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역 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지역 활동이라는 거창한 뜻은 없었습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 우연치 않게 청소년 관련 활동을 접하게 되며 사회복지 계열로 입문하게 되었고, 이후 길진 않지만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경험하며 그 과정 속에서 만난 대상자분들을 통해 사회복지 형식의 틀에 갇혀 있는 제 모습을 우연치 않게 보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XD 살면서 큰 틀에 구애 받으며 살아온 성향의 사람이 아니기에 조금은 자유롭고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을 찾고 또 찾게 되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 D

 

2. 도봉구에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가. 한결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사무국 과장으로 크게는 조합의 전반적인 업무를 작게는 도봉구 
    돌봄 SOS센터 서비스 제공기관 실무자 및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사업의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나.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에 대한 답변이 조금 부끄럽습니다. 저 같은 경우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이 아닌 지방, 대구·경북에서 보냈고, 도봉구에서는 이제 갓 첫돌을 지낸 신생아 정도(?) 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다. 다만 [한결 사회적협동조합]과 인연을 맺은 후, 송건 이사장님과 이철진 전무이사님, 지금은
    퇴사하셨지만, 김유정 센터장님을 비롯해 함께하는 안인숙 팀장 외 5명의 직원 분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으로 짧지만, 지역사회 내 다양한 인적자원은 물론 관에 도움을 받아 
    조합이 추구하는 「좋은 돌봄 사회서비스 공급은 물론 괜찮은 일자리 창출」에 조금이나마 
    이바지 할 수 있는 주춧돌을 쌓아올리고 있는 중이라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 주춧돌이 완성될 시점에 다시금 저를 찾아주신다면, 그때는 휘황찬란한 활동 내용을
    기재해드릴 수 있도록 약속드리는 [한결 사회적협동조합]의 이승민이 되어 있을 겁니다!

 

3. 단체가 생긴 배경, 과정에 대해 말해주세요.

가. 저희 [한결]의 출발점과 그 배경은 저소득 취약계층 고용(업그레이드 자활근로사업 수행) 복지서비스를 
    제공해온 도봉지역자활센터의 사회서비스팀으로 2011년부터 지역사회 내에서 기지개를 피기 시작
    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최저임금 인상, 4차 산업혁명 등이 사회적 핫이슈로 급부상하며 향후 취약계층 
    고용은 현재보다 더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지속될 전망을 보여 그 대안으로 지역에서 
    축적한 저소득 취약계층 고용 노하우를 사회서비스 제공에 강점을 지닌 사회적협동조합을 통해 
    확대 및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미와 목표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 위에 기재한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해드리자면, 음... 「지역사회 내 좋은 돌봄 사회서비스 공급은 
    물론 괜찮은 일자리 창출」, 사회적협동조합, 그리고 취약계층, 돌봄 사회서비스 등에 생소한 
    분들이라면 어려운 말일 수도 있지만 쉽게 풀어 설명을 해드린다면 「  」 내용만 기억을 
    해주셔도 감사할 것 같습니다.

 

4. 현재는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가. 현재 가장 열심히, 아니 그보다는 재미있게 즐기며 하고 있는 활동은 현재 임하고 있는 
    협동조합 [본연의 일] 입니다.
    [한결 사회적협동조합]이 설립 된지 이제 만 3년이 넘었습니다. 얼마 안 되었죠? 그렇기에
    [한결]이라는 브랜드와 설립 목적, 취지에 대해 지역사회 내 유관 기관은 물론 주민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사무국 내 업무는 
    물론 조합 내 지점인 한결재가돌봄센터에서 진행되는 사업 등이 대부분 지역사회 내 다양한 
    유관 기관들과 함께 연계, 협조 되어 이루어지는 일이라 조합 내 직원들, 구청 및 주민 센터 
    담당 주무관, 이용자에 따른 각 복지시설의 담당자, 마을공동체 및 주민자치위원회 등... 휴~ 
    많네요! 이것저것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 많이 배우며, 배운 내용을 학습, 학습한 내용을 경험으로 
    체득해 가고 있는 과정이 활동이라 할 수도 있겠네요 : D

 

5. 단체의 중심사업과 주요활동은 무엇인가요.

가. 앞서 여러 번 언급해드렸듯이, 저의 [한결]은 돌봄 사회서비스 공급을 통한 일자리 제공 및 고용
    안정과 사업 참여 종사자의 처우개선은 물론 권익증진, 기타 돌봄 사회서비스(조합원 및 직원에 
    대한 상담, 교육·훈련, 정보제공 등)에 중점을 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 내 다양한 활동에 참여·적극 임하고 있으며,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작은 성과들도 이루었습니다.
    그 예로 2018년 지역사회복지평가 ‘사회적 경제 활성화 분야’ 전국 최우수상 수상을 시작으로 
    2019년 지역 돌봄 연계 형 사업 ‘독거어르신에게 더 가까이, 돌봄 통합적으로’(사회서비스분야 
    사회적 경제 육성 지원사업) 컨소시엄 기관 참여 및 도봉구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사업 수탁, 
    2020년 2019년 진행된 2년차 컨소시엄 기관 참여 마지막으로 행정안전부에서 공고한 2021년 
    지역자산화 사업 28개소 중 한 곳으로 선정되는 결과까지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 설립된 지 만 3년, 조합 자체 그리고 지역사회 내에서 운이(?) 좋게도 나름대로의 의미 있는 
    성과를 조금은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나온 3년을 디딤돌 삼아, 앞으로 다가올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마주할 수 있는 한결 사회적협동조합의 일원이, 그리고 지역사회 내 다양한 
    분야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고자 합니다.

 

6. 활동 중에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가. 어려운 점이기 보다는 “갑자기 시간이 부족해졌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협동조합 내 
    사무국에는 저 혼자, 지점 한결재가돌봄센터에는 사업 분야별로 업무에 임하는 일꾼들이 
    있습니다. 행정 및 외부 업무를 홀로 수행하다 보니... 지점 동료들이 많은 힘이 되어주고, 
    협조도 해주나 가끔은 “.....”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숙명이라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주어진 시간,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 있네요!

나. 더불어 지자체에서 위·수탁 받아 운영하는 기관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재정의 어려움도 큽니다. 
   개인적으로는 금전적 욕심이 없으나, 함께 하는 일꾼, 종사자들의 복지나 처우개선 등을 하려면
   지속성을 가진 수익 사업이 뒷 받쳐줘야 하기에 이 부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역 사회 내에서 선한 의지만을 가지고는 녹록치 않기에 여러 방안으로 조언을 구하며, 조금씩 
   실행에 옮기려 준비 중입니다.

다. 시간은 제법 걸리겠지만, 많은 시간 함께하는 동료 일꾼들이 있기에 힘이 넘치네요 : D

 

7. 가장 의미 있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가. 처음 [한결 사회적협동조합]과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거짓말 조금 많이 보태어 모두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함께 하는 동료 일꾼은 물론 지역사회 내 유관기관 
    담당자 분들에게 많은 힘을 받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업무를 보며 현장에서 애로사항 등에 
    대해 많은 도움을 주는 동료 일꾼(김선영 팀장 외 5명), 더불어 민간에서 해결할 수 없는 
    공적 영역 분야에 적극적으로 임해주시는 관의 담당 주무관(도봉 1동 강소라, 도봉 2동 
    박선민)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 내 업무 협조를 통해 홀로 생각지 못한 방안들을 모색해주는
    타 기관 일꾼(도봉지역자활센터 이철진 실장 및 도봉서원종합사회복지관 조은정 팀장) 등 몇몇
    분들은 실명을 거론해드리며 이 시간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을 정도로 많은
    도움이 되며 함께 업무를 진행하는 모든 시간이 의미 있었다는 것을 강조해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자리가 아니면 언제 또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8. 도봉구시민협력네트워크(도시넷)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가. [한결]에 근무를 하며, 가끔 머리도 식힐 겸 한 두 번씩 게시 글들을 정독하며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바라는 점이라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도시넷]이 지역사회 내 일반인들까지 접할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써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서울특별시 도봉구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지역사회 내 많은 관심을 
   가지고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널리 이롭게 알리면 좋겠네요 : )

   마지막으로 인터뷰 기회를 주셔서 감사 인사드립니다.
   이상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도봉구민 [한결 사회적협동조합]의 일꾼 이승민이였습니다. 

■ 단체가 생기게 된 배경과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도담 공동육아어린이집을 다녔던 맴버들과 함께 도담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보통 공동육아 했던 친구들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면 대안학교을 가거나 마을 방과 후를 공동육아 방식의 하는 것이 코스인데 도담 공동육아어린이집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면서 학교 끝나고 모이는 방식으로 마을 방과후를 진행하려 하였으나 각기 사는 지역이 달라서 모이는 것이 힘들었고 자주 만나며 방과 후에 대해 논의를 하였는데 구성이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2020년에는 초등 방과 후를 만들어 보고자 모였으나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가지 않는 상황, 돌봄이 안되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그럼 우린 무엇을 해볼까 고민하던 차에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기후위기 관련된 실천 활동을 해보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구성원들을 보면 복지관 근무, 교육복지 민간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보니 커뮤니티 케어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고 방과 후를 중심으로 마을 돌봄 생태계 구성을 해보자라고 생각했는데 돌봄이 상호적이고 호혜적이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지구돌봄, 마을돌봄의 총괄하는 도담마을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서류제출에서 주무부처를 어디로 신청해야하는 지에 대한 어려움이 많았고 주거복지, 교육복지, 지구돌봄 마을돌봄을 총괄하는 것으로 도담마을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실천의 거점으로 안녕상점을 만들게 되었고 안녕상점은 안녕협동조합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실제로는 조직을 2개를 운영하게 된 것이고 도담 마을사회적 협동조합이 안녕협동조합을 인큐베이팅 했다. 

 


■ 단체의 중심사업과 지금 활동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저희의 사업목적은 마을돌봄과 지구돌봄인데 지금은 지구돌봄의 제로웨이스트 샵을 운영하고 있지만 마을돌봄으로 이음네트워크 사업을 도담 사회적협동조합이 대표단체로 전환하였다. 향후 안녕상점에 수익으로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의 마을돌봄, 인문학 여행학교를 진행하며 청소년들이 자기의 꿈과 진로를 찾아가는 방식에 지원하고 싶다. 
인근의 노원은 돌봄지원단에서 지역아동센터, 키움센터를 묶어서 민간에서 역량을 지원하고 성장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사업에 역할을 하고 싶다. 지금은 안녕상점 운영에 힘쓰고 있지만, 향후 운영진은 전체적인 네트워크사업에 참여하고 샵 운영은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역할을 나누고자한다. 


■ 활동 중에 어려운 점과 의미있는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제로웨이스트 샵은 보통 개인사업자로 보통 1인이 운영하는데 운영에 어려움이 많은거 같다. 외부물건을 납품받아 판매 하는것은 의미가 없고, 그래서 수익모델을 만드는게 쉽지는 않은거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후위기 실천에서 유의미있는, 사회적 경제에서 유의미있는 활동으로 도매사이트 제로웨이스트 샵들의 온라인쇼핑몰을 만들고 지역의 워커즈그룹의 제품의 판매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첫 번째 페브릭제품 만들고, 두 번째 기초생활수급자 할머니들의 수제 수세미 만들어 판매하여 쌈지돈 만드는 역할을 하고, 세 번째 주방세제, 주방비누, 샴푸, 린스 등을 청년인턴들과 함께 만드는 작업하고 있다. 
세가지 워커즈가 잘 운영되어 일자리가 되어야 하고, 그 안에서 기후위기 실천이 되야 하며, 사회적 경제영역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자 한다. 
준비과정이 길고 어려움이 아직도 많다. 제품 만드는 시설에 대한 어려움,   테스팅하는 작업등에 어려움은 있지만 쉬면서 천천히 하는 것, 일의 속도는 느리지만 좀 더 의미 있는 것 같다.
교육과 실천과 소비가 서클로 되는 순환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할꺼 같다. 우리끼리를 넘어서야 하는 전략을 고민하고 있고 순환적 구조를 가져야 한다. 라고 생각한다. 

■ 도봉시민넷에 바라는 점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10여년 전에 활발히 활동을 하다가 10년 행정에 들어가 활동하던 시기를 지나 다시 지역활동을 하려고 나온 지금 예전에 사람들과 지금 활동하는 사람들의 변화가 없는거 같다. 특히 주요 멤버들이 그대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세대의 순환이 안되고 있는거 같아 아쉽다. 우리끼리만 하고 있는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고 그래서 네트워크 확장을 함께 해보는 것, 순환적 구조를 만드는 것을 도봉시민넷에서 해주면 좋을거 같다. 
각각 팀의 막내들의 네트워크가 잘되어야 순환적 구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지역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청소년 대상으로 역사탐방 강사로 활동을 하였는데 주로 가는 곳이 교과서에 나오는 경주, 수원화성, 강화도, 공주, 부여 등이었다. 그러다 2011년 우연히 도봉뉴스를 보다가 도봉문화정보도서관에서 주관하는 청소년 가족 대상 ‘테마교과서여행’의 강사모집공고를 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지역의 역사자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17년부터는 창2동 마을계획단으로 지역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동북4구 도시재생협력지원센터에서 주최한 ‘공정여행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들이 마을 관광의 소재가 된다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던 것 같다.
이후 2명의 지역주민과 함께 마을 여행을 주제로 한 ‘아궁이’(아마도 궁금한 이야기의 줄임말) 사업으로 마을공동체 사업에도 선정이 되었고 도봉마을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도 입주할 수 있었다.

■ 현재 도봉구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기존 여행사와 달리 마을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지역의 이야기, 도시화 과정의 이야기 등의 이야기를 조사하며 기록 해보고자 하여 아카비스트 양성과정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역사회의 지역주민들의 이야기 주민들의 기억을 콘텐츠로 만드는 작업, 지역사회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사무공간은 도봉에 있지만 4개 지역(성북, 강북, 도봉, 노원)으로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고 동북 4구를 지역 기반으로 하는 마을 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 단체가 생기게 된 배경과 과정을 말씀해 주세요
2017년 도봉구에서 지원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으로 시작하게 되었고,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 사업을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 보자는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을 지원하고 되었고 운이 좋게 선정되어 그해 주식회사의 법인으로 창업을 하게 되었다. 
마을 여행이 가진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그해 12월에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이 되었다. 2019년도에도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마을 여행으로 일과 삶의 균형 실현, 지역사회 일자리 창출, 마을 자원 개발 등의 활동이 이어졌다.
그리고 2020년부터 시작한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일상이 멈추면서 기업도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 과정에도 마을 여행은 방역단계가 낮은 기간에 진행이 되면서 멈추지 않았으며 주민 대상의 기록활동가 과정도 만들어 진행하게 되었다.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위기도 주었지만 성장할 기회의 시간도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홀해 2021년 3월에는 사회적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 단체의 중심사업과 지금 활동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2020년까지만 해도 마을 여행, 관광이 주 목적사업이었는데 작년 하반기에 지역에 콘텐츠 발굴하고, 주민들의 기억을 되살려 콘텐츠화하고, 누구나 핸드폰으로 그 지역을 경험할 수 있는 스마트 관광을 주 목적사업으로 하고 있다.
지역 큐레이터 양성사업, 다양한 주민들과 함께 그분들의 기억, 이야기를 콘텐츠화 하는 그것을 주 목적사업으로 하고 있다.
도봉 아키비스트를 양성하여 기억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또 주민의 기억을 구입하여 콘텐츠로 만드는 작업등 공공에서 기록하지 못한 작업을 개발해보는 작업, 여행을 온 참가자들의 생각, 도시의 이야기를 글로 작성하여 보관하고 3년 후에 다시 소환하여 인터뷰 동영상 등 아카이빙 자료를 관광에 활용하는 작업을 사업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 현재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현재 코로나로 인해 잠시 중단이 되었지만 큐레이터 양성과정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마을실록청’이라고 하는 기업부설연구소를 운영하여 지역의 다양한 자산들과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곧 이 활동의 성과물로 마을기록 도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또 노원의 경춘선 숲길에 나무 QR코드 이름표 붙이기를 통해 나무에 대한 정보와 마을이야기를 담은 ‘포레스토리’ 사업을 연말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 활동 중에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타 자치구는 관광을 중점적으로 지원 육성한다. 
특히 마포구의 문화 관광홈페이지는 영화 ‘기생충’의 촬영지를 발 빠르게 관광코스로 만들고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도봉구의 문화관광 홈페이지와 대조적인 거 같다.
도봉구도 관광DMO를 만들어 다양한 관계기관의 협의를 통해 지역관광의 활성화를 실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은 어떤 것이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도봉지역엔 예전에 공장들이 많이 있었다. 그 공장들은 이전했고 그 자리는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었다. 그 기억을 여행 일정으로 삼았는데 이 내용을 보고 2018년에 샘표식품에서 연락이 왔었다. 샘표식품도 자체적으로 헤리티지의 자원을 수집하고 있었다고 한다. 호의적인 기업의 초대로 주민들과 함께 샘표식품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창동 공장 시절의 기업이 가진 아카이빙과 함께 주민들의 다양한 기억과 추억들이 오고 갔던 시간이었다. 

■ 도시 넷에 바라는 점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현재 도봉에서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하고 있고 이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하여 활동하고 싶다.
도봉의 구정을 감시와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없는 거 같다. 도봉시민넷 이런 역할을 하였으면 좋겠다.

■지역활동의 시작,청소년
아이가 다섯 살 때 도봉구에 이사와 아이가 17살이 되었는데 벌써 10년이 넘었다. 처음 도봉구 현재 살고 있는 도봉1동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서울에 이런 시골같은 느낌이 있는곳이 있다는 것에 놀랬고 한편으로는 어릴적 살던 나의 고향의 모습과도 매우 흡사해 정감이 가기도 한 그런 동네였다.동네를 익히기 위해 다니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청소년들이 있었다. 학생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들로 보였는데 학교를 파하고 학원에 가 있음직한 시간에 동네 빌라 근처나 인적이 드문 건물 앞에 앉아 그냥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던지 간간히 친구랑 얘기를 나눈다던지 하는 모습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어 보였다.
10여년 전이니 그 당시에는 휴대폰이 일반화 되지 못했던 때라 갈 곳이 없는 친구들은 놀 거리를 찾아 동네를 배회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 이사 온 나에게 동네를 배회(그 당시 내 눈에는 그리 보였다) 하고 다니는 청소년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그런 청소년들을 보면서 생각했었다. 내가 이 동네에서 저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이라도 해야겠다. 보탬이 된다면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다. 어쩌면 그때 만난 청소년들로 인해 나의 지역 활동의 계기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만났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바라보면서 가졌던 나의 결심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는 아이가 혁신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학부모회 활동을 시작했고 2015년 도봉구가 혁신교육지구가 되면서 학교를 넘어 지역에서 활동하는 자연스런 계기가 된 것 같다.

■지역에서 만난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 작은도서관
도봉에 이사 와서 내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사람이 아닌 공간이었다. ‘초록나라도서관’ 그 당시 이사 오기전 살던 곳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늘 가던 곳이 어린이 도서관이였는데 어린이 도서관은 고사하고 큰 도서관조차 주변에서는 찾기가 힘들었다. 내가 다니는 교회 젊은 엄마께 물으니 우리 교회 바로앞 2층에 어린이도서관이 있는데 책도 대여해 주고 책도 읽을 수 있는 편안한 곳인데 동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이다. 그 즉시 가 보였다. 정말 고개를 조금만 올려다보니 초록나라도서관 간판이 보이고 문이 열려 있었다. 지척에 두고도 몰랐던 것이다. 도서관에는 봉사하시는 분 한분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조그만 공간에 집처럼 편안해 보이고 어린 아이랑 오기에는 딱인 곳이었다. 봉사하시는 분이 얼마 되지 않으셨는지 나를 보고도 눈 인사외에는 아무런 제스처가 없으셔서 나도 대면대면 대충 둘러보고는 나왔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이 분은 나를 보자마자 도서관 곳곳을 설명해 주시고(사실 도서관이 그리 크지 않았다) 도서관이 생긴 배경부터 도서관에서 하는일,회원이 되면 받을 수 혜택 등 조목조목 신이 나서 설명을 해 주시는 거였다. 도서관에 열정이 참 남다른 분이시구나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이 바로 초록나라도서관을 시작하신 분이신 이순임관장이셨던 것이다.
초록나라도서관과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도봉에 이사와 사람과 인연을 맺기 전보다 먼저 인연을 맺었던 곳. 그래서 어떤 사람보다도 애틋하고 정이 가는곳. 아마도 초록나라도서관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 초록뜰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초록뜰의 탄생 배경
초록뜰의 전신은 초록나라도서관이다. 지역에서 10여년 동안 작은도서관을 운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작은도서관을 살리기 위해 십시일반으로 회비를 내 주시는 회원분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였고 10여간 한번도 보증금과 월세를 올려 받지 않으신 건물주의 배려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2017년 전세 2억으로 오리겠다는 거물주의 통보를 받았고 초록나라도서관은 위기에 봉착했다. 그 당시 3대 관장을 맡았던 김일오관장은 자리를 맡은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소식을 접하고 밤잠을 설쳤고 나는 잠시 구청 혁신교육지원센터에서 근무를 할 때라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줄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할지 참 고민스러운 지점이였다. 주민들이 스스로 도서관을 세우고 활동가들이 활동비도 없이 열정 하나만으로 유지되는 사립작은도서관에 2억이라는 금액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어쩌면 초록나라도서관이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도 있었다. 
활동가들이 힘을 잃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힘을 보탤수 있는 방법은 초록나라도서관이 도서관으로써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초록이 어려움에 봉착해 있을 때 박원순 시장님이 도서관에 오시는 기회가 생겼고 도서관에 오셨다 가신 시장님께서 초록나라도서관의 어려움을 들으시고는 지역의 이런 도서관은 계속 유지되어야 되는게 맞다고 얘기하시면서 서울시의 배려로 초록나라도서관은 지금의 마을활력소 초록뜰로 이사를 할수 있게 되었다. 서울시에서 예산을 지원해 주고 구청에서는 그것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사무처리를 해 주시고 민간으로 있던 초록나라도서관 활동가들은 공간을 위탁 받기 위해 법인을 준비했다. 법인이 무엇인지 위탁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법인을 만들고 지금의 초록뜰을 위탁받아 운영해 오고 있다. 초록뜰은 그렇게 탄생이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역에서 품앗이 공동체로 아이들의 기르고 성장시켰던 엄마활동가들이 지켜왔던 초록나라도서관이 씨앗이 되어 마을공동체로 마을교육공동체로, 세대를 아우르는 공간으로 지금의 초록뜰이 있는 것이다.


■초록뜰은 이런 곳이에요
초록뜰은 2019년 단층으로 신축되어 6월경 마을활력소 초록뜰이라는 이름으로 개관을 하였다.
한쪽에는 책을 읽을수 있는 공간과 한쪽에는 차를 마실수 있는 작은 카페의 구조로 되어 있고 주민 누구나 이용 기능한 공간이다. 1층이 공간 하나로 되어 있다 보니 소모임을 할 수 있는 단점이 있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2층에 소모임 할 수 있는 구조로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다.
올해 안에는 완공 될 예정이다. 완공이 되면 공간 활용도가 휠씬 클 것으로 보인다. 
공사전 공간의 문을 열어 놓으면 지나가다 물 한잔 달라해서 마시고 가는 아이, 오래 공부해도 되냐며 공부하러 오던 대학생, 점심시간 커피 마시러 왔다던 근처 직장인들, 뜰에 심어 놓은 상추를 따러 오던 동네 어르신..
한창 공사중이여서 한동안은 그 분들을 볼수 없어 아쉽지만 이후에도 초록뜰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동네의 참새방앗간 같은 곳이었으면 참 좋겠다. 희망하기는 청소년 참새들이 모여 쉴 새없이 조잘거리는 모습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해 본다. 그런 상상만 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고민과 성장 그리고 앞으로의 길
초록뜰로 이사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야 늘 어느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그런 겉도는 이야기들이 힘을 잃게 하고 맥 빠지게 할 때가 있다. 오해 아닌 오해를 낳기도 한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초록뜰은 여전히 활동가들이 열정페이로 활동을 하고 있고 인건비는 받지 못하는 구조이다, 
오히려 초록뜰이라는 좋은 옷을 입고부터는 더 많은 시간을 봉사로 공간을 지켜야 하고 더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 민간의 순수한 활동가들이 비영리 법인이라는 큰 단체를 만들고 만드는 과정에서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배웠고 활동의 원동력이 법인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됐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뼘 더 성장해 왔지만 지금도 여전히 고민과 어려움의 과정에 있다. 초록나라도서관이 지켜왔던 마을공동체를 초록뜰안에서 어떻게 실현시키고 이어나갈 것인지, 초록뜰이 어떠한 공간으로 주민들과 함께 할지, 그 뿌리는 곤고히 세우되 마을공동체를 넘어 마을교육동공동체, 마을돌봄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공간으로써의 재도약을 뀸꿔 본다.

■도시넷에 바라는 점
2020년 10월 법인의 대표를 이임 받고 나서 법인에 대해서 좀더 알고 싶고 배우고 싶었을 때 막연했다.
도봉에서는 그것들을 물을수 있는 플랫폼이나 마중물 역할을 해 줄수 있는 곳이 없어 보였다, 혼자서 알아보거나 아는 분께 물어물어 전문가를 찾아가 자문을 구하는 정도였다. 비영리 법인이 돈이 없다 보니 지인 카드를 써서 찾아가면 딱 거기까지만 자문을 얻고 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도봉에 분명 나와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언제든 찾아갈수 있는 플랫폼 같은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넷이 그런것까지도 다 아우를 수 있는 플랫폼이 되면 좋겠다는 것은 나의 욕심일지 모르지만 시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 아는 곳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내가 시민넷에 크게 기여하고 있지 않아서 늘 미안한 마음이 크기에 무엇을 바란다는 게 욕심이지 싶다.
시민이 손 내밀 때 손잡아 주고 눈물 흘릴 때 함께 울어주고 기쁠 때 함께 웃어 주는 것만으로도 시민넷의 힘이지 않을까 싶다. 내 안에서 늘 내 스스로 외치고 있는 연대의 힘! 그것이라면 충분할 것 같다.



■ 지역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2007, 2008년 개인적으로 일촌공동체 도봉센터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당시의 대표님께서 주민들을 조직하여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도봉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이후에 도봉문화정보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네트워크사업, 문화프로그램 운영 등 4년 정도하였고, 현재는 도봉구 마을 사회적 경제 지원센터에서 사회적경제지원팀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 현재 도봉구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도봉구 마을 사회적 경제지원센터의 사회적 경제지원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사회적 경제 기업을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25개 자치구 중에 마을공동체, 주민자치, 사회적경제 3개 분야를 통합하는 센터는 도봉구가 유일하여 지역내의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다. 주민자치회의 활동도 궁금하여 현재 창1동 주민자치회에서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개인적으로는 일촌공동체 도봉센터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 조직을 지원하는 업무를 하고 세부적인 내용, 실행과제를 설정하여 팀원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경제가 뭐고, 사회적기업이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기초적인 고민들을 상담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나라마다 사회적경제를 규정하는 방법이 다르고, 국내는 규정하는 법도 없어서 잘 정리해 안내드리는 게 쉽지않다. 현재 국회에서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는 과정이어서, 법이 만들어지면 이런 부분에서 보다 이해하기 쉬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센터는 사회적경제기업, 각각의 조직형태에 따라 지원사업을 안내드리고, 기업의 상황 상황에 맞게 노무, 교육, 컨설팅, 홍보물 제작지원 등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지원사업을 주로 하고 있다.


■ 활동 중에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도봉구 특성상 주거지 중심이고 경제활동을 활발히 하는 곳이 아니어서 협동조합도 많치 않고, 사회적 경제기업도 적은 편이다. 
  서울시 전체로 보면 도봉구는 사회적 경제 기업이 아주 적은 편에 속한다.
도봉구는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사회적 협동조합은 30개~40개 정도이고, 일반협동조합까지 120개가 되는데, 많은 타 자치구는 400개가 넘는 곳도 있다.
  시민사회영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관내의 사회적 경제기업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사회적경제기업에서도 마찬가지로 무엇을 판매하는지를 알리고 홍보하는 역할이 부족하다. 이러한 지점에서 센터가 연결고리로써, 해야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봉구는 시민영역의 활동은 활발하며 사회적 가치실현을 위한 활동은 잘하는데 사업자 기반이 약한 거 같다. 도봉구 내의 많은 모임(혹은 조직)들은 경제적인 수익구조를 체계적으로 만들면서 운영하는 것, 또 공정하면서 적절하게 배분하는 방식, 사업화하는 부분에는 미흡한 거 같다.
  지속가능하면서 명확한 아이템을 만들고, 기업 또는 조합을 운영하는 방식에 합의하여 적극적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이러한 지점에서 센터가 꼭 필요한 지원을 통해서, 사회적경제기업들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무언가를 바꾼다는 것은, 말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행동으로 해결하는 것이 방법인 것 같다. 그것을 위한 다양한 방법 중에 하나가 사회적경제인거 같으며, 장기적으로는 모든 기업이 사회적 가치실현을 해야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사회적 경제조직의 협의체를 조직하고 있으나 쉽지는 않은데, 지역의 시민사회와 사회적 경제 기업이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어려움 있다.

■ 활동하면서 의미 있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센터에서 사회적 경제조직을 알려가는 상황에서 소소한 변화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입주기업들의 활발하게 활동하는 걸 보면서 변화를 느끼고 있다. 지역주민에게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인지도를 넓히기 위한 작업을 고민하고 있다. 
  작게라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커지는 방식으로 활동하는 것이 핵심이고 그런 것을 계속하고 있다.

■ 도시넷에 바라는 점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사회적경제가 궁금하면 사회적기업을 방문해 주시는게 가장 좋은 방법인거 같다. 특히 환경을 생각하신다면, 도담마을의 제로웨이스트삽에 자주 찾아가고 함께 기업의 물건을 구입해 주시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회적경제는 기업들이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시넷의 시민자산화 추진단에서 사무실을 공유오피스로 여러단체와 사용하는 것을 조금씩 움직이며 확장하는 방식도 좋은거 같다. 조금씩 단계적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사회적경제 분과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필요한 영역들을 고민하는 아젠다를 찾는 것을 고민해주고 조직하는 것이 좋을꺼 같다. 

 

■ 지역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관심주제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1인가구 청년의 건강권, 주거권, 성소수자 운동, 문화예술 취재작업 등으로 활동을 재밌게 하였고, 활동하면서 주거지와 활동지 사이의 시간적 거리적 간극이 커서 동네에서 편하게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해보자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거주지에서 도보이동가능한 권역에서 활동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민우회를 선택하게 되었다. 민우회를 선택한 계기는 여성주의운동에 공감하고 나의 운동의 방향과도 맞고, 여러 가지 의제, 이슈 중심으로 활동은 해봤지만, 여성주의운동이 가장 나에게 맞는다는 생각을 했고, 한국여성민우회의 후원 회원이었고, 우연하게 도봉구 동북여성 민우회를 알고 교육강좌인 성폭력 전문상담원 수강으로 동북여성민우회에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성폭력 전문상담원 강좌는 격년으로 진행하고 있다. 

■ 도봉구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민우회 단체의 사무국장 직책으로 활동하고 있다보니, 구청과 연계되어있는 위원회와 각종 회의 그것 외에도 민우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역의 다양한 여성들, 주민들과 함께하는 작업, 성폭력 전문상담원 과정, 동네 안에서 반성폭력운동이나 대중 강연 등 나의 삶 근처에서 좋은 강좌를 기획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을 조직하고 연계하고, 지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이 본인들의 삶터에서 고민 쉽게 이야기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과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생각하여 작은 소모임도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지역에서 모임을 짧게 진행하면서 동료들을 만나서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시도하려고 한다. 단체활동가만으로서가 아니라, 사는 곳 에서 여러 액션을 만들어가는 동네 활동가로서도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노력한다.

■ 민우회 활동 전에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영화나 연극 취재 다니는 일을 했고 청년네트워크에서 정책 제안하는 일도 같이 했썼고,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특히 1인 가구, 여성의 주거에 대한 고민이 많아 1인 가구 주거권을 건강과 연결하여 프로젝트 진행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퀴어문화예술활동을 지원을 하기도 했고, 많은 이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대중캠페인을 온오프라인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그동안의 활동으로 배운 것은 3명이 있으면 결국은 뭐든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3명의 인원이 없으면 그 무엇도 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가장 첫 번째로 하는 작업은 그 프로젝트를 함께할 동료 2명을 찾는 것이다. 원하는 인원의 3배수 정도로 자유로운 참여 인원을 모집하고, 그 안에서 함께 긴 호흡으로 작업을 가져갈 수 있는 동료 2명을 만나기 위해서 노력하곤 한다.
■ 현재 어떤 활동을 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민우회에서 올해는 회원들과 접점을 만들고 촘촘히 만나는 것을 중요하게 해보자 라고 정하고 온라인 문자등 다양한 방법으로 만나는 것을 해보자라고 하였고 현재 ‘민우의 숲’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소모임이 회원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숲이 열렸으니 3명 이상만 모이면 운영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수다N’은 매달 다른 주제로 구성하며 5월에는 신입회원들과 텃밭에 가서 이야기하는 모임을 했고 6월은 우이령을 걸으며 환경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매일운동모임’ 매일 운동하면서 인증하는 모임,‘페미일독’이라고 매일 한 장 이상 읽고 인증하는 모임 등 단기적으로 하는 모임이고 정규인원으로 좀 더 긴밀하게 진행하는 모임은 성평등동화책 제작모임이 있다. 작년 동안 6개월 매주 모여서 작업했던 ‘상상벋길’ 팀으로 동화책제작을 하였다.
돌봄 노동자 관련하여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인터뷰 작업, 특히 돌봄 종사하는 과정에서 겪는 성폭력, 성희롱 등 인터뷰를 통해 예방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고 문제점 해결을 위한 매뉴얼 만드는 작업을 준비 중이다. 
■ 활동 중에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상근자가 적은 단체라면 필연적으로 있을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은 모두 이미 다들 잘 알 것 같다. 그렇기에 더더욱 ‘회원단체’로서의 특징이기도 한, 회원 여러분과 함께 하는작업이 중요한거 같다. 초안은 짜겠지만 같이하면서 서로 역량강화가 되고 서로의 즐거움이 되게 하는게 특징이자 어려움 인거 같다.
인원수가 적은 단체는 운영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사업화하고 홍보하고 등 하나의 사업에도 필요한 단계가 있는데 이것을 찬찬히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활동하고 싶다는 사람들을 만나고 알차고 의미있는 작업인거 같다.

■ 활동하면서 의미있었던 점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지역활동을 2018년부터 시작하면서 첫해는 정신없이 진행하였고 매년 정신없이 진행하는데 한번 씩 번아웃이 온다. 내가 잘하고 있는건가, 긴 호흡을 버틸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하고 숙고하고 있다. 번아웃이 될 때는 함께 일하는 분들과 힘듬을 이야기하고 고민을 나눈다.  
성폭력 상담원과정으로 민우회를 만났는데 작년에 성폭력 전문상담원과정을 운영하면서 18년, 20년에 만났던 사람을 지금 다시 만나면서 성장해 있는 사람들, 결국에는 사람들이 의미 있는거 같다.  

■ 도시넷에 바라는 점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지역에 다양한 활동가들이 있는데 다양한 활동가들이 얼굴들을 드러내고 어려움없도록 해주면 좋을꺼같다. 사람이 보이지 않다라는 것은 사람을 보려하지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 지역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처음 지역이라는 것을 보게 된 것은 어린이 도서연구회 도봉지회에서 활동을 하면서였다. 도봉지회 지회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지역의 활동가들을 만나게 되었고,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의 일환으로 ‘책 읽어주기 자원활동’을 하면서 좀 더 가깝게 지역과 만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을 기부하면서 ‘책을타고날다’를 알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아이들을 만나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교육복지 영역의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이유라고는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그 동기가 나의 어린 시절 환경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은 고아원이 많은 지역이었고, 고아원에 있는 친구들은 똑같은 옷을 입고 학교에 다녔다. 그중에는 내 친구도 있었는데, 왠지 나는 그것이 너무 싫었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돈이 없어서 중학교에 입학을 못하고 공장에 취직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그런 상황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던 것 같다. 이런 경험들이 내가 지역에서 교육복지 활동을 자연스럽게 하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 도봉구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책을타고날다’는  2012년부터 교육복지사업을 통해 저소득가정, 교육 사각지대, 심리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을 위한 독서심리상담과 학습지원을 위한 단계별 독서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만나왔다. 
 독서심리상담은 가정방문 형태로 아이를 둘러싼 기본 환경을 파악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진행하고 있지만 방문이 어려운 가정들은 학교와 협력하여 학교에서도 진행하고 있다. ‘책을타고날다’를 탄생시킨 주요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매개로 아이들의 정서적 성장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작년 코로나19 이후 급격한 학습격차로 인해 교육격차가 심각해졌고, 아이들의 문해 수준도 급감했다. 그래서 작년부터 문해코칭으로도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그리고 자원활동가들이 찾아가는 그림책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는 활동을 오랫동안 해오고 있는데, 이렇게 ‘책을타고날다’에서 진행되는 모든 프로그램들은 단순히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을 지원하면서 위기 아동을 발굴하고, 학교와 지역 기관과 연계하여 아이를 중심으로 학교와 학교밖의 강사, 지역아동센터나 기관들이 함께 지원하는 교육복지 네트워크의 논의 테이블을 마련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할동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 강사단과 그림책 자원활동가의 역량강화 교육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결국 아이들의 문제상황은 부모에게서 출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부모의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모성장을 위한 희망의 인문학’ 사업을 하게되었다. 부모의 성장을 통해 자녀와 가족간 긍정적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시도였고, 북부교육지원청의 지역기반형 사업으로 6년간 진행해 왔다. 지금은 북부교육지원청의 직접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고, 우리는 방학동을 중심으로 인문학의 필요를 느끼는 부모들과 작은 규모의 인문학을 진행하려 준비하고 있다. 지난 6년간의 인문학 진행을 통해 만나게 된 다문화 가족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문화와 언어의 차이로 인한 자녀교육과 가정생활임을 파악했고, 이를 위한 맞춤형 작은 인문학을 준비하고 있다. 다문화 가족 부모들을 위해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한글을 익힐 수 있는 그림책 인문학을 준비하고 있다.

■ 단체가 생기게 된 배경과 과정을 이야기 해주세요
 단체를 결성할 때 같이하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고 있지만, 당시 사회상황을 반영하여, 도봉의 아동청소년 실태조사를 진행했던 결과를 기반으로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이들이 자기 자신이라도 힘을 기르면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결성된 걸로 알고 있다.  
 처음 시작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작은 도서관이었으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도서관에 오지 않았다. 해서 아이들을 만나러 책을 들고 직접 찾아가는 교육복지 사업을 하기 위해 비영리민간단체인 ‘책을타고날다’를 결성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지역활동가의 전문성 확보를 위한 교육과, 아이들의 성장에 도구가 되는 콘텐츠의 개발을 하면서 10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이 성장하면 우리도 함께 성장하며 변화 발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책을타고날다’의 고유 목적성을 잘 지키면서 경제적으로 여전히 힘들지만 잘 버티고 있다.

 지난 10년간의 활동을 기반으로 지금은 자립을 위해 모색하고 있다. 우리 단체는 독서심리상담 강사단과 그림책 자원활동가들, 후원회원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학교와 협약하여 학교에서도 아이들을 만나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고민은 10년째이다. 
 교육복지영역에는 이해의 폭이 넓지 않아서 기부나 후원이 어렵다. 직접 활동하는 우리들조차도 후원에 대한 권유가 쉽지 않다. 몇 년 전에는 NPO지원센터의 도움으로 모금의 기술을 교육받아보기도 했다. 그때 들었던 가장 유익한 말은 ‘우리를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활동의 가치에 투자하고, 지지하라’고 당당히 말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전히 쉽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우리 단체의 활동 가치에 후원 가능한 방법을 회원들과 고민하고 있다. 


■ 단체의 중심사업과 주요활동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책을타고날다’의 중심사업은 앞에서도 말했던 것 같은데, 역시 교육복지 사업이다. 독서심리상담이나 문해코칭, 진로형 독서 등은 콘텐츠를 넘어 저소득 가정, 교육 소외 아동,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아동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특히 교육사각지대의 친구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사각지대에 있는 친구들은 지원체계가 없어서 도움을 받을 길이 없다. 우리가 사각지대 친구들 발굴하여 지원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그림책 멘토링 사업이다. 위기 사례는 이른 시기에 발굴하는 것이 중요해서 지금은 그림책 멘토링 대상을 유아까지 확대하여 만나고 있다. 아이들의 성장단계에 맞게 다양한 주제의 책으로 만나고, 놀이로도 만나면서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지지하는 ‘그 아이만을 위한 한 사람’을 만들어 주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책으로 만나는 활동을 놓지 않는 이유는 결국 문자인식력이 생활인식력과 연결이 되고, 학습 능력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문자인식력 만큼은 놓치지 말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을 이어가기 위해 학교와 끈임없이 협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책을타고날다’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처음에 교육복지의 이해를 기본 과정으로 진행한다. 그리고 그림책으로 자원 활동을 시작하여 지역의 교육환경에 대한 이해를 경험하고, 아이들을 만나는 경험을 쌓으면 면담을 통해 강사로 활동하게 된다. 강사들의 전문성을 위해서 역량강화교육으로 자신감이 생성되고, 경험 축적으로 더 많은 활동이 가능하게 되는데, 현재는 적은 인원인 강사단 8명, 자원활동가 14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활동의 플러스@는 사람을 지역에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 현재 활동의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요?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경제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지금 강사단과 학습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넘어 이렇게 의미 있는 활동의 지속성은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 경제 구조를 가지기 위한 논의를 하고 있다.
 좋은 활동이 있지만 활동을 담을 안정된 공간을 갖는 것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다행히 기회가 주어져 산돌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하고 있지만, 이것 또한 어려움이 많고, 갈 길이 멀기도 하다. 그렇지만 새로운 기회라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면서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있다.

■ 가장 의미가 있었던 일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책을타고날다’의 활동을 하면서 독서심리상담으로 만난 아이가 있었는데, 중학생 남자친구로 코끼리 증후군으로 무기력증에 빠져 학교에 안 가는 날이 많아 유급이 될 상황의 중학생 친구였다. 어려서 부모님의 이혼 과정에서 정서적 불안이 치유되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방치되면서 무기력증에 빠지고 되었다. 넘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발견하게 되었는데, 학교 지역사회교육전문가 선생님과 함께 의논하면서 만났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학교 지역사회교육전문가 선생님의 열정과 자기 힘이 조금씩 생기면서 나름 미션을 수행했던 친구이다. 다른 공부는 도저히 할 수 없고, 역사는 할 수 있겠다며 성적을 올리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봄에 만났는데 가을 학기에 성적표를 들고 왔고, 80점 대의 우수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학교 주변을 산책하면서 “부모님의 이혼이 창피한 일이 아니라는 걸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데, 순간 지역에서 내가 하는 이런 활동의 필요함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아마도 지금까지 그 힘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의미가 있는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민간단체의 힘이 너무 미약해서 고민도 많이 하게 된다. 그럴땐 우리 같은 단체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 언덕을 교육복지센터가 해주면 좋을 것 같다.

■ 도시넷에 바라는 점
 사실 이름은 많이 들었고, 작년부터 아동청소년분과로 지역에서 연계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도시넷의 정체성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정확하게 설명은 하지 못할 것 같다. 
 2010년 도사넷의 활동을 만났었고, 그때는 나의 역량이 부족해서 몇 번의 회의를 끝으로 참여하지 못했었다. 그때 그 모임이 네트워크 활동의 계기는 되었으나 지속적이진 않았었다. 현재 도시넷의 활동이 어떻게,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도시넷이 지역에서 민간의 의견을 수렴하고 힘을 모아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 지역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사회복지전공 하고 감리교 목사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도봉구에서는 동주민센터와 지역연계로 저소득층 아이들의 건강한 점심을 제공하는 활동하게 되었다. 조금더 늘려서 방학1동, 아이들의 점심 제공하는 활동을 하였고  방학1동 마을계획단 활동을 시작하면서 주민자치회 활동, 미디어 활동, 미디어분과에서 4년째 활동하게 되었다.  

■ 도봉구에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도봉에서 시작된 활동들이 확장이되면서 사회적협동조합은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주민자치회의 부회장을 맡으며 역할을 하고 있고 미디어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중이며. 방아골복지관과 협력하여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다. 



■ 단체가 생긴 배경,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해주세요.
이 공간은 여성일자리활동, 여성목회활동을 하던 공간을 도봉구에서 마을활력소로 만들게 되면서 관심있는 주민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단체 책을타고 날다, 꿈땅, 방아골복지관등 다양한 주민 주체들이 모여 산돌 사회적협동조합이 되었다.
주민들이 이끌어 가고 만들어가는 단체가 되기 위해 2018년 12월 관주도로 모집을 하여 30여명 정도 10회의 컨설팅을 시작으로 무엇을 할지 등 논의하며 2년간의 준비과정을 통해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게 되었다. 준비기간 2년동안 무엇을 할껏인지? 논의하였고, 사람과 사람을 잇고, 사람과 마을을 잇는 것이다. 라고 정의하였다. 
2020년 8월 공간과 장비. 구비물품등 갖추게되었고 2021년 1월에 산돌마을활력소를 산돌사회적협동조합이 위탁을 받게 되었다.
각각 성격이 다른 한지붕 세가족 같은 사람들이 모여 같이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지금도 같이하는 사람들과 맞춰가면서 활동하고 있다.
활동의 영역은 주민자치회와 마을방송국(도봉구 텔레비) ‘꿈땅’, ‘책을타고날다’ 와 함께 하고 있다.  

■ 단체의 중심사업과 주요활동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3개의 단체 각각의 사업을 진행하지만, 각각의 역량을 잘 풀어보고자 사업을 같이 진행하는 것을 제안하고 삼성재단에서 지원하고  네트워크사업으로 진행했던 방학1동 배움터 로을 함께 해보면서 거점역할을 하자라고 결정하여 산돌과 함께 하고 있다. 
1층에 커뮤니티 공간 ,도서관, 2층에 방송활동 등 역할을 나눠서 활동하고 있다. 
카페사업, 작은도서관운영, 커뮤니티 공간운영, 방송국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의 개인적인 바램은  작지만 민간복지관의 역할을 하자라고 생각하고 고민을 통해 활동을 만들고 이어가고 있다.
지역의 다양한 단체의 영상을 이곳 방송국에서도 제작하고 있으며 특히 도봉구 마을사회적경제 지원센터의 도시락도 이곳에서 편집하고 있다.  

■ 활동중에 어려운점은 무엇이지 말씀해주세요
재정의 어려움이 가장 크다.
운영비를 받으며 위탁받은게 아니어서 지원없이 운영하는것에 대한 어려움이 많다. 
민간위탁으로 받은곳은 지원 없이 자체운영이고, 마을활력소의 성격에 따라 지원이 결정되는 거 같다.  공간유지에 필요한 경비가 월 100만원 정도이고 현재 코로나 정국이라 일부 지원은 해주고 있으나 여전히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지역 일을 하기위해 시작하였는데 돈을 벌어야하는 상황이 되니 딜레마에 빠지게 되고,
열정만을 요구하는데 이게 정말 시민성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것이  지속성 가능하지않는 이유인거같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새로운 도전으로 지속가능한 공간운영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으며, 좋은 모델이 되고자 한다.
■ 가장 의미있었던 점은 무엇이지 말씀해 주세요
저는 씨앗이 되는 것이 꿈이다. 
다른 사람들이 열매를 맺고 꽃이 피고 마중물이 되어주는 인생을 살고 싶다.
도시락사업, 라면트리등 사업들이 지역사회에서 의미있게 전파되고 확장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처음이 힘들지만 시너지 효과는 큰것같다.

■ 더나은 도봉시민협력네트워크(도시넷)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좋은 의미를 추구하는 단체인거 같은데 분명한 정체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각각의 풀뿌리들이 성장하고 연결, 협력 할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하였으면 좋겠다.
정치는 필요하나 우선적으로 해야할 것은 연결과 역량을 키워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역할 했으면 좋겠다.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59

 

역사만들기

(대표이사 이기만)

 

최근 비가 와서 그런지 하늘이 매우 맑고 깨끗하다.

들뜬 기분으로 창동역에서 환승을 해 15번 버스를 타고 우이동으로 향했다.

역사만들기 이기만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다.

핸드폰 앱에 의존해 길을 나섰지만 무용지물 또 헤맨다.

결국 이기만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도움을 요청했다.

친절하게 마중을 나오신 선생님을 따라 우이동 주택가로 들어섰다.

와~ 옛 정취가 그대로 남은 동네이다.

장독대와 단독주택들의 대문들이 눈에 띈다.

어릴 적 옛 기억의 동네가 떠올랐다.

추억을 소환하는 아름다운 동네이다.

 

파란색 대문 앞에 섰다.

갑자기 이기만 선생님께서

“개 좋아하세요?” 하고 물으신다.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저희 개가 사람을 무척 좋아합니다.”

“근데 좀 커요, 제 뒤에 붙어 따라오세요.”

 

마음을 졸이고 선생님의 뒤에 붙어 대문을 들어섰다.

덩치는 크지만 매우 순한 개인 것 같다.

하지만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못하고

선생님 뒤에 바짝 붙어 무사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사무실이라기보다 정말 운치 있는 아름다운 서재 같다.

선생님께서 내주신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이 안식처 같은 공간을 두리번두리번 살필 수밖에 없다.

공간을 둘러 본 후 선생님과 탁자에 마주 앉았다.

▲ 역사만들기 사무실 입구

 

❍ 역사만들기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문화작업을 하는 주식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역사만들기는 주식회사이다.

외부에서 볼 땐 작은 단체 정도로 볼일 것이다.

실제로 작은 회사이다.(웃음)

 

주식회사를 설립하기 전에 협동조합도 고려했지만 책임소재가 분산되고 집행의 어려움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협동조합은 논의는 매우 잘 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지만 그 논의를 하나로 모으고 실행하는 데는 만만치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역사만들기는 처음부터 주식회사로 시작했다.

역사만들기는 지역의 역사와 지역민의 삶의 문화를 조사하는 회사이다.

우리나라에는 기초지자체가 총 250여 개 있다.

그 중 약 60여 지자체를 다니면서 조사하고 연구해서 해당 지역의 공식적인 역사문화서를 발간했다. 이런 일을 현재 30년째 하고 있다.

아마 이 분야에 우리만 한 회사가 없을 것이다.(웃음)

그런데 일을 해보니 이 일은 민간에서 할 일이 아니더라.

긴 시간투자와 연구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사실 이는 공공의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다.

 

❍ 연구조사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대개의 경우 지자체와 3년 내외의 기간을 설정하여 계약을 맺고 조사와 연구 작업을 시작했다.

연구용역 계약을 맺기까지 해당 지역의 대학이나 연구기관과 경쟁을 치러야한다.

계약을 마치면 그 지역의 연구자들과 함께 팀을 짜서 연구를 시작한다.

지역과 현장을 다니면서 녹음하고 조사된 자료는 대략 3,000~4,000페이지 가량의 책으로 발행된다.

이 과정은 길게는 4-5년 짧게는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처음부터 연구용역일을 맡아서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10년 정도는 디자인, 편집, 교정하는 편집대행 작업을 했고 20년차부터 연구자들과 함께하는 연구용역 작업을 하고 있다.

▲ 역사만들기 사무공간과 이기만 선생님

 

❍ 선생님께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80년대 학생운동을 했고 명동성당 청년회에서 활동했다.

당시 녹화사업(강제징집사건)에 의한 사망자사건을 조사하게 됐다.

83년 성탄 즈음 한희철 선배가 말년 휴가를 나왔다.

명동성당 청년회 행사를 보고 우리에게 열심히 잘한다며 격려를 하고 한 달 후에 보자는 약속을 하고 복귀했다.

그런데 한 달도 안돼서 총기 자살이란 비보를 받게 됐다.

여러 정황상 말도 안 되는 자살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학교나 일반사회에서는 손을 댈 수 없었고 종교계에서 이를 조사하게 되었는데 많은 인원은 아니었지만 조사작업을 책임지고 맡아 진행했다.

조사권이 없다보니 희생자유족을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10여 명을 조사해서 보고서를 작성해 김수환 추기경님께 보고했다.

대학졸업 후 군대 가는 대신 청년단체 연합시위 주동자의 한 명으로 참여하여 구속이 되었다.

당시 시위는 민주화운동청년연합회가 중심이 되어 천주교, 불교, 기독교청년 및 문화운동단체 청년들이 연대해 대규모 가두시위를 조직하였다.

이후 출소를 한 후 빈민운동에 함께했다.

지금은 해체됐지만 천주교도시빈민회 활동을 통해 제정구 선생님과 정일우 신부님 등을 만나 빈민운동을 했다.

지금까지도 제정구 선생님만큼 존경하는 그런 사람은 없다.

 

당시 나는 지금의 도봉동, 상계동, 미아동, 정릉, 동소문동 등 서울북부지역을 담당하는 지역활동 총무였다.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천막농성을 했던 상계동 철거민들 중 남양주 배밭으로 이주해간 분들을 지원하는 작업과 여러 철거 재재발지역의 주민조직을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에 함께 했다.

그 후 제정구 선생님께서 정치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드셨던 1989년 무렵

나는 천주교도시빈민회를 나와 사회과학잡지 <민족지평>의 편집장으로 3년간 일했다.

이 잡지의 창간준비와 3년간의 발행작업, 그리고 마지막 폐간까지 함께 했다.

그때 편집위원으로 잡지 발간작업을 함께 했던 분이 한신대의 정건화 교수님이다.

 

잡지일을 정리한 후 충무로에 책상 하나 들고 나갔다.

내가 20대 때 가장 많이 했던 일이 유인물을 쓰고 만들고 제작하고 보관하는 일이다.

명동성당에 다닐 때 조사홍보부에서 기관지 만드는 일을 했다.

이러한 이유에서 출판 관련된 일을 자연스럽게 시작했던 것 같다.

 

‘큰기획’이라고 크게 기획하겠다는 의미를 두고 기획사를 설립했다.

가톨릭 어린이달력을 처음 기획해서 만들었다. 이 달력이 5년간 히트를 쳤다.

2년 정도 기획 일을 하고 있을 때 파주에서 파주지역의 군지를 디자인작업 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의뢰를 받고 보니 이것저것 제안해야할 부분이 많았다.

제안을 했지만 비용문제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돈은 안줘도 좋으니 권한을 달라고 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서 지금의 지역사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 때가 1992년이다. 그 때부터 지역의 역사와 관련된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처음 10년은 편집대행을 했고 20년차부터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용역 일을 하고 있다.

 

나는 학부에서 사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이 작업을 하면서 관련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까지 밟게 됐다.

현재 연구자들이 하지 않는 영역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연구자들의 책임방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웃음)

 

강북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0년 전 한신대 정건화 교수님과의 재회가 계기였다.

지역사회를 위한 대학의 역할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도모하시던 정건화 교수님과 <지역>을 매개로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동북4구 지역자원 조사를 하게 됐고 현재 강북에 머물게 됐다.

 

성북 노원 도봉 등지에 대학이 많다. 하지만 대학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연구와 조사는 매우 보잘것없다.

오히려 도봉산이나 수락산 일대의 전통적인 주민조직이나 동제와 같은 마을의례를 지내는 주민들이 지역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다.

이 일대에 마을의례를 지내는 조직이 이직도 남아있다.

계모임, 상조회와 같은 형태로 20-30개 남아있고 지금도 2-3년에 한 번 의례를 진행한다.

서울지역에 아직 이런 조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에 상당히 놀랐다.

 

동제는 농업사회 전통으로 산신제이다. 산에서 제사를 지내고 산신령을 모셔와 동네를 돌며 동제를 지낸다.

동제는 온 마을사람들이 질병과 재앙으로부터 풀려나고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제사이다.

도봉산이나 북한산, 수락산, 불암산 등 산을 매개로 한 이 같은 동제는 동북4구 지역에 아직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 작업실 내(內) 자료들

 

❍ 동제의 주체는 누구인가요?

마을주민이다.

현재 도봉동도 2년마다 한 번씩 동제를 지내고 있다.

이렇게 사라져가는 전통과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현재 리스트업 하고 있다.

현재 5천여 개를 리스트업 했고 보고서형식으로 작성된 책자도 발행했다.

지역자원을 어떻게 활용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이에 착안한 것이 ‘이야기 가게’이다.

‘이야기 가게’는 문화자원을 사서 판매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문화도시 추진사업에 제안해서 현재 진행 중이다.

그래서 작년에 도봉구에서 6·25 경험을 한 경험자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활용사업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앞으로 그럴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6·25 경험자의 이야기를 당사자들에게서 직접 구입해서 학생들이 전쟁 경험자로부터 직접 전쟁과 관련된 강의나 수업을 듣는 것이다.

기본개념은 지역에 있는 주민의 특별한 경험이나 이야기를 사서 판매하는 것이다.

 

올 해부터는 도봉산 이야기를 수집하는 도봉산이야기가게가 운영되고 있다.

도봉산과 관련된 일화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가공해서 판매하고자 하는 사업인데, 도봉산 활성화와 지역 활성화를 위한 자원으로 쓰이게 된다.

도봉문화원 회원들의 이같은 노력이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길 기대하고 또 지원을 하고자 한다.

 

몇 해 전에 강북구에 4·19 이야기가게를 제안한 적이 있다.

4·19국립묘역에 가보면 시위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여러 다양한 증언이나 일화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4·19 희생자들 대부분이 경찰의 발포에 의해 사망했다.

희생자가 쓰러진 것을 본 사람이 있고 희생자를 병원으로 데려간 사람이 있을 것이고 희생자를 치료한 의사와 간호사가 있을 것이다.

이런 목격자들의 증언을 수집해 이야기를 자료로 남기는 작업을 제안했다. 하지만 잘 안됐다.

지금 이 시기가 마지막 시기이다. 이젠 목격자도 연로해 거의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게를 문화도시 도봉에 제안했다. 현재 도봉에서는 이야기가게를 진행 중이다.

아직 초보적 단계에 있지만 현재 도봉산과 관련된 이야기가게가 진행 중이다.

우리는 역사만들기에서 발굴한 지역자원들이 지역 활성화와 지역재생에 쓰일 수 있도록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다.

▲ 역사만들기 사무실 내(內) 자료실

 

❍ 역사만들기에서는 어떤 취지로 일하는지 궁금합니다.

철거반대투쟁을 하면서 철거민의 삶과 집 없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지역민의 history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내력들을 수집하고 알리는 작업을 했다.

향토사 작업을 하는 현재는 글이나 문서와 같은 자료를 남길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역사를 기억과 구술사 그리고 그의 생애사를 통해 작업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현재 살아온 이야기도 함께 작업한다. 평가는 나중에 할 일이다.

 

시군지나 향토지를 보면 우리가 했던 다양한 작업방식을 그대로 활용해서 발행하고 있다.

사진자료집 만들기는 역사만들기를 통해 처음 유포되기 시작했다.

자료집 만들기는 우리가 의도적으로 붐을 일으켰다.

 

시중에 있던 역사관련 책은 내용도 어렵고 분량이 무척 많다.

그래서 역사만들기에서 역사의 대중화 작업을 시작했다.

내용의 대중화, 대장의 대중화 그리고 현재화이다.

사람중심, 현재중심, 주제중심으로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재구성했다.

이것이 역사만들기이다.

 

역사만들기는 사람을 중심으로 한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지역에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야지 엉뚱한 이야기를 해서 되겠는가?

 

그리고 과거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최근에 살아온 현재이야기도 담는다.

이야기를 나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로 이야기한다.

의식주가 됐든 문화가 됐든 교육이 됐든 환경이 됐든 주제중심으로 풀어간다.

 

우리가 작업을 위해 지역으로 들어가면 2,3년이 걸린다.

재미있긴 하지만 매우 힘든 작업이고 수익이 안 되다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오래 붙어있지 못한다.

결국 이 작업은 공공의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공공의 영역에서 움직이지 않으니 우리가 손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공을 찾아가 제안하긴 했지만 잘 안됐다.

그렇다면 시간이 걸려도 우리가 하자라고 결의하고 계획을 잡았다.

우선 사람을 만들고 남겨야했다. 전국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

서로 강화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 힘으로 전국을 다니면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한 번은 적은예산으로 통영의 섬지역을 조사해야했다.

우리 인원으로 그 많은 작업을 할 수 없어 해당 지역과 인근지역의 전문가들과 연계해 함께 작업했다.

그로서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예산이 적다고 해서 일을 엉터리로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해야 할 목표는 반드시 달성한다.

우리는 생활방식 중에서도 특이한 방식이나 공개되지 못한 이야기를 찾아 작업한다.

 

❍ 향토사연구 작업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최근 옹진지역을 작업했다. 6·25 당시 옹진지역 주민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조사를 시작했다.

옹진 7개면 섬을 다니면서 104명을 만나서 인터뷰를 정리했다.

그리고 연구보고서를 작성해서 군에 제출했다. 하지만 군에서 보고서를 반려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가 옹진 쪽이다.

덕적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6·25 당시 상황을 증언해주었다.

한국전쟁 공식 6·25 전쟁사를 보면 군인들이 덕적도에 상륙해서 적군 7명을 사살해 전과를 올린 기록이 있다.

인터뷰를 하면서 당시 사살 된 7명을 모두 찾아냈다.

놀랍게도 모두 민간이고 그 중 2명은 임산부였다.

사실 이런 내용을 찾으러 옹진군을 찾은 것은 아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사람들이 그냥 자신들이 목격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올 해로 6·25가 70주년이 됐다.

이런 증언을 할 정도면 증언자의 나이가 당시 최소 연령이 15살에서 20세는 돼야한다. 현재 나이 85세에서 90세의 사람들이다.

이 분들이 증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젠 다 이야기해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살면 얼마나 살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분들이 원하는 것은 한 가지이다.

이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실만을 비석에 남기라는 것이다.

 

이곳엔 해병대 상륙기념비가 많이 있다.

그것은 그것대로 두더라도 이곳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의 진실을 밝히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희생된 민간인의 비석을 남겨달라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하면서 국가기록과 지역의 기록이 극단적으로 대치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니 군에서는 당연히 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연구보고서가 반려되면서 우리는 이를 책으로 출판하기로 했다.

역사만들기에서 <옹진 지역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한국전쟁 이야기>를 올 6월에 출판했다.

 

지역을 다니면서 전쟁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민이 어떻게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리고 이러한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지역과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지역활동가와 지역운동가는 마을과 지역의 역사성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고 넓어져야한다. 현재 활동가들의 활동 반경은 넓어진 반면 깊이는 상당히 낮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런 연구는 지역의 활동가들이 해결할 일은 아니다.

상계동 마들 평야나 도봉지역의 역사성 등에 관한 이야기를 누군가 듣고 찾아내고 모으면서 지역의 역사가 나온다. 이런 연구가 필요하다.

이런 것을 활동가들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연구기관이 필요하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 살았던 당사자,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료 등을 수집하고 가공할 수 있는 연구기관내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을 해줄 수 있는 기관이 없다보니 우리가 그 역할의 일부를 전국을 다니면서 하고 있다.

 

우리는 원천소스를 찾아주는 노력을 하고 있다.

여주의 경우 명성황후와 관련된 다양한 자원을 4년에 걸쳐 연구자와 지역민이 함께 수집하고 세미나와 조사를 통해 명성황후와 관련된 지역정보를 만들었다.

 

예산에서는 추사 김정희 선생님의 자료를 조사하면서 김정희선생님께서 자주 먹었던 음식이나 생활문화와 관련된 소스를 지역민에게 공유했다.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와 콘텐츠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지역의 인물이나 이야기는 지역의 원천소스로서 지역의 특색을 드러내는 상품이나 문화콘텐츠로 활용돼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킨다.

▲ 이기만 선생님(왼쪽)과 사람을 좋아하는 검은 개(犬)(오른쪽)

 

❍ 지역문화를 조사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지역)문화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는 상당히 중앙집권적이다.

지역운동가나 지역활동가의 지향은 결국 풀뿌리이다.

풀뿌리를 통해 지속성과 경제력이 생겨야 지역이 튼튼해진다.

풀뿌리가 튼튼해지고 제도화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역의 정치인들은 지역경제에 관심을 갖긴 하지만 그 토대가 매우 취약하다.

그러다보니 지역주민들이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조직하게 된다.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그 지역의 공동체적인 삶에 관한 소스를 찾고 제공해준다.

그리고 공유자원 활용방법을 알려준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경제이기도 하다.

 

지방에서 공유자산을 관리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눈물이 날 정도이다.

통영의 바닷가에서 갯지역을 나눠 활용하는 방법이나 바다자원을 공유하는 방법이나 산에서 나는 특산물을 공동체적으로 어떻게 관리하고 나누는가를 보면 대단히 합리적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피눈물 나게 공정하게 삯분 했는지는 문서를 보면 다 나와 있다.

 

그 중 계(契)는 대단히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릇계의 경우 평생 몇 번 쓰지 않는 그릇을 집에 쌓아둘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릇계를 통해 잔칫날이나 필요한 때에 빌려다 쓰는 계이다.

그 밖에 장례계, 결혼계, 장구계, 밥계 등도 있다.

지역의 한 마을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

금전부터 경조사 그리고 노는 것까지 모두 마을 안에서 해결된다. 이것이 마을인 것이다.

 

❍ 최근 공동체적인 삶을 회복하기 위해 곳곳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마을의 공동체적인 삶이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서울에서의 마을 만들기는 차원이 다르다. 서울은 이제 더이상 농업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서의 마을만들기는 옛 마을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한다.

마을에 대한 환상을 깨려는 것이 아니다. 마을은 농업사회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이것이 역사성이다.

 

지금은 산업사회이고 고도화된 정보사회에서 사이버 마을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이 모든 것을 다 해준다는 환상은 버려야한다.

대신 당시 마을의 공동체적 정신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깊이 간직하면 된다.

 

❍ 역사만들기는 앞으로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지역민의 이야기와 삶은 정치제도와도 떼려야 뗄 수 없다.

이러한 부분들을 자료로 잘 정리해서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게 만들고 활용되도록 하려고 한다.

앞으로 10년간은 연구용역일을 하면서 자료 플랫폼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가 조사하고 만들었던 자료와 활용했던 자료를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

책으로 된 자료는 10%도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작업 중인 자료는 일반인들이 보기엔 다소 내용이 어려울 것이다.

연구자들이나 그 외에 전문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활용도가 높을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지역정보가 나오긴 하지만 제대로 정리돼있지 않다.

그러한 부분을 보충하고 좀 더 전문적인 정보를 실어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인수봉 숲길마을과는 어떤 인연으로 활동하시게 됐나요?

오랫동안 앉아서 일을 하다 보니 고관절이 안 좋았다.

한신대에서 활동할 당시 인수봉 숲길마을에 들어가서 몇 년간을 살았다.

몸이 안 좋다보니 풀들을 보게 되고 자연에 관심이 많았다.

인수봉 숲길마을은 자연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꽃나무교실을 열고 수업도 했다.

나무를 심고 주민들과 함께 어울렸다.

그러다보니 부대표로 선출됐고 인수봉 마을에서 함께 활동했다.

당시 인수동 숲길마을이 <꽃피는 서울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때 활동을 참 재밌게 했다.

동네에서 작은 사진전시도 하고 식물전문가를 불러서 강의도 듣고 염색 교실도 운영했다.

이곳 우이동으로 이사 오면서 인수동 숲길마을 활동이 뜸해졌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가슴 뜨거워지는 경험을 많이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조사하고 수집해서 정리하는 전기를 좋아했다.

그러다보니 지역 일을 하게 된지도 모르겠다.

 

인수동 숲길마을엔 노인 분들이 많이 거주한다. 자녀를 출가시키고 빈방이 많다.

자녀들이 출가한 빈방을 게스트하우스 목적으로 수리해서 마을도 홍보하고 수익도 창출하면 좋을 것 같았다. 이것이 서울시에서 말하는 마을기업이다.

인수동 숲길마을이 ‘꽃피는 서울상’ 대상을 받으면서 자연마을 탐방코스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방문을 했다.

인수동 숲길마을의 큰 그림을 그려보면 이곳을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어서 외국인들이 머물게 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한달살이 할 외국인을 받아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한달살이를 경험하게 하고 지역홍보를 하는 것이다.

이곳에 머무르는 체재비는 받지 않는다. 대신에 이곳 마을사람들이 외국인의 마을로 한달살이를 같은 조건으로 떠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경비를 쓰지 않고 이렇게 해외네트워크를 형성해 놓고 점점 확대해 가면서 마을기업으로 운영하면 좋을 것 같았다.

처음 시작은 수익이 아니라 마을주민에게 일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마을회관에 모여서 기타 치고 우크렐라도 하면서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는 것부터 시작해서 함께 모여 친환경 빵도 만들어 보고 실험적으로 이것저것 마을일을 재밌게 하다보면 마을기업을 위한 단계를 하나하나 밟게 되는 것이다.

 

❍ 지역역사의 산증인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현실에서 이 많은 분들의 증언이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어떻게 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지역에서는 작업을 많이 하지 않고 지방에서 주로 작업했다.

이 분들의 생애사를 보면 혼자서 잘 먹고 잘 산 사람은 거의 없다.

이웃과 함께하면서 근검하게 생활한 흔적이 많다.

이러한 지역민의 역사와 이야기는 지역에서 담아내야한다.

지역활동, 마을활동, 문화활동을 통해 지역이야기를 풀어내야한다.

우리(역사만들기)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문화도시에 가서 이런저런 제안을 많이 한다.

책으로 발행되는 것 외에 더 확장된 작업은 지역에서 풀어내야한다고 말한다.

 

지역정보는 지역민의 삶에 녹아있다. 우리는 그 소스를 찾아내고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한다.

이런 자원은 영화, 광고, 도시재생 등 지역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과 연결된 모든 것에 유용하게 쓰인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그 삶의 문화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이런 의미들이 재생과 만날 때 문화적 재생은 중요하고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때문에 문화도시가 갖는 의미도 큰 것이다.

 

❍ 역사만들기 직원은 어느 정도 인가요?

정직원은 3명이고 관리, 기획, 연구위원 등은 상근은 아니지만 전속돼서 함께 일한다.

 

❍ 문화도시에 대해 큰 의미와 기대를 가지시는 것 같습니다. 문화도시에 대한 나름에 상(想)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재작년 도봉구에서 문화도시를 준비하면서 문화도시준비위원회에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나는 문화도시에서 공공성을 목표로 하는 도봉문화주식회사 설립을 제안했다.

도봉구에 도봉문화재단이 있지만 수익을 남길 수 없으므로 문화도시사업을 통해 인큐베이팅 하는 과정에서 수익창출이 가능한 문화주식회사 설립기반을 마련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왜냐하면 정부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부예산에 의존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려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아야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문화도시 사업의 한 꼭지로 문화주식회사 설립 기반을 위한 계획과 실험이 들어갔으면 한다. 사업성을 따져보고 수익을 남길 수 있는 형태나 구조로 사업을 실험해보면 좋겠다. 수익이 발생하게 되면 그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열악한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

 

우선 도봉의 문화도시 사업 중 하나는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 사업아이템으로 구성하고 이익을 남겼으면 한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적어도 문화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와 지원체계가 마련됐으면 한다.

그 사업체 역할을 나중에 도봉문화도시가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로 도봉문화도시가 지역에 있는 문화예술인들과 네트워크를 하면서 쌍방을 지속적으로 연계해주는 플랫폼의 역할을 하면 좋겠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인들이 공동의 목표를 갖고 서로 연결돼서 회사나 협동조합을 설립 운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면 좋겠다.

도봉문화도시는 문화적 가치를 함께 공유하면서 도봉의 가치를 브랜드화 하고 이를 점점 확산하는 방식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결론적으로 문화기업을 만들었으면 한다.

규모 있는 주식회사를 만들어서 이사회를 조직하고 논의도 명확히 해서 일을 효과적으로 집행했으면 한다.

주식회사의 목표를 공공성에 두고 (주주)이사들이 이에 합의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정관을 통해 공적인 목표를 명시하고 그에 대한 수익금은 공적인 목적을 위해 쓴다고 규정하면 된다. 나의 생각은 그러하다.

 

▲ 감사패 및 상패

 

❍ 문화재단과 문화기업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문화재단은 거버넌스이다.

거버넌스를 하는 순간 재정사업에 편입된다. 피할 수 없는 구조이다.

재정사업은 기본적으로 수행해야하는 사업이 있고 그 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문화기업이다.

물론 그 대안으로 협동조합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보다 공공성을 강화시킨 이윤동기에서 출발한 문화주식회사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 말씀하신 문화주식회사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문화주식회사는 돈으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본이다.

문화주식회사는 일반주식회사와 질적으로 달리 가야한다.

규모는 더 많은 점을 만들고 그 점을 연결시키는 플랫폼으로서의 주식회사가 돼야한다.

 

❍ 공감되는 말씀이다.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며 시민자산화의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정부의 지원이 끝난 후 지속가능의 길은 어려운 것 같다.

공공에서 지원하는 기본체계는 물적 토대를 지원해주는 것이었다.

장소, 사무실 제공 등을 지원했다. 장소를 제공하면 변화가 있을 줄 알았지만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은 소프트웨어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벤처지원을 했다. 그리고 사회적 경제를 통해 물건을 사기도 하는 등의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정부의 물적 토대이든 금융에서의 지원이든 혹은 무상지원이든 영원히 지원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평등성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부나 공공에서 지원하는 것은 바운더리가 있다.

그 바운더리가 점점 넓혀지고 있긴 하지만 정부의 지원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공공의 지원이 끊기면 그간 해온 사업이 지속되지 못하고 문을 닫거나 폐쇄된다.

하지만 이런 많은 실패에도 성공한 사례가 있다.

정부는 그 성공한 사례를 찾아서 집중적으로 지원을 해야 한다.

 

❍ 30년 가까이 역사만들기 작업을 하시면서 힘든 일도 많이 있었을 텐데 힘듬에도 선생님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오기 같다.(웃음)

예전에 YTN으로부터 세게 한 방 얻어맞은 적이 있다.

당시 경기도 문화재 안내판 개선작업을 할 때였다.

파주 자운서원에 가면 ‘율곡선생께서 사액서원’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사액서원은 임금으로부터 포상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영문번역가가 잘못 이해해 ‘율곡선생이 사약’을 받았다고 번역해 문제가 됐다.

사실 안내문을 확인하고 정정할 수 있는 과정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우리에겐 잘못된 부분을 보완하고 피드백 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방송을 통해 문제제기가 되고나니 경기도와 파주시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며 핑퐁게임처럼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다.

결국 책임은 안내판 작업을 한 우리 회사로 넘어왔고 인터뷰 요청이 왔다.

나는 실수를 인정하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고 거르는 시스템이 부재하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매우 일방적이고 관료적이다. 이런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 라고 말했다. 이 멘트가 방송으로 나갔고 이 말이 아나운서에겐 울림이 됐다고 한다.

실수를 하더라도 올바름에 대한 신념이 있다면 많은 것이 설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작업을 해보니 역사는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더라.

사실을 기록하고 평가는 나중에 하는 것이다.

목소리를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가 가야할 방향과 해야 할 일에 대한 신념과 확신을 갖는 것이다.

이런 확신과 믿음 속에서 재미와 보람을 느낀다.

 

사실 이일을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말했듯이 돈도 안 되고 힘든 일이다.

처음에 나는 내가 잘나서 이일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아무도 안하니까 내가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웃음)

앞으로는 일을 벌이기보다 한 일들을 농축하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 힘든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나이가 들어가고 몸이 아프다는 것이 힘들다.(웃음)

인력을 확보해서 일을 진행해야하는데 그 부분이 더디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과 조인이 안 되는 부분이 매우 스트레스이다.

 

역사만들기에서 함께 일했던 스쳐간 사람들이 이 영역에 절반 정도 일하고 있다.

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오래 일하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우리에겐 한 사람이 중요하다.

함께 했던 사람을 놓친다는 것이 제일 힘들다.

 

❍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을 위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원론적인 방법이겠지만 플랫폼은 사람들이 오가는 정거장이고 모이는 공간이다.

결국 네트워크이고 소통하는 공간이다.

정거장이 있는 이유는 기차가 오고 또 가기 때문이다. 기차는 사람을 운송하는 수단이다.

플랫폼은 정체돼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공간이다.

지속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아이템이나 소스거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이슈나 의제를 잘 장착하고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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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문화원 인터뷰가기 dbplatform.tistory.com/222?category=74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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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기념관 인터뷰가기 dbplatform.tistory.com/170?category=74171

 

 

 

 

 

 

도봉구 민간단체 소개 인터뷰 #58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이새샘)

 

 

 

❍ 사회복지영역에서 활동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동기라고 할 것은 없다.

사회복지전공은 했지만 국제개발협력 쪽에 관심이 많았다.

학부 때도 그와 관련된 활동을 많이 했다.

졸업 후에도 첫 직장을 국제개발협력과 관련된 작은 NGO에 취직해서 일했다.

일을 하다 보니 국제개발협력을 꼭 해외에 나가서 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있는 곳에서 세계시민의 마음으로 실천해가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적합한 일자리를 찾다가 마침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이하 방아골복지관)에 공고가 떠서 지원하게 됐다.

나의 첫 실습기관이 방아골복지관이었다. 실습하면서 느낀 방아골복지관은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하는 기관이었다.

그리고 복지관에서 지향하는 바들이 지역사회에 문화로 잘 자리 잡힐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고 느껴졌었다.

나는 국내 복지일을 하지만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라는 정체성을 늘 갖고 일한다.

그 역할을 실천할 수 있는 기관을 찾아보다가 방아골복지관으로 오게 됐다.

 

❍ 선생님은 도봉구에서 나고 자랐나요?

초등학교 때까지 창동에 살았고 대학 때 다시 돌아왔다.

 

❍ 국제개발협력활동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국제개발하면 처음 국제원조활동을 떠올릴 것이다.

국제개발협력으로 바뀌면서 ‘협력’에 대한 부분이 강조된 것으로 보면 된다. 쉽게 생각하면 해외에서 하는 사회복지영역이라 봐도 될 것 같은데, 세계에 있는 여러 나라들 간의 개발과 빈부의 격차를 줄이고 인간의 기본권을 지키려 하는 모든 행동을 포괄한다.

 

❍ 구호활동과 같은 타인을 돕는 이타적인 활동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다. 이타심이 사회복지영역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인지?

그런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역에서 서로 상생하면서 사는 공동체적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

 

❍ 공동체적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계기? 글쎄, 그냥 자라온 환경이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중고등학교를 원주에서 다녔다.

부모님께서 서울에서 큰 입시학원을 운영하시다가 원주로 귀농했다. 귀농하신 곳에서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부모님이 귀농하신 이유 중에 하나가 입시학원에서의 경쟁적 체제보다 더불어 사는 방법을 자녀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공동체적인 삶이나 인식이 나에겐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게 된 것 같다.

 

❍ 원주에서 기억에 남는 공동체적 경험이 있나요?

특별하게 어떤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살던 집에 대안학교 학생들이나 그밖에 농촌봉사활동을 위해 방문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집에서 워크숍도 진행했다. 비록 내가 대안학교를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 친구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문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됐던 것 같다.

 

 

▲ 꿈동아리 학생들과 온라인 수업 중인 이새샘 선생님

 

 

❍ 선생님이 지향하는 공동체는 어떤 공동체인가요?

각자의 목소리를 잘 낼 수 있는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재 주로 만나는 대상이 청소년과 청년층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변화된 세상을 꿈꿀 때 그것이 실현될 수 있게 함께 곁에서 힘을 실어주고 함께 지지하는 공동체가 내가 바라는 공동체인 것 같다.

 

❍ 현재의 청년층은 어떤 고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아동청소년이나 중장년 그리고 노인은 사회복지 영역에서 함께 해온지 오래 되었지만 청년층은 제외되었었다.

청년층은 노동을 해야 하는 집단 혹은 노동을 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본다.

청년이 일을 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있음에도 회피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청년층은 사회에서 함께 힘을 실어주고 함께 바라봐주는 대상은 아니었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이런 인식의 흐름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청년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는 근거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와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청년층까지도 지원의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에 고립청년지원체제라든가 청년수당 등이 마련된 것이다.

청소년이나 청년이 말하는 고민은 비슷하다.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 ‘앞길이 막막하다’ 등의 불안감과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이다.

본인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고민하는 모습은 공통적인 것 같다.

 

❍ 활동하시면서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신입이다 보니 지역정보나 지역자원에 대한 파악이 미흡하다. 그러다보니 당사자분들을 만났을 때 정보전달의 어려움이 있다.

조직내부이든 도봉의 네트워크이든 각자의 업무로 바쁜 부분들이 있지만,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생기면 활동가들도 흥이 나서 더 의미 있게 활동하고 협력도 더 잘 될 것 같다.

현재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더 침체된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을 만나야하는데 만나지를 못하니 활동도 그렇고 지금까지 의기투합했던 의지들도 느슨해지는 것 같다.

청소년은 온라인상으로 만나지만 온라인이 익숙하지 않아 어려워하는 친구들도 많다.

서로 만나야 친근해지고 친근함 속에서 활동의 재미도 생기는데 이 부분이 아쉽다.

 

▲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이새샘

 

 

❍ 기관의 새내기로서는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 궁금합니다.

NGO단체에서 활동할 때보다는 서류업무가 많은 것 같다.

복지관은 구의 지원을 받고 정부보조금사업을 하다 보니 구비해야할 서류와 행정업무가 많아서 그게 좀 어렵다.

 

❍ 연대와 협력이 잘되려면 어떤 지점을 개선하면 될지 경험을 토대로 말씀해주세요.

연대와 협력 그리고 지역 안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가는 문화는 필요한 것 같다.

막연히 생각나는 아이디어지만, 공동이슈나 공동대응을 고민하고 총괄하는 TF팀이 구성되면 좋을 것 같다.

연 초에 각 단위들이 모여서 플랫폼에서 한 해 동안 추진할 과제의 내용과 맥락을 정하고 목표를 설정한 후 플랫폼에 참여하는 각각의 단위들도 이 내용을 기반으로 협력활동을 사업계획서에 반영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각각의 단위들이 자신들의 사업수행을 하면서 플랫폼의 활동을 함께 추진할 수 있을 것 같다.

 

❍ 도봉구시민협력플랫폼에 바라는 기대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이런 인터뷰를 통해 지역에 있는 많은 분들을 만났을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표출되는 공통된 욕구나 문제들을 잘 정리해서 데이터베이스화 하고 아카이빙해주면 좋겠다.

다른 기관에서도 같은 고민과 어려움이 있고 공통된 의제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플랫폼을 통해서 공고해주면 좋겠다.

지역사회에 어떤 의제들이 존재하는지 시민협력플랫폼을 통해 열람할 수 있고 사업에 반영할 수 있은 데이터베이스가 마련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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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한상진 관장 인터뷰가기 dbplatform.tistory.com/8?category=741713

☞ 도봉장애인종합사회복지관 이상록 관장 인터뷰가기 dbplatform.tistory.com/64?category=741713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김난미 팀장 인터뷰가기 dbplatform.tistory.com/223?category=741713

☞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서민영 부장 인터뷰가기 dbplatform.tistory.com/225?category=741713

☞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홈페이지 bangahgol1998.modoo.at/

☞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페이스북 www.facebook.com/bangah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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