구의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노력해왔다. 자치구에서 예산을 출연해 만든 기관이고, 예술가, 기획자, 행정가, 시민 등과 협업하며 지역의 문화진흥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는 문화예술 전문 주체이다.

당장은 축제나 공연과 같은 행사, 김수영문학관, 도봉구민청, 구립도서관 등 문화공간 운영과 같은 활동이 눈에 띄겠지만, 실제로는 도봉의 특성에 맞는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중·장기적으로 방향을 모색하여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큰 축이 있다. 자치구 예산 외에도 공모사업을 통해 국·시비 등의 외부재원을 확보하여 지역에 필요한 정책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것도 자치구 문화재단이 가진 특징이다.

 

 

문화재단 출범 후 지역문화에 변화가 있다고 보시나요?

재단이 출범하면서 지역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시대적 흐름과 맞았다고 본다. 2014년 지역문화진흥법이 제정 된 이후, 지역문화 정책과 관련 사업이 확대됐다. 서울 만해도 25개 중 10여개였던 자치구 문화재단이 2년 사이 20개가 되었다. 지역의 인적 물적 데이터가 교환되고, 동반 성장이 가능해지고 있다.

주민은 지역 안에 머물지만, 문화예술 활동은 여러 지역을 교차할 수 있다. 그래서 지역별 개별화된 특성을 찾아야 문화예술 생태계를 확장하며 더 많은 예술인, 시민과 함께할 수 있다. 지역 문화재단의 주요 과제.

 

△ 도봉문화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가지 프로그램과 행사

 

도봉문화재단의 역할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재단 슬로건이 내게 힘이 되는 문화, 함께 만드는 문화도시 도봉이다.

실제로 문화예술의 힘기존의 방법에 질의하고,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나. 그 힘을 기르는 문화, 그것을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재단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재단에서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지역의 개별화된 특성을 발굴하고 새롭게 시도하고 변화하는 동력을 계속 찾아야 할 것이다.

 

* 더 많은 정보가 보고 싶다면?

클릭하여 도봉문화재단 홈페이지로 이동! http://www.dbfac.or.kr/front/main.do

 

 

개인의 비전이나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초등학교 때 운동을 했고, 다쳐서 운동을 못하게 됐을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성장단계를 넘어서거나 힘든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볼 때 그림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미술과 디자인을 전공하고 그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지만 미술치료로 전향하게 된 것은 어머니가 갑자기 파킨슨병에 걸리면서이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병환을 계기로 미술치료를 하면서, 예술은 이념이나 사상 그리고 나뉜 정서들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고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174월 도봉문화재단이 출범하면서 문화를 통해 이런 치유의 역할까지도 염두하고 시작했다. 문화복지와 향유를 넘어서 문화예술을 통한 치유와 통합이 내가 가진 비전이자 키워드이다.

 

△ 도봉문화재단 사무실 내부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단기간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힘들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도 좀 더 길게 장기적인 움직임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업을 추진하기보다는 기존 시민들이 하고 있는 다양한 역할에 힘을 실어주거나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34

 


서울시 동북권 NPO 지원센터

(박영주 센터장)


 

△ 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 입구

 

갑자기 쌀쌀해진 가을날

창동역 근처에 위치한 서울시 동북권 NPO 지원센터를 향했다.

회의장소로 종종 이곳을 찾았지만 물리적인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한 개인을 만나러 가는 느낌은 왠지 다르다.

한 개인의 활동이야기와 개인사를 듣는 다는 것은 늘 설렘을 동반한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활동가 한 분이 인사를 건넨다.

곧 센터장님이 나오신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회의실로 이동했다.

 

 

지역활동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1992년부터 2000년까지 상근자로 8년을 활동했다. 중앙단위에서 8년을 쉼 없이 활동하다 보니 많이 지쳐서 아이를 핑계로 쉬기로 했다. 아이가 4살 때 시댁에 왔다가 집 앞이 공원이라는 이유로 성북구 삼선교에 살게 되었다. 이때부터 지역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10년을 아이와 함께 지역에서 재미나게 놀았다. 10년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또래 부모들과 품앗이교육을 하고 아르바이트로 인구총주택조사와 사업체조사 등을 했는데 이는 마을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이후 마을활동의 자양분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지역의 교육운동 단체에 회원으로 들어가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전국녹색소비자연대라는 시민단체에 들어갔지만 그만두고 지역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2013부터 서울시마을종합지원센터 마을상담원(마을지원활동가), 성북구 마을활동지원가, 컨설턴트 등 하였고 2015 성북구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지원단에서 마을총괄팀장을 맡아 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동북권에 NPO지원센터가 설립 가능한지에 대한 시범사업에 합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 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 박영주 센터장

 

 

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서울시 단위의 광역NPO지원센터는 있지만, 권역별 NPO지원센터로는 동북권이 처음 생긴 것이다.

지역특성으로 보면 큰 시민단체보다는 작은 풀뿌리시민단체가 많다. 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이하센터”)는 5개의 자치구 강북, 노원, 도봉, 성북, 중랑의 비영리단체, 조직과 활동가를 지원한다.

우리 센터의 슬로건이 공익활동가들의 놀이터이다. 센터를 위한 센터가 아니라 공익활동가들이 언제든 와서 쉬고 의논하고 주체적으로 활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5개 자치구가 함께 활동을 하려다 보니 무엇으로 연결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무엇을 중심으로 함께 사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니 의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활권 의제로 구 단위의 행정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의제와 주체가 발굴되면 워킹그룹을 구성하여 역량강화, 공론화, 실천 등까지 공익활동가들이 주체적으로 활동을 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의제가 있더라도 주체가 없으면 실행하기가 어렵다. 센터는 의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지원할 수 있지만 실천 활동까지 가기가 힘들다. 실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 센터이다.

 

의제워킹그룹젠더, 50플러스, 느린 학습자, 교육, 거버넌스, 다문화, 환경, 공유자산화 등이 8개가 활동 중이다. 활발히 활성화되는 워킹그룹도 있고 그렇지 않은 워킹그룹도 있다. 가장 오래된 워킹그룹이 젠더, 50플러스, 느린 학습자이다. 각각의 워킹그룹은 구성, 시너지효과, 발전단계, 목표 등이 다르다.

 

젠더 워킹그룹은 단체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다. 개별적으로 활동하였던 단체, 모임이 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가 생기면서 센터를 중심으로 모여 각 구의 여성정책을 비교하고 정책을 바꿔나가는 작업을 공동실천하고, 역량교육에 대한 정보도 공유하면서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다. 이런 것을 기반으로 서울시 전반의 25개 자치구로 퍼져나갔다. 이런 활동이 풀뿌리운동과 어떻게 맞닿아서 가야 할지는 고민이다. 예를 들어, 작년 미투운동 때 각 구의 단체들은 미투운동에 서명하고 활동을 하였지만 워킹그룹의 이름으로 하지 않았다. 풀뿌리운동까지 연결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과제이기도 하다.

워킹그룹의 발전단계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공동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느린 학습자 워킹그룹의 경우 대상이 보통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IQ70-85사이에 분포된 사람들이다. 느린학습자는 사회구성원으로 당연히 필요한 대우와 관심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애, 비장애로 사람을 나누고, 여기에 경증과 중증으로 나누어 차등 지원을 하는 현실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느린학습자의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 가족의 문제로 한정되어 사회적 주변화가 만연하다.

2018<동북권 느린학습자 생애주기별 어려움에 대한 기초 연구>에서 밝혔듯이 학령기 또래관계, 교육소외, 치료 및 사교육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인식부족으로 인한 가족내 갈등, 성인기 관계 고립과 사회 진입 실패 등 생애전반에 걸쳐 다양한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지원체계가 절실히 필요하다. 센터는 의제가 사회 이슈화될 수 있도록 역량강화, 공론장을 통해 확장해 나가는데 지원하고 있다.

이달 말(10/30)서울시의원회관에서 느린학습자정책토론회가 열릴 예정이다. 서울시에 조례제정 정책을 제안하려고 한다. 이 워킹그룹은 단체설립을 위해 인큐베이팅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센터의 지원역할이 컸다고 본다. 이것이 구의 의제로만 남아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권역을 넘어서 광역의 의제로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권역에서 벌어지는 사각지대의 의제를 이슈화하고 협력시킴으로써 단체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50플러스재단도 있고 구에 따라 지원센터 있고 캠퍼스도 있다.

우리가 50플러스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50대의 지역 활동가들이 다음 단계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다른 하나는 지역에 센터들이 많이 설립됐지만 탑다운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대부분 문화센터나 평생학습관처럼 많은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②50플러스는 은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지역에서 50을 맞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네트워킹이 중요하다고 본다. 50대들이 어떤 정책을 제안할지 어떤 일을 함께할지 이런 부분을 네트워킹을 통해서 논의하고 센터를 통해 각 구에 제안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에 창동에 50플러스 북부캠퍼스가 생긴다. 그 전에 구마다 인프라를 구축해서 캠퍼스를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성북50플러스센터와 커뮤니티가 공론장을 만들려고 했다. 작은 커뮤니티가 구센터와 함께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것보다 동북권 NPO 지원센터가 함께 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가 높다.(대우가 달라진다는 것?) 씨앗커뮤니티팀 오소리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 그리고 성북50플러스센터가 공동주최하여 공론장을 성공리 끝마쳤다.

 

* '50플러스 당사자 공론장' 행사가 궁금하시다면~ 

링크 클릭! : https://blog.naver.com/dbnpo/221636398508

 

이런 방식으로 각 구의 커뮤니티에서 인프라를 구축하면 저희 동북권 NPO지원센터에서 뒷받침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구센터 와 파트너십 관계형성에 도움이 되려 한다. 5개의 자치구에서 50플러스 인프라가 구축됐으면 좋겠다. 센터가 센터 중심으로 가지 않도록 지역의 커뮤니티는 능동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센터의 이용자가 아니라 50대들이 원하는 것을 센터에 제안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 라운지

 

워킹그룹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각각의 워킹그룹마다 다르다.

네트워킹이 형성된 후 실천행동이 목표일 수도 있고 조직을 만드는 것이 목표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인프라를 구축해서 활동하는 게 목표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느린 학습자의 경우 단체가 만들어지면 워킹그룹으로서의 목표는 다했다고 본다. 그다음 단계는 다른 지원를 마련하거나 연결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관심만 가지고 워킹그룹을 움직일 수는 없다. 자기일과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젠더는 단체에서 그러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워킹그룹에서도 시너지효과를 발휘한다. 별다른 이질감이 없다. 느린 학습자도 마찬가지. 문제인식의 주체가 부모당사자이고 관련 기관이고 시민단체이기 때문에 자기일의 연장이다. 때문에 워킹그룹이 가능하다고 본다또한, 50플러스는 자신에 관한 이야기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능하다.

 

자치구의 워킹그룹을 모으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게 조직하시나요?

처음 센터를 시작할 때 공모사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센터가 설립된 시점이 하반기라 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워서 안 했다.

하지만 공모사업이 마중물사업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올해 예산에서 공모사업이 삭제되어서 소모임지원을 네트워크에서 풀어 내었는데 워킹그룹을 만드는 기반이 되기도 하고 센터를 홍보하는 기능을 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2020년에는 공모사업을 할 예정이다.

 

워킹그룹의 경우는 PM제도를 둬서 프로젝트 매니저가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주도적으로 워킹그룹을 이끌어 가도록 하였다. 이것을 공모사업으로 했을 경우 활동비등을 줄 수 없어 어려웠을 것이다.

지역에 많은 의제사업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의제들을 관통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의제가 무엇일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동 단위를 넘어서고 구 단위를 넘어서는 의제가 있다면 저희와 함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현재 다양한 의제발굴을 위해 의제실험을 하고 있다. 5개 자치구의 활동가들이 모여서 워킹그룹을 하고 있는데, 의제실험은 한구에서 의제가 발생했다 해도 확장성이 있으면 진행을 하고 있다. 실험실 워킹그룹이 잘 성장했으면 한다. 하지만 성장을 못 해도 어쩔 수 없다. 좋은 의제가 있어도 활동할 사람이 없으면 진행할 수가 없다. 워킹그룹은 네트워크를 넘어 활동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내는 그룹이다. 그 때문에 자발적인 주체가 돼서 활동하지 않으면 성장이 어렵다.

 

* 서울시동북권NPO지원센터 워킹그룹이 궁금하시다면~

링크 클릭! :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bnpo&logNo=221531804656&parentCategoryNo=1&categoryNo=&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추가적으로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청년들과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가 고민이다.

구마다 청년단체도 많고 청년으로 일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가 독자적으로 청년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는 없지만 연대는 할 수 있다.

있는 것들을 굳이 개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없는 것을 개발하고 민에서 할 수 없던 것을 지원하면 된다.

시민단체는 많은데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는 그리 많지 않다.

마을사업이나 사경센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겹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된다.

그것은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는 것이다.

느린 학습자를 발굴했을 때 그 의제와 관련해서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든 교육자든 모인 사람들을 역량 강화해서 활동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의제를 발굴하면 거기에 늘 사람이 있다.

결국, 새로운 사람들도 의제를 중심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주변에 많은 대학이 있다. 그러나 대학은 지역과 함께하지 않는 지역의 섬처럼 존재한다.

예전에는 학생운동이든 지역운동이든 시민운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생들은 그러한 경험을 할 수 없는 구조다. 학생들이 시민사회에 남든 안 남든 다양한 시민사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서비스러닝을 통해 학생들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도 고민이다. 대학에서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지역에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지역을 알리고 지역에서 이루고자 하는 꿈을 보여주고 싶다.

 

△ 회의실에서 인터뷰 중인 박영주 센터장

 

활동 중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예전에는 지쳐가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노조 활동했을 때 소진되는 상황이었다. 재충전할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현실이 못돼서 많이 힘들었다.

현재에도 활동가들은 소진되고 있다. 활동가들이 지속가능한 활동,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는 논의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NPO지원센터는 중간지원조직이다. 비영리단체나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보조금사업장이다보니 무언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그래서 현장의 변화를 빠르게 피드백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지역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충족시키지는 못하는 경우가 있다. 센터가 설립되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 시민력 강화를 위해 동북권시민사회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권역별 NPO로서는 처음 시도되고 시작하다 보니 많은 관심과 시선을 받고 있다. 잘해야 한다 부담감이 있다.

 

△ 라운지 안쪽에 위치한 센터 사무국의 모습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사람이다. 사람에게 실망도 하지만 사람에 의해 힘도 얻고 희망을 품는다. 사람이 희망이기 때문에 이 활동을 계속한다.

사람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 그 결정을 잘했다.’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힘을 얻는다. 사람이 나의 원동력이다.

 

그간의 활동경험을 토대로 단체가 변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우리 중간지원조직도 그 역할을 다했을 땐 없어질 것이다.

단체도 마찬가지다. 필요에 의해서 단체가 만들어지는 생성기가 있고 그 다음엔 번성기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쇠퇴기가 온다. 그다음엔 필요 없는 시기가 온다.

단체라면 활동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 목적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지 아니면 영향력 없이 자기들끼리 자치활동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냉철하게 조직을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한다.

생명을 다한 조직이면 과감하게 문을 닫아야 한다.

만일 변할 수 있는 조직이면 시대변화에 맞게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변화해야 한다. 우리 세대의 운동방식과 지금 세대의 운동방식은 다르다. 옛날 방식을 고집하면 안 된다. 시대 흐름에 맞게 단체도 조직도 변해야 한다. 조직이 늙지 않았으면 한다. 시대를 반영했으면 한다.

지역 안에 매몰되지 말고 세계의 정세도 읽으며 지역사회도 한국사회도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면서 자신의 활동을 정립했으면 한다.

지역 안에 있는 나보다 세계시민 속에 나를 그렸으면 한다. 한국의 정세 속에서 자신의 활동은 어떻게 가야 할지 정립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 입구 오른쪽에 위치한 교육장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시민협력플랫폼이 만들어진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 목표에 부합한 형태로 무언가가 남았으면 한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 조직이라면 이슈가 있을 때 느슨한 형태라도 모일 수 있게 만들고 플랫폼의 DB라면 플랫폼의 활동경험이 그냥 흘러가지 않게 아카이브해서 후배활동가들이 볼 수 있게 만들었으면 한다.

목표한 만큼 지역에 흔적이 남았으면 한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33


수제Bee어울터

(한경애 대표/정희경 활동가)


 

오후시간

방학3동 신동아프라자 1층에 위치한

'수제Bee 어울터'를 찾았다.

상가건물이지만 조용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정문에서 상가 안쪽으로 쭉 걸어가면

수제Bee 어울터의 공간이 있다.

 

어울터 문을 여니

안쪽에서 뭔가에 몰입하고 계시던

정희경 선생님께서 나를 반기신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한경애 선생님은 조금 늦는다고 하셨어요.”

정희경 선생님은 안면이 있는 분이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만났기에 근황을 물으며 수다를 떨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한경애 선생님께서 도착하셨다.

우리는 탁자에 마주하고 앉았다.

 

수제Bee & 어울터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한경애

수제Bee작가들이 활동하는 단체명이다. 그리고 어울터방학3동 주민센터수제Bee프리마켓 운영진 그리고 사천목씨 종친회가 만든 복합커뮤니티 공간이다.

그간 수공예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작품을 선보일 공간이 없었다. 그런데 마침 공유공간인 수제Bee & 어울터(이하 수제Bee)가 생겨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해 줬다. 그래서 현재 이 공간은 작품을 전시하고 수공예를 배우려는 주민들의 배움터로 활용되고 있다.

△ 수공예 수업 안내

 

지역 활동하게 된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 수제Bee 한경애 대표

 한경애

나는 방학 극동아파트의 주민이고 햇살문화원 창립멤버이다.

초기 햇살문화원을 운영했고 회원을 모집하고 마을주민들을 모아 지역 활동을 시작했다. 물론 그전엔 전업주부였다. 그러나 햇살문화원 활동을 계기로 여러 마을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현재는 서양자수와 퀼트를 매개로 활동하고 있다. 20년간 바느질을 하고 있다. 취미로 배운 것이 어느덧 직업이 됐고 나름대로 뿌듯한 마음이 크다.

마을활동을 하면서 지역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는 선생님들을 알게 됐다.

사실 지역에서 손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설자리는 그간 거의 없었다.

물론 강사활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수제Bee가 만들어진 것은 우연히 밥을 먹다가 우리끼리 작은 모임을 만들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에서 시작됐다. 당시 마을공동체과에서 마을활동에 예산이 지원된다고 해서 지원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활동이 시작됐다.

도봉구에선 처음으로 핸드메이드 프리마켓이 열렸다. 수제Bee 프리마켓을 정기적으로 몇 년 진행하다보니 타 지역에서 탐방도 오고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하기도 했다. 한 번은 수제Bee 프리마켓 명칭이 재미있다고 이름을 빌려달라고 해서 거절했다. 그리고 바로 운영진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이름특허등록을 했다.(웃음)

 

△ 수제Bee어울터 정희경 활동가

정희경

이 지역에서 학원 강사로 활동을 오래 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고 이러한 부분을 충족해 줄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던 중 2011년 도봉구청에서 자기주도학습상담사 양성교육이 있어서 신청하게 되었다.

300여명의 신청자 중에 60명의 교육생이 발탁되어 6개월간의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마치고 몇 몇 의지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더 심화된 수업을 받으며 스터디를 했다.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상담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니 비로소 아이들에게 강의를 할 수가 있게 되었다.

처음엔 무료봉사로 수업을 시작하고 방학때는 구청에서 자기주도학습 캠프도 진행하였다. 이렇게 3년쯤 지나니 구청에서 선생님들의 역량을 보고 학교수업과 센터수업을 의뢰했다.

수업을 통해 지역의 아이들을 만나보니 저소득층 아이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고 교육복지담당 선생님들과 함께 활발하게 지역에서 교육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손으로 만드는 수공예를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여기저기 문화센터를 다니며, 여러가지 수공예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때 마침 방학 극동아파트에 햇살문화원이 생기면서 그곳에 계신 선생님들로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수공예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4-5년 정도 햇살문화원을 다니다보니 선생님들의 일을 돕게 됐고 자연스럽게 이곳에 발을 담게 됐다. 이렇게 두 가지 활동을 지역에서 시작하게 됐다.

 

* 햇살문화원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

링크 클릭! https://dbplatform.tistory.com/126?category=741713 

 

수제Bee 프리마켓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되나요?

한경애

밴드에 500명 정도 있다.

도봉지역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셀러, 강사, 취미생활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핸드메이드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다.

수제Bee에는 거의 모든 분야의 수공예가 다 들어와 있다. 그리고 이제는 활동이 안정화되면서 학교나 기관에서 수업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그러면 수제Bee에서 강사를 파견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제Bee어울터 밴드 가입을 원하신다면 ~

링크 클릭해서 밴드 가입하기!  https://band.us/band/69527088 

 

 

수제Bee 프리마켓의 운영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한경애

수제Bee 운영진6이고 참여작가, 셀러, 강사 등의 역할을 겸한다.

수제Bee 프리마켓2015년부터 현재까지 57 정도 열었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열린다.

관내에 행사나 축제에 초대되면 작가들을 모아서 참여하며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어울터의 경우 2018년 작년에 만들어졌다.

이 공간은 방학동 사천목씨종친회의 건물이다. 사천목씨종친회에서 이 공간을 주민들과 함께 나누고자 방학3동 주민센터에 의뢰를 했다. 그리고 방학3동 주민센터에서 우리(수제Bee)에게 어울터 공간운영을 맡겼다. 이 공간을 통해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다.

주민들을 위해 매월꼼지락데이를 운영하고 있다. 꼼지락데이는 재료비만 받고 저렴하게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3-4개정도의 프로그램이 매월 진행된다.

 

 

정희경 선생님이 활동하시는 자기주도학습 상담사 분들은 몇 분이나 되나요?

정희경

12명 정도 된다. 처음 구청에서 활동할 당시 팀명은 창문 두드림 봉사단이었다. 지금은 다른 팀과 합쳐서 마을학교 꿈나누리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꿈나누리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꿈나누리센터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정희경

진로코칭, 자기주도학습코칭 등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신의 꿈과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에 우리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학습에서 학은 배울 학()이고, 은 익힐 습()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배우기만 하지 습이 되지 않는다. 학원을 몇 개씩 다니고 많이 배워도 습이 되어있지 않으니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저소득층 아이들은 학원조차도 다니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신경 써서 알려주고 있다.

 

수제Bee 프리마켓의 향후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정희경

협동조합을 만들어볼까 했었는데 아직 준비가 안 돼서 시기를 미루기로 했다. 현재는 도봉지역에서 작가들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시단위의 프리마켓을 운영해보고 싶다.

 

 

한경애

현재 서울시나 구의 예산을 받아 운영되는 마켓들이 많이 생겼다.

수제Bee는 주민들의 모임이자 주민들의 활동이다. 때문에 예산이 지원되는 행사나 축제와는 다르게 소박하다. 또 주민들이 운영하는 곳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 그래서 특히 올 해는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았다.

방학3동은 역사적인 곳이 꽤 있다. 외지에서 탐방을 오는 코스가 있다. 탐방코스의 역사적인 부분과 연계해서 프로그램 매뉴얼을 만들려고 한다. 예를 들면 전형필 가옥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을 수공예 작품으로 표현해보는 수제Bee만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정립하려한다.

 

활동하시면서 힘든 부분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정희경

저희는 지역주민들이 작가이고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수제Bee 프리마켓을 운영해왔다. 수제Bee 프리마켓이 정착될 즈음 관에서 주도하는 프리마켓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작가들이 참가비도 없고 작품이 잘 팔리는 관주도의 프리마켓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프리마켓 일정이 겹칠 경우 작가들이 관이 주도하는 프리마켓에 참여하고 싶은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타격을 입는다. 참여하는 작가가 줄어들수록 운영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맘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인간관계가 어렵다. 활동에 대한 의미나 목적이 달라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쫓기는 것이 좀 힘들다. 한 가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여러 활동을 동시에 하다 보니 시간안배나 할애하는 것이 좀 어렵다.

 

수제Bee 프리마켓에는 몇 분들이 참여하나요?

한경애

발바닥 공원에서 했을 때는 40-50명 정도 참여했다.

야외에서 프리마켓을 진행하다보니 날씨의 영향을 받았다.

우천시에는 천막 등 안정장치가 필요하다.

현재는 방학3동 주민센터에서 공간을 개방해주셔서 주민센터 1층 로비에서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로비공간에 맞춰서 20-25팀 정도 참여하고 있다.

 

△ 방학3동 주민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제Bee프리마켓 (출처: 수제Bee어울터 밴드)

 

수제Bee 프리마켓에서 판매된 수익금은 본인이 가져가시나요?

한경애

수익금은 본인이 가져간다. 판매금액의 5%는 수제Bee에 기부해서 연말에 불우이웃을 돕는데 후원한다. 해마다 구청에서 열리는 기부행사에 참여하고 기부금을 마련해 전달하고 있다. 올 해부터 수제Bee 프리마켓 참가비에 기부금을 포함해서 함께 받는다. 전에는 참가비 오천 원에 판매금액 5% 기부금을 따로 받았다. 올 해부터 참가비 일만 원안에 기부금도 포함되어 있다.

 

그간의 활동경험을 토대로 단체가 변화되어야할 지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한경애

프리마켓을 통해 협업은 어려운 것 같다. 관과의 협업은 성과위주로 진행되다보니 어렵고 민과의 협업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실 협치, 협력은 어렵다. 그냥 내가 사는 마을이 마을활동가들에 의해서 필요한 뭔가가 마련되고 공동체들이 잘 형성된다면 만족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그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굳이 힘들게 협력하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마을활동을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 동네, 내 아파트, 우리 골목에서 부터 활동하면 된다.

뭔가를 추진하고 협력해야한다는 생각을 좀 내려놨으면 한다.

지치지 않게 자기의 자리에서 꾸준히 활동하다보면 어느 지점에서 서로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정희경

전에는 예산이 없어도 활동하는 게 즐거웠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은 예산이 쏟아지고 뭔가가 많이 생기면서 단체들이 급박하게 활성화됐다.

그러면서 부작용도 많이 생긴 것 같다. 초심을 잃은 것이다.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염려되는 상황을 목격하기도 한다.

이젠 모두가 누구를 위한 활동이고 무엇을 위한 활동인가를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부터 성찰을 해야 할 것 같다.(웃음)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한경애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여러 힘든 상황에도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의 보람과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손으로 작업하시는 분들이 수면 밑에 있다가 수면위로 올라오면서 뿌듯해하고 행복해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나도 병아리단계가 있었다. 지금은 이만큼 성장해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런데서 오는 행복감이 동력이 아닐까 한다.

정희경

전체적인 활동에서는 아이들이고 수제Bee 활동에서는 작가와 셀러 분들의 성장하는 모습이다. 특히 처음 프리마켓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점차 자신감을 갖고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볼 때 기쁘고 활동의 의미를 느낀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정희경

인터뷰를 통해 소개된 단체 분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면 좋겠다. 도봉지역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단체를 서로 확인하는 그런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32


도봉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두호균)


여러 번의 연락 끝에

어렵게 이사장님과 인터뷰를 잡았다.

어렵게 잡힌 인터뷰라 설레는 맘으로

사경센터 2층으로 올라갔다.

도봉시민 햇빛발전 사무실 앞에 서류로 가득한 빨간색 대차가 눈에 띈다.

사무실 앞에서 서성거리니 이사장님이 나오신다.

 

, 안녕하세요?”

아이고, 오경희 선생님을 여기서 뵙네요.”

두 분은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서로 안부를 물으며 반긴다.

 

얼핏 나를 쳐다보며 물으신다.

안녕하세요, 임선생님이시죠?”

, 맞습니다.”

 

우리는 이사장님께서 안내하시는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금 내린 따뜻한 커피와 함께 우리는 탁자에 마주 앉았다.

 

△ 도봉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두호균 이사장

 

도봉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에서 활동하게 된 배경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활동을 시작한 것은 어떤 큰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환경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보니 아는 지인께서 태양광발전소 사업이 앞으로 유망사업이고 관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으니 환경정책과의 사람을 만나서 태양광발전소 사업에 대해 상의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지인이 지속가능과 팀장을 소개시켜줬고 팀장님을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니 팀장님께서 태양광발전소에 관심이 많았다.

마침 해등나누미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 했지만 늘 종착점에 가면 재정적인 한계에 부딪쳐서 고민이 많았다. 그렇다면 관과 함께 협업을 해서 이 문제를 극복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다. 지금으로 말하면 민관협치의 시작이었다.

도봉구 관내에서 실시하는 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혼자서 교육부터 시작해 벤치마킹을 위한 현장답사까지 했다. 지역에서 태양광발전소 사업을 하는 곳은 대부분 환경단체이다. 노원, 군포, 수원, 성남의 환경단체는 사무국이 있어서 사무국과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이 사업을 한다. 하지만 도봉은 맨바닥에 헤딩하는 격이다. 이 분야에 아무도 경험이 없는 민간인들이었다. 우리는 자료를 준비하고 사업을 설계한 후 자금과 조합원 모집은 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다행히 구청장님도 이 사업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도움이 많이 됐다. 관과 미팅을 하면서 자주 이야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역할이 분담됐고 협업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해서 태양광발전소 1호기가 만들어졌다.

이는 주민의 자발성과 관의 무한한 지원 속에 이루어낸 결과였다.

 

△ 도봉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안내판

 

태양광발전소 1호기는 어디에 있나요?

도봉문화정보도서관에 있다. 201412에 만들어졌다.

2호기는 누원고등학교에 설치했고 3호기는 녹천역 청소행정과 자재창고에 있다. 4호기는 도봉보건소에 설치했다.

올 해 5호기를 설치하려고 추진 중이다.

1호기 하나당 19.8KW를 생산한다. 20KW를 넘지 않게 하는 이유는 20KW가 넘으면 안전요원을 배치해야한다. 그 비용을 지불해야하기 때문에 에너지 생산량을 20KW를 넘지 않게 한다.

 

태양광발전소에서 생산된 에너지는 어떻게 유통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태양광발전은 태양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재생산된 에너지를 전력시장에 판매한다. 1000KW단위를 1REC라고 한다. 현재 200여개의 REC를 보유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화제도(RPS)에 의해 대형 발전사들은 의무적으로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은 태양광발전소나 수력발전소나 풍력발전소 설치를 통해 총 발전량 중 일정량 이상의 신재생에너지전력을 공급해야한다. 아니면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자들에게 REC(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를 구입해서 대체해야한다.

우리는 한전에 REC를 팔아서 수익을 낸다. 에너지를 사고파는 일종의 무형의 거래로 보면 된다.

 

 

△ 도봉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이 입주해있는 도봉구마을사회적경제지원센터

말씀을 들어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부인이 많이 이해하고 도와주고 있다.

예전에 대기업 금융회사에서 근무했다. IMF를 겪으면서 중소기업으로 이적했다. 그곳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편법을 사용해야 하는 업무가 나와 맞지 않았다. 그게 많은 스트레스가 됐다. 그래서 수익이 적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이 잘 되면 사업을 하는 것이고 안 되면 그만 두면 되니까.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하면서 시간이 남을 때는 동대표 활동을 했다. 동대표를 해보니 함께 활동하는 분들이 타성에 젖어 있었다.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해등나누미 자원봉사단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주공3단지 아파트의 자생단체이다. 창주공 3단지에서 아파트 자생단체시범단지서울시 사업을 신청하면서 해등나누미 자원봉사단이 발족됐다. 현재는 아파트뿐만이 아니라 초안산 생태를 고민하는 해등나누미로 전환하는 중이다.

해등나누미는 마을공동체활성화 단체이다.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체험활동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지역 환경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활동 중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초창기 기반을 다지는 과정이 힘들었다. 구성원들의 생각과 방향성이 서로 틀리다보니 이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힘들었다.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당근과 채찍을 써가며 정착하게 됐다. 물론 여러 이유로 떠나신 분들도 있다.

현재 동대표와 입주자대표 회장을 겸하고 있다. 힘든 부분도 많지만 함께 하는 분들이 많이 도와주신다.

 

△ 두호균 이사장 인터뷰 모습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저희 회원들이다. 저를 도와주시는 회원 분들이다. 많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도와주시는 분들이 있다. 누군가는 활동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런 분들에 힘입어 활동하는 것 같다.

 

도봉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향후 계획이나 비전은 무엇인가요?

햇빛발전소를 통해서 에너지를 나누는 것이다. 현재는 규모가 작아서 수익이 없지만 규모가 커지면 수익도 커진다. 그렇게 되면 지역의 에너지 빈곤층이나 여러 다양한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위해 활동하려고 한다.

저희 도봉시민햇빛발전소가 재생에너지를 홍보하는 하나의 축으로 남고 싶다. 앞으로 교육을 위한 인적네트워크 구성다양한 환경단체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진정한 환경단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

또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 재정적으로도 탄탄한 구조를 마련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최소한 100KW 발전소를 가질 때까지는 희생과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만에 하나 이 일을 그만 하게 된다면, 사회적협동조합의 청산은 복잡하지 않다. 빚을 청산하고 남은 자산의 경우 유사한 목적의 사회적협동조합, 비영리법인이나 공익법인, 국고 등으로 귀속된다. 만일 조합원이 활동을 하지말자고 하면 햇빛발전소를 도봉구청에 기부하고 청산절차를 밟으면 된다. 매우 깔끔한 것 같다.(웃음)

궁극적인 목적은 에너지를 통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환경단체가 되려고 한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동네의 일은 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소그룹형태로 모이고 소그룹의 장들은 따로 심도 있고 심화된 마을 고민을 했으면 한다.

마을에서 보이지 않게 활동하는 분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플랫폼이 있는 것은 참 좋다. 지역 활동에 구심점이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끌어들이기보다 함께 생각을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플랫폼에 참여하는 방법이면 좋겠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31

 


소풍가는 길

(정희영 대표)


 

 

△ 반디극장 입구

 

어제 미리 반디극장 주변을 검색했다.

캡쳐해둔 지도를 보고 도봉로를 따라 반디극장을 향했다.

내 기억으로 이 대로변을 종종 지나다녔는데

반디극장이 이곳에 위치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한 번도 못 봤다는^^)

도로를 따라 쭈욱 가다보니 2층에 반디극장 간판이 보인다.

극장??

. 뭔가 올드하면서 친근감이 화악 든다.

 

극장 계단에서 인터뷰에 필요한 스냅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있다.

김은희 선생님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우리는 함께 반디극장으로 입장했다.

 

은희쌤과 희영쌤은 이미 안면이 있었다.

서로 안부도 묻고 웃는 모습에 친밀감이 묻어난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탁자에 둘러앉았다.

 

 

반디극장은 언제 오픈됐나요?

20175월에 오픈했고 2년 조금 넘었다.

마을활동을 시작한지는 좀 더 오래됐다.

공간이름은 반디극장이고 활동단체명은 창작집단 소풍가는 길이다.

창작집단 소풍가는 길은 2015년부터 마을활동을 시작했다.

도봉산에서 청년들의 색깔 찾아주기 프로젝트의 한 꼭지로 내 인생에 보물찾기로 처음 시작했다.

그 후 반딧불이 낭독극장을 2년 가까이 했다. 마을카페, 주민센터 등을 돌아다니면서 하다 보니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고 20175월에 반디극장을 오픈하게 됐다.

 

△ 소풍가는길 정희영 대표

 

반디극장은 어떻게 운영하고 계신가요?

이 공간은 자비로 운영된다. 대관 수업이 있지만 횟수가 많지 않아 큰 도움은 안 된다.

다행히 월세가 다른 대로변에 비해 저렴하다. 최근 건물 주인이 월세를 올려달라고 해서 고민이다.(웃음)

극장은 공동대표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반디극장은 공연장, 연습장, 교육프로그램 진행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 중이다.

 

△ 반디극장 이용 안내

 

창작집단 소풍가는 길이 결성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우연이다. 대학로 극단에서 활동 중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도봉구민회관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극단원 한 명이 버스에서 내렸다. 한 동네에서 산다는 점이 너무 반가웠고, 그 뒤로 도봉지역에서 함께 뭔가를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두 명이 의기투합하여 처음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그때가 2014년이다.

 

현재 활동하는 단원은 몇 분정도 되나요?

8 정도 된다. 상근 시스템을 갖출 수 없는 구조이고 대표도 월급을 가져갈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단원들에게 월급은 줄 수 없다. 그래서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배역을 맡기도 하고 스텝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공동체적 구조라고 생각하면 된다.

연령대는 20-30대 정도이고 성비는 반반이다.

 

어떤 공연과 프로그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대학로의 공연과는 차별성을 두었다.

우선 극장의 문턱을 낮추는 공연부터 시작했다. 그것이 관객참여형 공연이다. 주요배역은 배우들이 맡지만 작은 배역들은 관객들에게 맡겼다.

관객 서너 명이 무대에 올라와서 함께 대본을 읽거나 시를 낭독하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공연테마는 관객이 참여하는 낭독극장 다른 하나는 배우들만 참여하는  장소특정형 공연이다.

장소특정형 공연은 간송옛집이나 함석헌 기념관에서 한다.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공연이다.

이 밖에도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으로 서울문화재단과 함께 지역주민을 만나 문화예술 교육을 한다. 올 해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인문학학당과 협업해서 진행했다. 상반기는 도봉초등학교에서 하반기는 북서울중학교에서 진행한다.

 

△ 소풍가는 길 활동 사진

 

앞으로의 활동방향이나 비전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마을활동을 꽤 했음에도 아직까지 저희 단체나 반디극장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 저희 창작집단과 반디극장이 많이 홍보가 돼서 저희 창작집단을 통해 나도 문화예술분야에서 무언가 재능을 발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많은 분들이 아시고 참여하셔서야 하는데 아직 홍보가 잘 안 돼서 아쉽다. 참여하시는 분만 참여하는 실정이다.

 

홍보 전략이나 홍보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예전에는 활성화가 안 되는 것이 홍보부족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입소문이 나야 활성화가 되는 것 같다. 현장에서의 체험을 지인에게 소개하는 입소문이 중요한 것 같다. SNS에 올리고 홍보포스터 뿌리고 하는 것은 , 이런 게 있네.’ 하고 그냥 지나친다. 홍보가 불특정다수에게 알리는 효과는 있겠지만 참여하는 원동력이 되지는 않다. 마을홍보는 많이 경험시키고 '한 번 더 데리고 와주세요'라고 부탁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마을은 좁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옆집사람을 동행시키는 방식이 훨씬 접근성이 좋은 것 같다.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처음 공간이 없었을 때, 공간 없는 설움(?)이다.

마을카페에 허락을 구하고 갔음에도 영업적으로 방해된다는 눈치(?)를 준다. 주민센터의 경우도 2시간을 대여했음에도 30분 전부터 정리하라는 시선을 준다. 그런 부분이 힘들었다. 그래서 마음먹고 뭔가를 하려면 우리만의 공간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공간을 마련했다.

초창기 회의공간이 없을 땐 찻값이 싼 맥도날드에서 회의했다.

사실 연습공간이 없어서 낭독극을 하게 된 이유도 있다. 낭독극은 카페에서도 어느 정도 연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작이 있는 연극은 사실 반디극장이 마련되면서 부터 조금씩 시작했다.

우리가 뜨내기 같이 보였는지 마을활동을 나름 열심히 해도 마을에서는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거의 외부사업을 따서 마을에서 활동을 했다.

올 해부터는 마을에서 활동 요청이 들어온다. 그래도 마을 활동한 것이 헛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반디극장 내부

 

힘듦에도 내가 활동을 지속 가능하게 한 동력은 무엇일까요?

연극하는 사람이다 보니 공연할 때의 즐거움이 가장 크다.

관객이 좋아해주시고 다음 공연은 언제 하냐며 관심을 주실 때 힘이 된다.

학부모교육에서 마음을 닫았던 분이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편안해 하실 때도 힘이 된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한 꼭지로 어슬렁반상회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도봉구 청년반장4년째 맡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의 다양한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청년들의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도 힘이 된다. 그리고 반디극장을 통해 청년들이 서로 공감하고 힘을 얻는 장소로 이용되는 것도 나에겐 의미 있고 활동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 반디극장에서 운영되고 있는 어슬렁반상회

 

어슬렁반상회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어슬렁반상회는 8명 정도의 청년이 모여서 6회차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청년들이 집밖으로 나와서 활동하게 하는 일상지원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과 별개로 청년들이 후속모임도 갖고 영화도 보고 맥주도 마시고 한다.

청년활동지원센터라고 하면 모두 청년수당으로만 생각하는데 그 안에 좋은 프로그램도 많이 있다.

어슬렁반상회는 일상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청년반장은 구마다 한 명씩 있어서 25개구에 청년반장이 있다.

청년반장은 각자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한다. 25개의 자치구 청년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프로그램을 찾아서 들으면 된다.

 

 

활동경험을 토대로 단체 간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우선 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었으면 한다. 그래야 그 단체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이해하고 파악이 될 것 같다.

연극 같은 경우 개별 활동은 편한데 같은 분야가 조인해서 뭔가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분야가 다른 경우 콜라보해서 할 수 있다면 시너지효과도 클 것 같다.

예컨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하는 예술인 파견지원사업은 예술가와 기업가가 매칭 돼서 서로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이다. 예술인은 돈이 없고 기업인은 콘텐츠가 없으니 함께 협업해서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하는 사업은 재단차원에서 기업과 예술인을 모집해 협업하는 시스템이 갖춰졌지만 마을은 아직 마을기업과 마을예술인을 매칭할 시스템이 없다.

플랫폼이 마을에 있는 기업리스트나 기업이 필요로 하는 분야 등을 조사해서 자료로 남긴다면 앞으로 이런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단체 간 연결고리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다. 플랫폼이 연결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로 교류하지 않으면 고인물이 된다. 창작도 마찬가지다. 타성에 젖어 자극을 받지 않으면 고인물화 되어간다. 외부부터 자극을 받기위해서는 서로 자주 봐야한다. 같은 분야가 아니더라도 서로 봄으로써 자극을 받고 변화지점을 찾게 되고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해 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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